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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2017 수원화성

7. 융건릉 (8.19)



융건릉으로 가기 위해 일단 수원역으로 왔습니다.


수원역에서 융건릉으로 가는 버스는 46번과 720-2번 두 개가 있는데,


두 버스를 타는 승강장이 전혀 다르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46번 버스는 배차간격은 길지만 이동 시간이 짧아 이 버스를 탔는데,


수원 시민이 아닌 다른 동네 사람이라면 수원역에서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병점역 후문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융건릉 입구는 공사 중이라 좀 어수선합니다.



융건릉은 사도세자(장조)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무덤 융릉,


정조와 그의 부인 효의왕후의 무덤 건릉, 합쳐서 부르는 말입니다.


경국대전에는 왕릉을 도성에서 10리 밖, 100리 이하 구역에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정조가 아버지의 무덤을 수원 화산으로 이전한 뒤


자신의 무덤을 아버지 무덤 근처에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다른 왕릉과는 달리 서울에서 좀 멀리 있죠.





입장료는 1,000원이고, 화성시민은 할인받아서 500원입니다.


융건릉의 역사를 보면 수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기왕이면 수원시민도 할인해주지.......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오니 여느 왕릉처럼 무덤 주변에는 나무가 가득합니다.





왼쪽이 건릉, 오른쪽이 융릉인데, 일단 융릉부터 가봅니다.





융릉으로 가는 길에 놓인 연못 곤신지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왕릉 연못은 네모나다는데, 곤신지는 원형 연못입니다.


이것은 용의 여의주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를 차마 왕으로 추존하지 못한 정조가


아버지를 위한 마음을 돌려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용은 왕을 상징하니.





연못에는 작은 생태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연못 구석에서 계속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융릉에 왔습니다.


융릉은 구성 측면에서 다른 왕릉과 차이를 보이는데,


영혼이 드나든다는 홍전문(홍살문), 제사를 지내는 건물 정자각,


그리고 봉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는 일반적인 왕릉과는 달리


융릉은 이 배치가 조금 틀어져 있습니다.


풍수 지리적으로 지금의 봉분 위치가 좀 더 명당이라 방향을 틀어놓았다고 하네요.





홍전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참도는


향과 축문이 통하는 길 '향로'와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 '어로'로 나뉩니다.


왕조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니 향로가 어로보다 미묘하게 높습니다.





여긴 제례를 지낼 때 음식을 차리거나 데우기 위해 부엌을 설치한 수라간입니다.


일반적으로 왕릉에는 정자각 서남쪽에 수라간을 지어놨고, 융릉 역시 마찬가지죠.


그나저나 어떤 사람이 수라간 마루에 앉아 쉬다 떠났는데, 그래도 되는지?





제사를 모시는 정자각입니다.


정자각은 정청과 배위청으로 나뉘는데,


두 개가 합쳐진 모양이 정(丁)자와 같다고 해서 정자각이라고 합니다.


내부에는 제기 배치 등 제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여느 왕릉과 마찬가지로 융릉의 봉분 역시


보존상의 이유로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융릉 주변 인석에는 연꽃 봉오리가 조각돼 있는데,


뜻을 펴지 못하고 죽은 사도세자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하는 해석이 융건릉 팸플릿에 적혀 있습니다.





봉분 오른쪽에는 비석이나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세워둔 비각이 있습니다.





융릉 비각에는 비석이 둘 있는데,


정조가 사도세자를 장헌으로 추존하고, 고종이 장조로 추존해 비석을 두 번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릉은 숲 보존이 잘 되었기에 경관도 좋아 산책로를 꾸며놓은 곳이 많은데,


융건릉 역시 능역 내에 산책로를 여럿 만들어놨습니다.


곤충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정조와 그의 부인 효의왕후의 무덤 건릉에 왔습니다.


이제 와서 보니 사진을 정말 개판으로 찍었네요;;;





수라간, 정자각 등 왕릉을 구성하는 시설은 융릉과 똑같습니다.





역시나 울타리가 쳐진 건릉 봉분.





건릉 비각에는 비석 하나가 있습니다.





융릉에서 깜빡하고 놓친 사실인데,


비각에 보관 중인 비석은 앞에는 전서체로 무덤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나와있습니다.


구체적인 비문은 비서 뒷면에 해서체로 기록했습니다.





융릉에 연못 '곤신지'가 있듯이 건릉에도 연못 '천년지'가 있습니다.


동그란 곤신지와는 달리 천년지는 네모난 모양인데,


어째 천년지로 향하는 길은 별다른 안내문이 없네요.





안내도에 의하면 아마 저 길이 천년지로 향하는 길인데, 지금은 막혀 있습니다.





융건릉 검표소 맞은편에 위치한 융건릉 역사문화관에 왔습니다.


입구 바로 옆에 공사장 패널이 있어 여기도 공사 중인가 했는데 안에 들어갈 수 있네요.





역사문화관에 들어가면 융건릉은 물론 조선왕릉에 대한 정보를


여러 영상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세자'묘'가 장헌세자 현륭'원'을 거쳐 융'릉'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선왕릉에 대한 설명도 있죠.





정조 재위 기간 중 있던 수원 행차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을묘년 원행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설명하는 영상입니다.


을묘원행이 규모가 가장 컸던 이유는


정조의 어머니 헤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무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진, 매표소 바로 옆에 있는 재실입니다.


제관들이 제례를 지내기 전 몸을 씻으면서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이죠.





왕릉 내 다른 시설과는 달리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것이 눈에 띕니다.





융건릉을 돌아보는 동안 유용하게 사용한 부채입니다.


검표소에서 표를 확인한 뒤 관람객에게 부채를 빌려줬죠.


처음에는 안 쓰려고 했는데, 너무나도 덥고 습한 날씨 덕에 얼굴에 땀이 계속 나


돌아다니는 내내 부채질을 했습니다.


부채에 그려진 무덤은 융릉도 건릉도 아닌데, 서오릉에서 쓰고 남은 부채를 가져온 것 같네요.





수원역에서 융건릉으로 갈 때 탄 46번 버스는 배차간격이 30분가량 돼서 오래 기다려야 하니


720-2번을 타고 수원대에서 내린 뒤, 700-2번으로 갈아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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