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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여행기/1~4호선

449. 한대앞역 - 성호기념관



4호선 한대앞역에 왔습니다.


2호선 한양대역과는 달리 한양대학교 안산 캠퍼스(현 에리카 캠퍼스)에서 이름을 딴 역이죠.





한대앞역은 4호선과 수인선이 갈라지는 역이 될 예정이라 4호선 철길 양 옆은 수인선 선로 공사 중입니다.


원래는 2018년 12월 수인선이 개통할 예정이었지만 예산 삭감의 여파로 1년 또 미뤄졌네요.






한대앞역은 분명 대학교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정작 역에서 대학교를 볼 수 없습니다.





고잔 신도시가 개발되기 전에는 역 주변이 허허벌판이라


그나마 이름을 따올만한 시설이 한양대 밖에 없었는데


택지지구가 들어서면서 역 이름이 지역과 좀 따로 놀게 됐네요.




역 근처에는 눈에 띄는 곳이 딱히 없어 버스를 타고





굴다리앞 정류장에 내렸습니다.





정류장 이름이 참 직관적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 걸어 성호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여긴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는 곳입니다.





입장료를 받긴 하는데, 입장료가 500원입니다.


시에서 보조를 받긴 하겠지만 이것만 받아서 기념관 유지가 되는지 걱정될 정도로 쌉니다.






전시실은 2층에 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성호 이익의 연대기가 적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성호 이익입니다.





붕당 간 다툼의 여파로 벼슬길이 막혔지만,


대신 재야 학자로서 일찍이 천주교를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수용하면서 실학의 기반을 다졌고,


한전론, 과거제도 정비, 병농일치를 통한 군사제도 개편 등 여러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전시실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가계도입니다.






가계도를 보니 조선 후기 실학자 여럿이 이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눈에 띕니다.

반계 유형원은 이익보다 앞서 균전론, 노비제 타파 등을 주장한 실학자이고,




이중환은 전국을 답사하면서 지리서 '택리지'를 저술한 학자이고,




이수광은 일종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을 저술하면서 외국의 여러 문물을 소개한 사람입니다.

정약용이야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실학자죠.



성호사설



이익은 붕당으로 따지면 남인으로 분류되는 사람인데,


그가 살았던 시기는 경종 - 영조 치세였고, 이때는 소론과 노론이 정권을 차지하던 시절입니다.


남인은 권력에서 배제되다시피 했기에 정치에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곽우록



대신 성호사설, 곽우록과 같은 책을 쓰면서 자신의 사상과 주장을 남겼죠.


이익의 사상은 이후 중농학파로 불리는 실학자들에게 영향을 줘 성호학파라는 명칭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시실에는 성호 이익 이후의 실학자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들이 저술한 책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왼쪽은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 오른쪽은 다산 정약용이 쓴 여유당전서입니다.


다만 박지원은 노론 출신 중상학파로 이익과는 조금 다른 주장을 펼친 사람이라


여기에서 소개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박지원이 이익에게 어느 정도 영향은 받았을 수 있지만 말이죠.





이어서 이익의 가족과 관련된 전시물이 나옵니다.





이 거문고는 이익의 형 옥동 이서가 연주하던 거문고라고 합니다.





거문고 맞은편에는 우조초삭대엽이라는 거문고 반주악보가 있는데요.





악보를 보면 특이하게 악기 소리를 훈민정음으로 적은 게 눈에 띕니다.





이건 이익의 아버지 매산 이하진이 남긴 천금물전이라는 서첩입니다.


주변 산천 자연과 소박한 소유물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에 이어 형이 남긴 글귀도 보입니다.


왼쪽은 초서체로, 오른쪽은 해서체로 적은 서예죠.


이서는 조선 최초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지을 정도로 서예에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기도 한 강세황이 이익의 부탁을 받아 그린 도산서원도입니다.


이익과 강세황 모두 안산군에 살던 사람이니 친분이 있었겠죠.





전시전 끝에는 천주실의가 있습니다.


청나라에 선교하러 온 마태오 리치가 가톨릭의 교리를 요약해 쓴 책으로


이 책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실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발문을 쓴 사람이 바로 이익이죠.





이익은 천주교를 학문으로서 받아들였으나 종교로는 배척했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이익의 제자는


천주교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공서파와 천주교를 종교로서 받아들인 신서파로 찢어지게 되죠.


이중 신서파는 여럿이 천주교로 개종해 신해박해부터 병인박해까지 100여 년에 이르는 탄압을 받게 되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개화파로 이어지게 되고


공서파는 서구 문물과 서양 통상을 거부하는 위정청사파로 이어지게 됩니다.





전시전을 나와 성호기념관에 유물을 기증한 분들에 대한 설명을 읽은 뒤 기념관을 나왔습니다.





성호기념관 맞은편에는 이익선생묘가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익선생묘 맞은편에 성호기념관이 들어섰죠.


원래는 반월공단 조성으로 인해 무덤을 이장하려 했지만


이익의 무덤만은 원래 자리에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


이익을 제외한 다른 무덤만 이장하고 이익의 무덤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익을 기리는 사당 첨성사와 재실 경호재는 문이 굳게 닫혀 있네요.





성호기념관 바로 옆에는 안산식물원이 있습니다.


성호기념관은 9시에 문을 여는데 안산식물원은 10시에 문을 열어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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