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노우미항에 돌아온 뒤
아까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갑니다.
철도 건널목을 건너면서
괜히 좌우를 살펴보고
타다노우미역에 도착.
여기서 쿠레선 열차를 타고 미하라역으로 다시 가야 하는데
열차 시간표를 보니 배차간격이 참 처참하네요.
파란색 숫자로 적힌 시간은 관광열차 성격의 etSETOra라서 논외로 치면
1시간에 1대 꼴로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면 일본 지방 재래선 치고는 양호한 수준이니...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전날 호텔로 배송을 시킨 로이즈 초콜릿 한정판 복숭아맛 초콜릿을 꺼내
열심히 우걱우걱 먹어치우고
타다노우미역 근처에 있는 타케하라시 관광에 대한 소개문을 간단히 읽어봅니다.
옛 모습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풍경 보존 지구 같은 관광지가 있고
타다노우미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니 저런 안내문이 붙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패스.
다시 빨간 열차를 타고
방금 전 다녀온 오쿠노시마와
오쿠노시마를 떠나는 배를 본 뒤 잠시 열차에서 휴식.
열차의 종착역인 미하라역에 왔는데
다음 열차를 탈 때까지 시간이 잠시 비어
미하라역에 있는 카페 생 에토일레(Saint Etoile)에 들어가
아이스커피를 1잔 주문합니다.
2019년에 일본이 소비세를 10%로 올렸지만
테이크 아웃음식은 여전히 8%로 유지 중이라 주문할 때마다 가격이 헷갈리는데
여기는 안에서 마실 때 가격과 밖으로 가져갈 때 가격을 둘 다 붙여두고 있네요.
커피를 다 마시고 미하라역 승강장으로 올라가니
전체를 노란색으로 칠한 한눈에 봐도 오래된 열차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히로시마도 저 샛노란 열차로 가득했는데
2019년쯤 거의 모든 열차를 레드 윙이라는 애칭이 붙은 빨간 열차로 바꿨거든요.
사진에 찍힌 열차는 오카야마를 출발해서 히로시마 권역까지 들어오는 열차인데
오카야마 지구도 오른쪽 빨간 열차를 색깔만 바꿔 도입할 예정이라
저 열차를 보게 될 날도 그리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여행객에게 저 열차는 그저 똥차일 뿐이지만
일본국유철도의 흔적을 좋아하는 철도 오타쿠들에게는 소중한 열차일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저는 아닙니다.
아무튼 히로시마로 가는 빨간 열차를 타고 굽이굽이 휜 철길을 달려
히로시마역에 도착하기 전 작은 역에 내렸습니다.
히로시마 동쪽 외곽 지역에 있는 세노역인데
여기에 스카이레일이라는 특이한 모노레일이 있거든요.
모처럼 히로시마에 왔으니
그리고 폐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선이니 타보기로 합니다.
시간표를 가볍게 살펴보고
개찰구를 보니 다른 철도와는 개찰구가 좀 많이 다른데
일반적인 승차권은 QR코드가 인쇄돼서 QR을 개찰기에 찍고 통과하고
회수권 카드는 위에 IC카드 단말기에 찍고 통과합니다.
여기서 쓰는 회수권 카드는 일본 최초로 철도에 도입한 교통카드고
QR 승차권도 일본 최초로 철도에 도입한 승차권인데
교통카드는 워낙 오래전에 만든 카드라서 인식 속도가 느린 건지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잠시 기다려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네요.
스카이레일에서만 쓰는 회수권용 교통카드 외에
스이카나 이코카 같은 다른 교통카드는 지원하지 않아서
QR 승차권을 구입하고 모노레일을 타러 올라갑니다.
스카이레일에서는 일반적인 모노레일과는 좀 많이 다른
케이블카나 곤돌라 같은 차를 쓰고 있는데
어쨌거나 법적으로는 궤도교통이라서
인상적인 철도 차량에 주는 로렐상을 스카이레일 차에 수여했습니다.
차량 위로 놓인 레일에 매달린 채로 미도리구치역을 출발하는데
모노레일에서 보이는 풍경이 좀 비범하네요.
비탈진 경사에 지어진 수많은 집들을 보니
왜 이런 모노레일이 생겼는지 알 것 같습니다.
스카이레일을 운영하는 회사는 '스카이레일 타운 미도리카자'를 조성한 부동산 개발회사의 자회사거든요.
이런 경사진 곳에 주택지를 만들면 사람들이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지
주택지와 철도역을 잇는 모노레일을 같이 만든 것 같네요.
모노레일을 지으면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고베 제강,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개발한 새로운 형태의 현수식 모노레일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1998년 이 노선을 지었을 때에는 최신 기술이었겠지만
점점 시설이 노후화되면서 유지보수 비용이 증가했는데
스카이레일에서 쓰는 모노레일이 다른 곳으로 퍼지지 못해서 사실상 독자 규격이 돼버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지보수 비용이 부담됐고
코로나 이후 이용객도 줄어들어 결국 2023년 말 노선을 폐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로는 전기버스를 도입해서 운행한다고 하는데
이 가파른 언덕길을 달리는 버스를 타는 것도 제법 흥미로운 경험이겠지만
그래도 폐선 전에 스카이레일을 한번 타봐야겠다 싶어 시간을 내서 와봤네요.
여기를 다녀온 뒤 전기버스 도입이 지연돼서 폐선을 2024년 4월로 미룬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어쨌거나 폐선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종점 미도리츄오역에 내리니
나가는 곳에는 개찰기가 따로 없고
모노레일을 탈 때 찍은 QR 승차권을 버리는 회수통만 있어서
이미 산 승차권은 기념으로 가져가기로 합니다.
역에서 내리니 스카이레일 타운 미도리자카 구역도가 보이는데
말 그대로 여기는 주택지라서 여행자가 가볼 만한 곳은 없거든요.
그러니 바로 모노레일을 타고 아래로 내려갑니다.
다시 승차권을 찍고
모노레일에 탄 뒤
미도리구치역으로 돌아가면서
Riding Skyrail in Hiroshima(1)
이동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려고 했는데
하도 진동이 심해서 그런지 영상 촬영이 저절로 멈춰버리네요.
Riding Skyrail in Hiroshima(2)
하는 수 없이 뚝뚝 끊긴 영상만 남기고
미도리구치역 옆 세노역으로 돌아와 다시 JR 열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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