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도권 전철 여행기/ㅇㅇ선

D19. 광교역 - 수원박물관(수원역사박물관, 한국서예박물관)



신분당선 종점 광교역에 왔습니다.


바로 옆이 차량기지라서 신분당선 역 중 유일하게 지상에 지어졌죠.





광교역 옆에는 경기대학교가 있는데,


그래선지 신분당선 공사 당시에는 경기대역이라는 공사역명을 붙였습니다.


마침 차량기지 건설 부지 중 경기대 소유 토지 500여 평(1,700㎡)이 수용되면서


보상 차원에서 역명에 대학교 이름이 붙을 것이다라는 그럴듯한 이야기도 돌았죠.


하지만 신분당선 광교 구간 건설은 광교신도시 입주민이 낸 돈이 들어갔으니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 광교역이 적합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경기대 소유 토지 수용에 대한 보상은 돈으로 해결했으니 역명으로 보상할 이유도 없고 말이죠.


이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열린 수원시 시민배심법정에서는 종착역이 갖는 상징성을 고려해서,


그리고 광교 주민들이 차량기지 소음으로 인한 피해를 입는 것을 고려해서


역명을 광교역으로 정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이 의견이 국토교통부에 받아들여진 것인지 최종 결과는 광교역이 됐죠.


대신 '경기대'라는 명칭은 병기역명에 들어가면서 이 역의 정식 명칭은 광교(경기대)역이 됐습니다.





역 이름이 어떻게 결정됐건 광교역 주변 랜드마크가 경기대라는 점은 사실이라


광교역 주변은 광교 대학로가 만들어져 대학생을 노리는 여러 식당과 카페가 들어섰습니다.





날씨가 따뜻했다면 광교 대학로를 둘러보면서 괜찮은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볼텐데


날씨가 추워서 밖에서 시간 소비하기는 싫으니 광교역 인근에 있는 수원박물관을 보기로 했습니다.


수원역사박물관과 한국서예박물관을 합쳐놓은 곳이죠.





작년에는 통큰할인이라 해서 카카오톡에서 수원시를 친구 추가하면 수원박물관을 무료로 볼 수 있었는데,


이 이벤트가 2017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종료되면서 이제는 입장료 2천 원을 받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입장료를 낸 뒤 전시실로 이동합니다.





우선 수원역사박물관을 둘러봅니다.





전시실 입구에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간략한 수원 역사를 알려주는 연표가 보입니다.


이 연표에는 언급이 안 돼있는데, 삼국시대 이전에는 마한 중 모수국(牟水國)이 수원 일대로 추정됩니다.


이름에 물 수(水)가 들어가기 때문인데, 단순히 같은 글자가 들어갔다고 치기엔


수원 일대는 삼국시대(고구려)에는 매홀(買忽, 물고을)로 불렸고,


통일신라 때 수성(水城), 고려 때 수주(水州), 그리고 조선에 이르러 수원(水原)까지


지명에서 물이 빠진 적이 없으니 모수국이 수원에 있었다고 볼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01



연표를 지나니 수원 일대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석기와 백제 시기 토기가 전시 중입니다.



012



화서동 꽃뫼 유적은 집 옆 동네인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유적지가 있었네요.





삼국시대에 이어서 고려 시기 수원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과 연합하는 과정에서 본관 제도가 널리 이용됐는데,


수원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역시 고려 시대에 등장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수원 백씨 족보가 전시 중이네요.


백씨가 흔한 성은 아닌데, 사업가 겸 방송인 백종원씨가 바로 수원 백씨입니다.


그리고 비디오 아트라는 개념을 창조한 백남준 역시 수원 백씨죠.





고려에 이어 조선 시대로 이어집니다.


역사 속에서 수원이 눈에 띄는 시기는 아무래도 정조가 화성을 축성한 때인 만큼


이 시기와 관련된 전시물이 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화성과 관련된 전시물은 죄다 수원화성박물관에 있어서 의외로 조선시대 전시물은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눈에 띄는 전시물이 있어 몇 가지를 사진에 담아봤습니다.


위의 종이는 바로 과거시험 합격자에게 주는 증서입니다.


과거는 문과, 무과, 잡과(기술직)으로 나눴고 이중에서도 문과는 소과, 대과로 단계를 나눴는데


소과는 초시, 전시로, 대과는 초시, 복시, 전시로 단계별로 진행했습니다.


소과 합격자에게는 백패를, 대과 합격자에게는 홍패를 주죠.


왼쪽 붉은 종이가 대과 홍패, 오른쪽 하얀 종이가 소과 백패입니다.


전시실 안내문에 의하면 수원은 서울, 평양 다음으로 무과 급제자가 많았다는데,


이런 사실 때문에 과거와 관련한 전시물이 여기에 놓인 듯합니다.





다른 공간에는 조선 시대 양반 자제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전시물이 보입니다.


사서삼경과 천자문이 놓여있는데, 그보다 벽에 걸린 종이가 더 눈에 띄네요.


저건 승경도 놀이판인데, 종이에 관직 체계를 그려


누가 가장 먼저 높은 관직에 올라 퇴관하는가를 겨루는 놀이입니다.





전시실 벽 한 칸에는 수원을 그린 여러 지도 그림이 붙어 있습니다.


지도가 많다는 것은 국방 상으로 수원이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 할텐데,


정조 시기 화성이 지어지면서 수원 도호부에서 수원 유수부로 승격돼


경기도로부터 독립된 행정구역이 됐으니 그만큼 특별한 취급을 받았겠죠.



012



조선시대 전시 공간을 지나니 수인선 열차 모형이 나옵니다.


일제 시절 협궤로 지어진 수인선은 1990년대 폐선 됐다 수도권 전철로 다시 지어지고 있죠.


문제는 정부에서 예산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완공 시기가 계속 미뤄지고 있네요.


원래는 2018년 12월 전 구간 개통 예정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 SOC 사업에 대한 대규모 예산 삭감이 이뤄지면서 2019년 개통으로 1년 더 미뤄졌습니다.


수인선 복선전철화 최초 계획은 1999년 완공이었으니 무려 20년이나 늦게 완공되는 셈인데


사실 2019년에 완공이 될지도 의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수인선 안내문에는 2016년 개통 예정이라 적혀있던데, 이거 안 고치나........






수인선 열차를 지나니 근대 수원 거리가 나옵니다.





팔달문(남문) 맞은편에 있던 중앙극장이 보이네요.




중앙극장은 2004년에 문을 닫았다가 메가박스 수원남문으로 부활해 영업 중입니다.

할인쿠폰을 상당히 자주 뿌리는 편인데, 저는 CGV SVIP라서.......


012



사진관, 양복점, DJ 다방 등도 보입니다.





옛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있는데,





저 옷은 아무리 봐도 공군 약복처럼 보이네요;;;



01



전시실 끄트머리에는 일제강점기, 근대와 관련된 여러 전시물이 보입니다.


01



그중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농업과 관련된 물품입니다.

정조가 화성을 축조할 때 수원 일대에 대규모 둔전을 만들고, 

막석거, 축만제 등 여러 저수지를 설치하면서 수원 일대에 논밭이 상당히 많았고,

지금도 수원역 바로 옆에 논밭이 펼쳐져 있을 정도로 생각보다 농지가 많습니다.

이런 역사를 반영한 건지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은 전신을 수원농림전문학교로 하고 있고,

농촌진흥청도 전주로 이전하기 전에는 수원에 본청이 있었죠.


012



수원역사박물관 출구에는 근현대 인물 중 수원과 관련된 여러 인물 초상이 있습니다.


홍난파는 친일 행각이 드러나면서 수원시 홍보에서는 사라지다시피했는데 여기는 남아있네요.





이어서 한국서예박물관으로 이동합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뜬금없게도 암각화입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 사람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서예와 일맥상통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01



이어서 여러 금석문 탁본과 서간을 보여주면서 글씨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서예에는 별 관심이 없어 대충 보고 나왔네요.





전시실에는 비석 실물이 놓여 있는데, 조선 서예계에서 가장 유명한 석봉 한호가 쓴 글귀라는군요.



012



서예를 다루는 곳인 만큼 문방사우와 인장, 필세, 연적도 전시 중입니다.





전시실 출구에는 한글 서예가 여럿 걸려 있네요.





여느 박물관처럼 수원박물관도 야외 전시실이라는 이름으로 건물 밖에 전시물을 두고 있습니다.


보통은 어디 구석진 데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 마련인데,


수원박물관은 진입로에 여러 비석을 나열해놔서 눈에 잘 띄네요.





그중 안내문을 보고 놀란건 유수 김홍집 선정비입니다.


김홍집은 조선 개화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로 온건개화파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서양 문물을 배우기 위해 2차 수신사로서 일본에 파견됐을 때


중국인 황춘셴이 쓴 조선책략을 조선에 가져오면서 조선 대외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갑오개혁의 총책임자로서 여러 개혁을 이끌어갑니다.


교과서에서는 갑오개혁을 단계로 나누면서 n차 김홍집 내각이라는 설명도 따라붙죠.


하지만 끝이 좋지 못했는데,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을 거치면서 고종이 김홍집을 역적으로 선포하고 처형을 명령하자


김홍집이 직접 고종과 만나 마음을 돌리려 했으나


아관으로 가던 중 분노한 군중에게 둘러싸여 돌을 맞아 죽게 됩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군중들은 사지를 찢어 거리를 활보했고, 김홍집의 가족은 연좌를 우려해서 자결했죠.


아무튼 이런 사람과 관련된 비석이 있어서 놀랐는데,


1899년부터 1년간 수원유수로 재임해서 선정비가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수도권 전철 여행 지도

D18. 광교중앙역

수원광교박물관

D19. 광교역

             (종착역)         


이 글을 공유하기

kakaoTalk facebook twitter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