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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내)버스 일주 여행/전국일주

3. 흔적만 남은 벽제관지(고양 850번)

 

 

원릉역을 떠나 근처에 있는 원당래미안아파트 정류장으로 이동해

 

850번 시내버스를 타고 교외선과 비슷하게 달려

 

 

 

 

고양동시장에 내렸습니다.

 

 

 

 

고양동시장이 있는 고양동을 비롯해서 인근 지역인 관산동, 대자동 일대는

 

고양군 시절에는 벽제읍이라는 하나의 동네였는데요.

 

벽제라는 지명에 대한 유래는 2가지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조선 영조가 사도세자의 혼을 달래던 중 일대를 우연히 지나갔는데

 

유독 이 일대가 숲이 울창하고 골이 깊어 푸를 벽, 굽 제를 붙여 벽제라고 이름 붙였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이곳이 중국으로 향하는 길목이라

 

중국으로 가는 관리들이 여기를 지날 때 벽제라는 큰 소리를 내는 기구를 써서 여기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외지인이 지명 유래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2번째 설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고양동시장 인근에 있는 벽제관이라는 건물이 있던 흔적 때문입니다.

 

 

 

 

벽제관은 중국으로 향하던 조선시대 사신들이 머물던 객사로

 

조선 성종 때인 1476년에 고양군에 지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지금 위치에서 서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관산동 고골 일대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으로 고양군 관아와 함께 벽제관이 불타버리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하네요.

 

1년 뒤인 1593년에는 조명연합군이 치열하게 싸우다 왜군에 패배한 벽제관 전투의 무대가 되기도 했으니

 

한참 뒤의 인물인 영조가 벽제라는 지명을 붙였다기엔...

 

 

 

 

어쨌거나 벽제관 건물은 1900년대 초반까지는 원형을 보존한 채로 남아있었으나

 

 

 

 

조선시대 건물들이 늘 그렇듯이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모조리 소실돼서

 

지금은 이렇게 터만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조선의 외교와 전쟁사를 담고 있는 건물이라 흔적만으로도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고양시에서도 '고양 600년'이라는 슬로건을 밀면서 도시의 역사에 대해 강조를 하는 추세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건물 복원 계획이 잡혀 있네요.

 

 

 

 

고양동 일대에는 벽제관지 외에 다른 관광지가 있긴 한데

 

 

 

 

중남미문화원 부설 박물관은 아직 문을 열려면 시간이 한참 멀었고

 

 

 

 

고양향교도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일단 고양동시장으로 돌아왔습니다.

 

 

ps. 벽제관지는 고양동에 있지만 일반적으로 벽제라고 부르는 동네는 고양동이 아닌 관산동 일대고

 

벽제 목암지구라는 택지개발지구는 법정동 벽제동에 있습니다.

 

그 외에 교외선 벽제역이 있는 동네는 대자동이고

 

벽제야구장이라는 별칭이 친숙한 서울경찰수련장 야구장은 내유동에 있습니다.

 

이게 다 벽제읍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바람에....

 

 

 승차 노선: 고양 850번
 승차 구간: 원당래미안아파트 - 고양동시장
 이동 거리: 8.8km(누적 28.8km)
 버스 요금: 1,450원(누적 2,61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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