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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내)버스 일주 여행/전국일주

7. 율곡 이이를 기리는 자운서원과 율곡기념관(파주 19-1번)

 

 

식사를 마치고 법원구터미널 정류장으로 이동해

 

법원읍 갈곡리 종점에서 1시 50분에 출발하는 19-1번 버스에 탔습니다.

 

수요가 많은 노선이 아니다 보니 보통은 쏠라티 승합차로 운행하는 노선인데

 

이날은 쏠라티가 고장이라도 난 건지 평범한 중형 버스로 운행하네요.

 

 

 

 

19-1번 버스를 타고 갈 목적지는 율곡선생유적지인데

 

이이의 호인 율곡은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서 따온 호로

 

이곳에 이이의 생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인지 어머니 신사임당을 포함해 이이 가족의 무덤이 생가 근처인 법원읍 동문리에 있고

 

바로 옆에는 이이를 기리는 자운서원도 있는데요.

 

 

 

 

현대에 와서 무덤과 서원 옆에 작은 전시관을 만들고

 

율곡선생유적지라는 이름으로 관람객들을 받고 있습니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요즘 들어 보기 힘들어진 양식의 입장권을 받은 뒤

 

 

 

 

우선 율곡기념관에 들어가 봅니다.

 

 

 

 

1층 전시실은 전시 구성을 상당히 특이하게 했는데요.

 

 

 

 

보통 한 인물을 다루는 전시실은 그 사람의 일생을 시간순으로 훑어가고

 

이에 맞춰 전시물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데

 

 

 

 

이곳에서는 이이의 어록이나 업적, 저술,

 

 

 

 

이이와 학문적으로 연관이 있는 선대나 후대의 인물 등을 병렬적으로 액자에 배열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설명에 3자리 숫자가 적혀 있는데

 

 

 

 

마치 나의 선택에 따라 페이지를 이동해 읽는 게임북을 보는 느낌이 드네요.

 

 

 

 

2층으로 올라오면 본격적으로 이이의 일대기에 대해 다루는 인형을 비롯한 전시물이 나옵니다.

 

수많은 과거 시험에 도전해 9번 장원급제해 구도장원공이라는 별명이 붙은 일화라던가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충격을 받아

 

19살 때 금강산으로 들어가 잠시 불교에 귀의했으나

 

1년 만에 나와 유학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 일화,

 

 

 

 

42세에 관직에서 물러나고 처자가 있는 해주(지금의 황해도 벽성군)로 내려가

 

후학을 가르치는가 하면 해주향약을 실시하는 등 자신이 생각한 유학을 실천하는 이이의 일대기를 보여줍니다.

 

 

 

 

격몽요결, 성학집요, 만언봉사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한 유학자이고

 

후대에 서인의 학문적, 정치적 뿌리가 된 사람인데

 

대중에게는 아무래도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유명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흥미로운 사실은 이이가 정말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것이 맞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는 이야기의 근거로 드는 것이

 

이이가 병조판서를 지내던 시절 선조에게 올린 시무육조 중 2번째 조항인 양군민(養軍民)인데

 

시무육조에 대해 적은 선조실록 16년(1583년) 2월 기사를 보면

 

양민이 바탕이 되어야 군사를 기를 수 있으니

 

군역의 폐단을 없애는 등의 양민 정책을 펼친 뒤에야 양병을 할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10만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없는 것은 둘째치고 양병을 주장했다는 통념과도 맞지 않는 서술이죠.

 

10만이라는 숫자가 등장하는 내용은

 

선조실록이 아닌 선조수정실록에, 그것도 시무육조를 올린 때보다 빠른 시기인 15년(1582년) 9월 기사에 나옵니다.

 

이 선조수정실록은 인조반정 이후 집권한 서인과 남인들이

 

북인(대북)의 시각으로 쓰인 선조실록을 자신들의 시각으로 다시 쓴 실록으로

 

서인 사관들이 자신들의 스승인 이이를 높이기 위해 십만양병설을 끼워 맞춘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네요.

 

 

전시실에 있는 율곡이이함 모형

 

 

어쨌거나 이이가 병조판서로서 국방에 힘쓴 사람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

 

세종대왕급 구축함 2번함에 율곡 이이의 이름을 붙인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겠죠.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기념관 맞은편에 있는 자운서원으로 이동합니다.

 

 

 

 

자운서원은 광해군 7년(1615년) 지역 유림들이 이이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으로

 

자운이라는 이름은 1650년 효종이 사액해준 이름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이곳도 문을 닫았으나

 

현대에 들어서 다시 문을 열고 건물도 복원했다고 하네요.

 

 

 

 

500년 된 두 보호수가 감싸고 있는 강인당 뒤에는

 

이이뿐만 아니라 김장생, 박세채 두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문성사가 있는데요.

 

 

 

 

기본적으로는 이이를 배향하는 곳이니 이이의 표준영정을 찍어봅니다.

 

 

 

 

자운서원 옆 언덕에는 율곡 이이 가족묘가 있습니다.

 

 

맨 앞이 부모의 합장묘, 그 뒤가 이이의 맏형 부부 합장묘, 저 뒤에 별도의 단이 있는 무덤이 이이 부부 묘소입니다.

 

 

특이하게도 부모 이원수와 심사임당의 묘보다 높은 자리에 이이와 곡산 노씨 부인의 무덤이 있는데

 

자식이 입신양명하면 부모보다 높은 자리에 묘를 쓰는 당시의 풍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이이와 부인의 무덤은 봉분 하나가 아닌 둘인데

 

이이의 아내 곡산 노씨 부인은 이이가 죽고 난 뒤 일어난 임진왜란 때

 

이이의 묘소를 지키다 노씨를 돌보던 하녀와 함께 살해당했는데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지내려고 하니

 

어느 쪽이 노씨고 어느 쪽이 하녀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이이와 합장하지 못하고

 

이이의 무덤 뒤에 별개의 무덤을 만들어서 장례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5천원권 지폐에 실릴 정도로 조선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을 다루는 곳이다 보니

 

역사적으로 볼거리가 많은 곳인데

 

한편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곳이라 의외로 가족들이 나들이하러 많이 놀러 오는 모습에 놀라면서

 

저도 잠시 쉬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버스 위치를 확인해보니 그럴 여유가 없어서

 

 

 

 

읍내에서 2시 30분에 출발하는 19-1번 버스를 다시 타고

 

종점으로 이동해 다음 버스로 갈아탑니다.

 

 

● 승차 노선: 파주 19-1번
● 승차 구간: 법원구터미널.우시장 - 자운서원 - 방미
● 이동 거리: 5.9km(누적 90.4km)
● 버스 요금: 2,900원(누적 10,4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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