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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여행기/1~4호선

P161. 진위역 - 먼 데서 만난 정도전



평택시 북쪽 끝에 있는 진위역에 왔습니다.





북쪽 끝이라는 얘기는 시 외곽이라는 뜻이기도 하죠.


그래서 육교 위에서 바라본 진위역 주변은 휑합니다.





역 주변에 가볼만한 곳이 안 보이니 이번에도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8번 마을버스에 탑승.





6월 1일부터 모든 평택시 버스에 무료 와이파이가 설치됐습니다.


와이파이가 달린 시내버스야 다른 곳에도 많지만


평택시는 마을버스에도 와이파이를 설치했네요.


그 덕에 평택시 여행을 하는 내내 데이터 걱정 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종점 바로 전 정류장인 은산2리회관앞 정류장에 내렸습니다.





주변에는 정류장 팻말은 없고 경로당만 있네요.





주변을 둘러보니 흔하디 흔한 시골 풍경이라 여기에 볼만한게 뭐가 있나 싶지만





버스가 지나간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삼봉기념관이 나옵니다.


삼봉은 정도전의 호(號)니 정도전을 기리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를 내리고 간 버스는 그새 종점을 찍고 송탄으로 돌아가네요.





삼봉기념관 안으로 들어갑니다.





삼봉기념관이 보관하고 있는 문화재 중 가장 중요한 문화재는 삼봉집 목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2호)입니다.


정도전이 남긴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불씨잡변, 심기리편 등 여러 글을 모은 문집이 삼봉집인데,


정도전이 직접 쓴 책은 1차 왕자의 난의 여파로 사라졌다 세조 11년과 성종 18년에 다시 찍었고,


정조 15년에는 세조 때 간행된 삼봉집에서 빠진 책을 추가하고, 오류를 수정해 찍었는데,


삼봉기념관에 있는 목판은 정조 15년에 삼봉집을 만들 때 쓴 목판입니다.


여담으로 세조 11년에 찍은 삼봉집은 성종 18년에 찍은 삼봉집과 함께 보물 제1702호로 지정됐고,


현재 계명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일부 목판은 글씨가 새겨진 면을 볼 수 있게 놓았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길이가 조금 다르지만 글씨 형태가 뚜렷한 걸 보니 처음 만들 때부터 저랬나 봅니다.





목판 옆에는 정도전이 쓴 책이 여럿 놓여 있습니다.





별다른 제목 없이 삼봉집으로 묶어 편찬한 책도 있고,





경국대전 편찬 이전 법전으로 사용한 조선경국전,


중앙 정치체제에 대해 다룬 경제문감,


유학자로서 불교에 대해 비판한 불씨잡변과 심기리편 등 이름이 잘 알려진 책도 있습니다.





정도전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도 있는데





대부분은 원본이 아니라 사진(영인본)같네요.





정도전의 장남인 희절공 정진과 관련된 전시물도 있습니다.


조선개국 원종공신록권이라는 글인데,


녹권(錄券)은 공신이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 어떤 혜택을 받는지를 기록한 문서입니다.


아버지가 조선 건국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만큼 아들 역시 그에 걸맞는 공을 세웠나 봅니다.





정도전 표준 영정을 본 뒤





삼봉기념관을 나와 바로 옆 삼봉문학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삼봉기념관에서 보지 못한 정도전의 생애가 벽에 걸려 있네요.


고려 말 신진 사대부로서 정계에 입문해 이인임에 반대하다 유배당한 뒤


이성계를 비롯한 신흥 무인 세력과 결탁해 역성혁명을 일으켜 조선 건국을 주도하다


이성계의 후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방원 등 여러 왕자와 갈등을 빚어 죽기까지의 일대기가 설명돼 있습니다.





정도전 사후 정도전과 관련된 사건도 몇 가지 실려 있네요.


정도전이 종친모해죄라는 명목으로 죽어 공식적으로는 이런저런 폄하를 당했지만


그의 후손이 고위관직에 오르는 등 비공식적으로는 복권됐고,


고종 대에는 공식적으로 복권되면서 문헌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정도전의 가계도도 보이는데,


삼봉문학관에서 자세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정도전의 아버지 염의공 정운경과 장남 희절공 정진입니다.


정운경은 고려 말 전주목사, 영록대부 형부상서(조선으로 치면 형조판서와 비슷합니다.) 등을 지낸 인물이고,


정진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도승지, 원주목사 등을 지내다 아버지가 변을 당하면서 관직을 박탈당해 수군으로 끌려갔으나


시간이 지나 복권돼 세종 대에 한성부사,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지냈습니다.



봉화정씨세보. 천·지·인 3권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정도전의 후손이 멸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산대마을에 집성촌을 만들어 대를 이어왔고,


후손 이름이 적힌 족보도 남아 있습니다.


산대마을은 오늘날의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이니


삼봉기념관이 구석진 시골 마을에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셈이죠.





삼봉'문학'관이니 정도전이 남긴 이런저런 말이나 정도전이 남긴 유산을 활용한 탁본이 있습니다.





800년 전 사람이니 오늘날 정치와는 연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 말은 지금 봐도 통하는 바가 있는 말이라 따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삼봉기념관 옆에는 정도전을 기리는 사당인 문헌사, 정진을 기리는 사당인 희절사가 있습니다.


역시나 문은 굳게 닫혀 있네요.


여담으로 정도전의 묘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1989년 양재역 근처 우면산 기슭에서 정도전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발굴했지만


지석이 없어 정도전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죠.


그래서 정도전의 후손들은 이곳 산대마을에 가묘를 만들어 제사를 지냈고


우면산에서 무덤이 발견된 뒤에도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사당 구경은 못하니 계단 위에서 은대리 경치를 보고 삼봉기념관을 나왔습니다.





8번 버스를 타고 진위역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버스 종점으로 가보니 여기도 버스 정류장 팻말은 따로 없네요.





종점 슈퍼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서 근처 정자에서 마시면서 쉬다





버스를 타고 진위역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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