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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2017 수원화성

8. 수원화성박물관, 행궁동 벽화마을 (8.19)



융건릉을 출발해 팔달구청 바로 옆에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거중기를 포함해 화성 건축에 사용된 여러 도구 모형을 전시해두고 있네요.


왼쪽부터 수레로 쓰던 유형거, 화성 건축을 대표하는 거중기, 돌을 들어올리는 데 쓰던 녹로입니다.





수원화성박물관은 입장료가 2,000원이지만, 이벤트를 통해 사실상 입장료 없이 입장이 가능합니다.





매표소 직원도 대놓고 무료 입장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네요.

(2017년 12월 31일 이후 이벤트 종료)





전시실은 2층에 있어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주변 모형이 보입니다.


사대문과 화성행궁은 물론 자잘한 시설까지 상당히 자세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찾은 전시물은 화성성역의궤입니다.


성을 축성하면서 건설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인데,


이 책 덕분에 화성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말 그대로 박살났지만 100%에 가깝게 복원되었고,


그 덕에 복원물임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수 있었죠.


책 자체도 조선왕실의궤(조선왕조의궤)의 일부로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프랑스어로 번역된 의궤도 보입니다.





돌을 깎고, 벽돌을 굽고, 나무를 베어 수원으로 옮긴 뒤 성을 축조하는 장면을 담은 디오라마가 보입니다.


성을 짓는 데 드는 재료를 수원에서만 조달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으니 전국에서 건축 자재를 가져왔는데,


이 재료를 어느 지방에서 조달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화성성역의궤에 전부 적혀있습니다.


심지어 건설 과정에 투입된 노동자 이름까지 말이죠.


조선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기록을 잘 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는 수원에 만들어진 여러 저수지를 알려주는 코너입니다.


정조가 수원에 화성을 건설하면서 공을 들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둔전인데,


수원에 주둔한 군대 '장용영' 군사들의 군량미를 확보하면서


토지 없는 백성들이 둔전에서 농사를 지어 경제적 안정을 꾀하게 한 것이죠.


논농사에는 물이 반드시 필요하니 둔전 주변에 여러 저수지를 지었는데,


만석거, 만년제, 축만제가 바로 왕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저수지입니다.


이 중 오늘날 수원시 지역에 해당하는 만석거, 축만제는


지금도 저수지처럼 물을 잔뜩 머금은 채 만석공원, 서호공원이라는 호수공원으로 남아있습니다.





두 번째 전시실로 들어가니 여러 그림이 보입니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가 있고 어머니가 머물고 있는 수원에 자주 행차했기에 이를 기록한 그림도 여럿 있죠.





그 중 눈에 띄던 그림은 한강을 건너는 모습을 담은 한강주교환어도입니다.


다리 대신 배다리를 놓아 왕이 가마를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은 실제로 보게 된다면 장관일 듯 하네요.


지금이야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많지만 조선 시대에는 한강을 건너는 일 자체가 힘든 일이었을테니.





이건 을묘원행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입니다.


화성행궁을 가보면 시설 설명문에 을묘원행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


을묘년(1795년)은 바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린 해이기 때문이죠.


을묘원행을 기록한 별도의 의궤가 있을 정도로 회갑연이 성대하게 치뤄진 듯 합니다.





수원화성박물관에도 을묘년에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린 회갑연을 재현해놓은 디오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수원화성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화성 건설을 명령한 정조, 그리고 설계를 주도한 정약용이 떠오르지만,


사실 정조 때 좌의정을 지낸 채제공 역시 화성 축성에 기여했습니다.


화성축성 총리대신으로 임명된 채제공은 모든 축성 과정을 총괄하고 지휘했죠.


하지만 정조와 정약용이 워낙 뛰어난 인물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채제공의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합니다.


대신 수원화성박물관에는 정약용이 아닌 채제공 초상을 전시하고 있네요.





화성에는 여러 군사 시설이 있으니 당연히 군대가 주둔했는데, 화성에 주둔한 군대는 장용영입니다.


장용영은 조선 중앙군 5군영(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과는 별도로


정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조직한 친위대인데


혜경궁 홍씨 호위를 겸해 수원화성 방어를 위해 수원에 주둔한 군대 역시 장용영입니다.


정조가 왕위를 순조에게 물려준 뒤 수원 화성행궁에서 머무를 때


정조를 호위할 군대로도 활용할 계획이었지만


정조가 이른 나이에 죽는 바람에 장용영 역시 해체되었습니다.





수원화성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장용영에 대한 설명이 빠질 수 없으니


수원화성박물관에 장용영에서 사용하던 무기 일부와 모형이 전시중입니다.





서북공심돈에 투입된 군사들의 모습도 보이네요.





박물관 출입구 옆 길을 따라가니 어린이 체험실이 보입니다.


이런저런 수원화성 관련 공예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듯 한데, 어른이지만 괜히 끌립니다.





수원화성박물관 바로 옆에는 수원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청계천처럼 하천 위를 덮어 도로로 만들었는데,


수원화성 복원을 겸해 수원천도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복원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죠.




수원천을 따라 걸어 행궁동 벽화마을에 도착했습니다.


행궁동은 화성 성역화 사업으로 인해 개발이 제한되어 슬럼화가 진행되던 곳인데,


정조로 동쪽 지역 골목에 벽화를 그려 행궁동 벽화마을로 탈바꿈해


주택가에서 관광지로 바뀌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는 곳이 벽화마을이 되는 것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닙니다.


관광객들이 찾아와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이 싫은 사람들은


반달(vandal)이 되어 벽화에 다른 칠을 하기도 합니다. 행궁동 벽화마을 역시 다르지 않네요.





벽화 구경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행궁동에서 장안문으로 이동했습니다.


장안문 맞은편에는 수원에서 만두로 유명한 두 집, 보용만두와 보영만두가 있죠.


누가 원조인가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눈앞에 보이던 보용만두로 들어갔습니다.





만두집에 왔으니 당연히 만두를 주문한 뒤 물냉면을 시켰습니다.


냉면에 이것저것 든 게 많네요.





맞은 편에 있는 장안문을 보면서 식사를 하고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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