본문 바로가기

수도권 전철 여행기

수도권 전철 여행에 대한 소회

 

수도권 전철 1호선부터 9호선, 그리고 별의별 ㅇㅇ선까지 모든 노선 모든 역을 다녀왔고, 간단한 여행기도 모두 작성했으니 이 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적어볼 만한 것을 남겨볼까 합니다.

 

화서역 옆에 있는 서호공원. 단순한 근린공원이 아닌 정조의 명으로 수원화성과 함께 만들어진 역사깊은 저수지입니다.

 - 수도권 전철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다 노선도에 있는 수많은 역을 보고 갑자기 수도권 전철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전철을 이용하지만 대부분 집, 직장 또는 학교 근처에 있는 역만 이용하고 나머지 역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전철역은 대부분 그곳에 교통 수요가 많아서 세워집니다. 이렇게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여행지 같은 볼거리도 있을 것이고, 여러 사람들이 찾는 식당도 있을 겁니다. 이런 곳을 다녀가는 소소한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수도권 전철 여행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고 나서 우선 제 주변에 있는 역에 과연 가볼만한 곳이 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일종의 가설 검증인 셈이죠. 수원역은 수원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상권인 만큼 그에 걸맞게 식당이 많으니 적당히 식당 몇 곳을 알아보면 되겠다 싶었고, 성균관대역 역시 다른 대학가에 비해 상권은 좁지만 그래도 대학가니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화서역은 바로 옆에 서호공원이라는 저수지를 활용한 공원이 있고, 세류역은 코앞에 있는 비행단 덕에 눈에 띄는 여행지는 없지만 그 비행단 자체가 여행 소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보고, 이 생각을 다른 지역으로 확장해보니 수도권 전철 여행을 시작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을 해봤습니다. 예전에 쓴 여행글 중 수도권 전철 여행기로 묶을 수 있겠다 싶은 글을 몇 개 골라 글 제목과 내용을 조금 수정해보면서, 사진을 여러 장 올리되 문장은 되도록이면 짧게 써 인터넷에서 읽기 쉽게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진위역 주변의 휑한 모습. 이런 역도 모두 방문해야 했습니다.

 

 - 여행지를 선택한 방법

수도권 전철 여행은 지금까지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재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 대체 뭐가 있는지를 찾아봐야하는 수고를 해야 하기도 합니다. 박물관이나 유적처럼 지도에서 바로 찾을 수 있는 곳은 비교적 수월했지만 전철역이 들어선 곳은 대부분 이런 곳보다는 빌딩으로 가득한 업무지구나 아파트로 가득한 주거지구, 혹은 주변에 논밭밖에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입니다.

 

처음에는 골목에서 멋진 사진을 찍는 사람들처럼 단순히 골목을 걸어보는 여행을 해볼까 했지만 제 사진 촬영실력이나 글솜씨는 그 이상에 미치지 못하기에 대신 먹거리, 마실거리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랜드마크를 가보는 것만큼이나 여행에서 중요한 것이 식도락인 만큼 어디서 배를 채울지 알아보면서 여행 일정을 고려했습니다. 이렇게 가볼 곳을 찾아보면서 일반적인 관광지 - 식당 - 카페를 반복하는 식으로 여행 일정을 짜고 그에 맞게 역을 골라 다녔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특별한 이벤트가 생기면 다른 것보다 이 이벤트를 우선해서 가기도 했는데요. 2018년 5월을 끝으로 남양주종합촬영소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보고 여기를 방문한 일, 이천 도자기 축제나 시흥 갯골 축제처럼 특별한 행사가 열려서 행사장을 방문한 일을 들 수 있겠습니다.

 

여행지 검색은 네이버 지도, 구글 지도 등에서 일일히 찾아보거나, 검색엔진에서 역명을 쳐서 나오는 글을 참조하거나,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지역정보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우연히 읽은 잡지 기고에서 가고 싶은 곳이 생겨 가기도 했고, 계획에 없었지만 우연히 발견한 곳을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달월역이나 원덕역처럼 역 주변에 볼거리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곳은 도보 여행 자체를 소재로 삼기로 했습니다. 역 주변에는 볼거리가 없지만 역에서 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고 이동할 수 있는 여행지가 있다면 이런 곳도 고려했습니다.

 

모든 역을 다 다녀오고 나서 방문한 곳을 다시 살펴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곳을 다녀왔습니다. 북한산, 도봉산 등을 등산하면서 절이나 산성을 보기도 했고, 수도권 곳곳에 있는 조선왕릉을 거의 다 다녀보기도 했고, 근린공원부터 갯벌까지 공원이란 공원은 다 가보기도 했네요.

 

몸은 힘들지만 교통비를 줄이는데 크게 한몫한 따릉이.


 - 교통비를 줄이는 법

수도권 전철 요금은 기본요금인 1,250원에서 시작해 거리에 따라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한번 이동할 때 드는 요금은 크게 부담되지 않지만 하루에 여러 곳을 다닌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또 제가 사는 곳이 서울 한복판이 아니라 수원이기에 요금이 더 든다는 것도 고려해야겠죠. 요금을 줄이려면 그만큼 전철 이용을 줄여야 해서 우선 집을 떠나서 최대한 많은 역을 다녀오려고 했습니다. 심할 때는 새벽 첫차를 타고 집을 나서 12개 역을 찍고 돌아온 적도 있네요.

 

서울에 있는 전철역은 대부분 역간 거리가 짧으니 가까운 역으로 이동할 때에는 전철보다는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하루에 다닐 역이 많으면 1,000원짜리 따릉이 1일권을 사서 다니기도 했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전철역은 역간 거리가 서울보다 멀어서 다음 역이 몇 킬로미터 떨어진 경우도 있었는데요. 이런 역은 버스 환승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전철역에서 내리고 버스로 갈아타기까지의 환승 할인 시간 30분 동안 빠르게 볼거리를 찾는다거나 식사를 한다거나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는 식으로 정말 짧게 여행을 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을 했습니다. 특히 기본요금이 2,000원이 넘는 신분당선은 고작 한 정거장 이동하자고 다시 신분당선을 이용하기 너무 부담스러우니 버스 환승을 적절히 활용했습니다.

 

인천 지하철 전용 정기권 카드.

 

인천 지하철은 조금 특이한 방법으로 교통비를 줄이려고 했는데요. 인천교통공사에서 판매하는 한 달짜리 정기권을 샀습니다. 30일 동안 인천 1호선, 2호선 지하철역 사이를 60회 이동할 수 있는 정기권을 50,000원(카드값 포함 52,500원)에 판매하고 있는데요. 인천 1호선 역과 인천 2호선 역을 모두 더해도 60곳이 안 되니 정기권을 사고 한 달 동안 몰아서 인천 지하철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고생 끝에 도착한 곳이 이래서야...

 

 - 기억에 남는 여행지

아무래도 몸이 고생했던 곳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대표적으로 마천역에서 출발해 가파른 등산길을 올라 도착한 남한산성이 있는데, 죽어라 고생해서 남한산성에 도착했더니 안개가 너무 많이 껴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다 성곽이 보수공사 중이라 사진은커녕 여행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네요. 지축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북한산 등산로를 올라 도착한 북한산성 역시 진입로인 대서문이 보수공사를 해서 김이 샜던 기억이 납니다.

 

근린공원 속에 놀이기구와 함께 놓인 고인돌.

 

눈에 띄는 여행지는 아니지만 의미가 있는 공원도 몇 곳 다녀왔는데요. 남성역 근처에 있는 삼일공원이나 지석역 근처 근린공원 지석2공원을 들 수 있습니다. 삼일공원은 3.1운동을 기념할만한 독립공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기고문의 영향으로 조성한 공원으로 곳곳에 3.1운동 기념물이 놓여 있습니다. 지석2공원은 용인 상하동에서 발굴된 고인돌을 이전해놓은 공원이라 크고 작은 고인돌 몇 기를 둘러싸고 그 주변에 공원 시설이 놓여 있습니다. 두 공원 모두 외관은 흔하디 흔한 근린공원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우리식당 정상영업합니다.

 

먹거리 중에서는 허름한 시장에서 먹은 식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공항시장역 옆 공항시장에서 먹은 순댓국, 면목역 옆 동원시장에서 먹은 닭도리탕, 등촌역 목동깨비시장에서 먹은 탕수육 세트 등 서울 곳곳에 남은 재래시장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배를 채웠는데요. 여행 경비는 줄이면서도 기억에 남는 식사를 해서 좋았습니다.

 

 - 어려웠던 점, 아쉬웠던 점

모든 여행이 마찬가지지만 일단 예산 제약을 들 수 있습니다. 하루에 여러 역을 방문하면 교통비는 줄일 수 있지만 그만큼 여러 곳을 방문하는 만큼 오히려 전체 여행 경비가 늘어날 수 있는데요. 이것을 줄이려면 결국 비용이 들지 않는 여행지를 많이 알아봐야 했습니다. 비용이 드는 곳도 되도록이면 10,000원 이하로 드는 곳 위주로 알아봤죠. 그래서 캘리그래피를 쓰거나 아로마 향초를 만드는 등의 공방을 단 한 곳도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포털사이트 지역정보 서비스를 검색해보면 이런 공방이 생각보다 곳곳에 있는데 비용을 고려해보면 모두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보수공사를 이유로 문이 굳게 닫힌 미술관.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가 너무 오래돼서 여행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적이나 박물관, 맛집은 그에 걸맞게 정보도 수시로 올라오지만, 주택 옆에 있는 백반집은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는 사람이 적으니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정말 그 자리에 식당이 있는지 의심을 하며 가곤 했습니다. 직접 찾아갔더니 문을 닫아서 그자리에서 바로 대체할만한 방문지를 검색해본 경험도 있고, 그 자리에서 여행지를 찾지 못해 하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고 떠나야 했던 곳도 있습니다. 막상 방문했더니 오기 전에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서 사진을 모두 지워버리고 새로운 곳을 알아본 경험도 있네요.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는 속도가 여행지를 방문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글이 계속 밀리기도 했습니다. 수도권 전철 여행만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해외도 다녀오고, 전시 관람 등 다른 취미도 즐기며 블로그에 중간중간 다른 글을 올리기도 해서 심할 때는 수도권 전철 여행기 글이 1년 가까이 밀리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되면 내가 여행지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사진 밑에 글로 남길뿐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남길 수가 없어서 몇 번 고생을 했습니다. 이 고생을 몇 번 겪고 나서는 현장에서 뭔가 떠오르면 바로 멈추고 핸드폰을 켜서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등산로에서 고생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그 순간의 맛, 여행지를 떠나고 사진을 정리하면서 드는 소회 등을 메모로 남겨 한참이 지난 뒤 글을 쓸 때 도움이 되게 했습니다.

 

2021년 도라산역까지 연장될 경의중앙선 공사 현장.

 

 - 앞으로의 계획

600여 곳이 넘는 수도권 전철 역을 모두 다녀왔는데 다녀오고 나서도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이 든다기보다는 그저 무덤덤합니다. 앞으로 새로 개통할 노선, 새로 개업할 역이 수두룩해서 그럴 수도 있고, 글을 쓰고 난 뒤 다시 읽어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다시 가고 싶은 역이 여럿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수도권 전철 여행기는 2020년 3월에 개업한 임진강역을 끝으로 모든 역을 작성했지만 이 글이 마침표라기보다는 쉼표에 가깝습니다. 당장 5호선 하남시 연장 구간 1단계가 8월 8일 개통하고 뒤이어 수인선 잔여 구간도 9월에 완공돼 분당선과 연결됩니다. 두 노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이슈가 적지만 인천 1호선 송도 구간도 연말에 연장돼 송도달빛축제공원역이 개업하죠. 새로 개업하는 역 주변은 이미 지도를 열심히 뒤져가며 가볼 곳을 정해놨으니 이 역들을 방문하는 것이 당장의 계획입니다.

 

대전 1호선 여행 계획을 표시한 지도.

 

다음으로는 수도권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있는 지하철 노선도 모든 역을 방문해서 여행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일단 대전 1호선은 한밭수목원이나 철도관사촌 등의 여행지를 정해놨는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대전에 당일치기를 여러 번 하든지 숙박을 며칠 하든지 해서 22개 역을 모두 다녀오고 싶네요. 대전이 끝나면 광주, 대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산까지 전철 여행기를 확장해보고 싶습니다.

 

 

'수도권 전철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향신문에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6) 2020.08.13

이 글을 공유하기

kakaoTalk facebook twitter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