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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상세)/2023.03.30 도쿄

31. 투쟁의 역사를 기리는 하늘과 대지의 역사관

 

 

항공과학박물관 건너편에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작은 지역사 박물관이 있습니다.

 

 

 

 

하늘과 대지의 역사관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이름에 비해

 

안으로 들어가면 어딘지 모르게 살벌한 느낌이 드는데

 

 

 

 

이 박물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나리타 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운 이곳 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공항이 지어진 나리타시 일대에 살던 사람들은 히키아게샤(引揚者)라고 불리는 사람들인데

 

조선, 대만, 만주 등 일본의 식민지에 거주했다 일제 패망 후 일본으로 귀국한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입니다.

 

 

 

 

한국의 근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식민지 현지인에 대해 차별대우를 하고 피해를 입혔기에

 

일본이 전쟁에서 항복하고 식민지를 포기하자

 

식민지에서 살던 일본인들은 식민지에서 그대로 살기 어려워 일본 본토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요.

 

문제는 일본 정부가 전후 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히키아게샤를 돌볼 여력이 없었기에

 

이들은 정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그리고 무일푼으로 일본으로 복귀해야 했고

 

그렇게 돌아온 본국에서 기다리는 것은 차별과 멸시였습니다.

 

 

 

 

히키아게샤들이 일본으로 건너와 생계를 유지하는 동안

 

일본 정부는 경제 성장으로 항공 수요가 폭발하면서

 

혼잡도가 심각해진 하네다 공항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심합니다.

 

도쿄 앞 바다를 메워 만든 하네다 공항을 더 확장하는 것은 당시의 기술로서는 어려웠기에

 

일본 정부는 하네다 공항을 대신할 신도쿄 국제공항을 짓기로 하고 부지를 물색합니다.

 

 

 

 

일본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날아오는 비행기를 수용해야 하기에

 

신도쿄 국제공항을 지을 땅은 매우 넓어야 했고

 

공항이 들어설 땅을 선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는데

 

 

 

 

일본 궁내청 소유의 목장이 있어 토지 보상이 쉬울 것으로 보이는 나리타시 일대에

 

새로운 공항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히키아게샤를 비롯해서 나리타 주민에게는 어떠한 협의도 없이.

 

 

 

 

정부의 말만 믿고 식민지로 건너갔다 어떠한 도움도 없이 목숨만 부지한 채 일본으로 돌아와

 

주변의 시선을 참아내며 묵묵히 삶의 터전을 일궈냈더니

 

이제는 어떠한 말도 없이 토지를 뺏어가는 정부의 모습에 이들은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더해 프랑스 68혁명, 베트남 전쟁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세력이 힘을 더하면서

 

 

 

 

지금의 일본의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피의 투쟁을 벌이게 됩니다.

 

 

 

 

공항이 들어서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한 마을 이름에서 따온 산리즈카 투쟁(三里塚闘争)이라고 불리는 이 투쟁에서

 

 

 

 

주민들은 머리에는 헬멧을 쓰고

 

 

 

 

손에는 몽둥이와 막대, 망치를 들고

 

 

 

 

자신들을 몰아내고 공항을 지으려는 경찰에 맞섭니다.

 

 

 

 

당시의 모습을 담은 영상의 제목부터가 유혈의 나날인데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물대포와 최루탄이 등장하는 것은 기본이고

 

 

 

 

진압대가 방패를 들고 자신들을 옥죄어오자 막대를 들고 공격하는가 하면

 

 

 

 

반대로 자신들이 농성을 이어나가기 위해 스스로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시위가 격화돼서 공항 개항을 제때 할 수 없게 된 일본 정부는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누가 다치건 말건 공무원과 경찰을 가로막는 사람은 일단 공무집행방해로 체포하고

 

 

 

 

행정대집행 명령을 내려 퇴거와 철거를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농성을 위해 지은 철탑은 물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집까지

 

 

 

 

흔적도 안 남게 그냥 밀어버렸습니다.

 

 

 

 

그 뒤로도 시위대가 공항 관제탑을 점거하는가 하면

 

도쿄에서 공항을 이을 철도를 파괴하는 등 공항 개항을 집요하게 방해했는데

 

 

 

 

시위대는 공항 개항을 끝내 막을 수 없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개항한 나리타 공항은 원래 계획에서 좀 많이 벗어난 반쪽짜리 공항이 돼버렸습니다.

 

 

 

 

나리타 공항 위성사진을 잘 보면 공항 한가운데 민가가 있는가 하면

 

 

 

 

활주로의 끝에 왠 신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여기는 토지 수용을 끝까지 반대하고 알박기에 성공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죠.

 

 

 

 

공항 개항 이후에도 시위는 지속됐는데

 

 

 

 

일본 정부는 제 기능을 못하는 나리타 공항을 어떻게든 제대로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했기에

 

나리타 공항을 확장하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또다시 큰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나리타 공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검문을 받아야 했고

 

지금도 나리타 공항 주변에는 곳곳에 경비원들이 상주하며 거수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전철을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오면 위와 같은 빈 시설이 나오는데

 

공항 이용객들을 일일이 확인했던 검문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죠.

 

 

 

 

이후 일본 정부가 피해를 입은 농민들에게 사과를 하고

 

 

 

 

공항 건설로 다른 지역과 단절된 주민들을 위해 시바야마 철도를 짓는 등의 유화책을 펼쳐

 

투쟁의 강도는 예전보다 약해졌지만

 

 

 

 

지금도 나리타 공항 반대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여기에 남아있고

 

지금도 토지 수용과 관련된 행정대집행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일본인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곳만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곳이라고 할 수 있죠.

 

 

 

 

한편 우여곡절 끝에 지어진 나리타 공항은

 

도쿄를 대표하는 공항으로 쓰기에는 활주로 개수도 부족하고 길이도 짧아

 

인천국제공항이 허브공항으로 성장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덕에

 

일본 정부가 나리타 공항 육성을 포기하고 다시 하네다 공항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나리타 공항은 LCC를 적극적으로 유치해 제 살길을 찾기 시작했지만

 

지금의 시설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어

 

3곳으로 나뉜 터미널을 하나로 합치면서

 

새 활주로를 짓고 기존 활주로도 길이를 늘리는 공사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과연 이번에는 물리적 충돌 없이 계획대로 지어질 수 있을지...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한국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이 떠올랐지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박물관에서 나와

 

 

 

 

박물관 전시물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

 

 

 

 

다시 버스를 타고

 

 

 

 

시바야마치요다역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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