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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여행기/1~4호선

128. 동대문역 - 한양도성박물관

 

 

신설동에서 밥을 먹은 뒤 동대문역에 왔습니다.

 

 

 

 

동대문역 주변 랜드마크는 단연 동대문인데,

 

달랑 이거 하나만 보고 가긴 뭔가 아쉽네요.

 

 

 

 

그래서 동대문역에서 혜화동 방향으로 걸어가 

 

 

 

 

한양도성박물관에 왔습니다.

 

이름대로 한양도성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곳입니다.

 

 

 

 

 

1층 전시실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오늘날 서울의 모습 위에 빛으로 그린 한양도성 성곽길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성곽 곳곳이 파괴된 모습이 보이네요.

 

 

 

 

이어서 6개 구간으로 나눈 한양도성 성곽길을

 

 

 



 

각 구간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각 성곽길에 있는 주요 시설을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3층으로 올라가니 한양도성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공간이 나오네요.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면서 한양도성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정종 때 잠시 수도를 개경(개성)으로 옮긴 적도 있지만,

 

정종은 즉위 2년만에 왕위를 동생 이방원에게 물려줬고,

 

태종 이방원은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재천도했으니

 

조선 500년의 역사가 곧 한양도성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양도성을 지을 때 재료를 전국 곳곳에서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조선 건국 후 한양도성을 지을 때 각 지역이 위의 그림처럼 구간을 나눠 재료를 분담했습니다.

 

 

 

 

세종 4년(1422년) 무너진 곳을 다시 짓고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할 때도 재료를 지역별로 분담했습니다.

 

조선은 한반도 최초로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한 국가였으니 그만큼 중앙집권이 잘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요소입니다.

 

한편 태조 때와 세종 때 전국을 나눈 모습이 다른데요.

 

흔히 말하는 전국 8도는 조선 태종 때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건물이 지속적으로 보수공사를 받듯이 한양도성 역시 꾸준히 개보수를 거쳐왔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축성 기술도 변하는데, 개보수는 전 구간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니

 

같은 한양도성이라도 축성 양식은 여러 방식이 뒤섞여 있는 것 같네요.

 

 

 

 

이건 한양도성 축성 과정을 설명하는 전시물입니다.

 

오늘날에는 노동자를 고용해 토목공사에 동원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조선 시대를 포함해 동양에서는 요역이라 해서

 

양인들이 국가가 시행하는 토목 사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일종의 세금이었죠.

 

 

 

 

양인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는데,

 

농사 짓느라 바쁜 시기에 일 시켰다간

 

한해 농사를 망쳐 조세, 공납도 제대로 못 걷히니

 

공사는 농한기인 겨울에 시행됐습니다.

 

 

 

 

이어서 4대문을 포함한 각종 성문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4대문은 유교에서 강조하는 인의예지를 따서 이름을 지으려고 했으나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런저런 변화를 거쳐

 

방위별로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 되었죠.

 

이외에도 4소문으로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서소문), 창의문(자하문)이 있습니다.

 

 

벽면에 달린 화면을 눌러보니

 4대문 외에도 동대문 근처에 있는 혜화문과

 


광희문처럼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문을 보여주고 있네요.

 

 

 

 

이들 성문은 낮에는 도성 안과 바깥을 잇는 역할을 했지만

 

밤에는 문을 닫아 한양을 방어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하지만 급박한 사정으로 문을 열거나 밤에 문을 닫지 않아야 할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부험이라는 통행증을 만들었습니다.

 

부험은 두 쪽으로 갈라 하나는 궁중에서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수문장이 가져

 

유사시에 두 조각을 맞춰 문을 열 수 있게 했죠.

 

 

돈의문 아래로 전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

 

 

 

 

한양도성은 개항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성 방어라는 본래의 역할을 잃게 됩니다.

 

 

 

 

 

 

 

 

 

 

 

1899년 전차가 개통하면서 성문은 언제나 문이 열리게 됐고,

 

 

 

일제강점기에는 신사, 운동장 등 국가시설을 지을 목적으로 성곽 곳곳이 철거됐습니다.

 

 

4대문도 모두 철거하려 했다고 하는데,

 

 

 

 

 

돈의문은 실제로 철거돼 오늘날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흥인지문과 숭례문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수 코니시 유키나가와 카토 키요마사가 통과한 장소라는 이유로

 

 

 

 

 

 

 

철거를 면하고 경성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 지도와 함께 한양도성 사진을 통해

 

 

 

 

훼손된 한양도성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성곽 파괴는 계속됐습니다.

 

사람들이 서울에 몰리면서 이들이 살 집이 부족해 성곽을 허물고 집을 지었고,

 

6.25 전쟁을 겪으면서 총탄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고향을 잃은 사람들과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살 곳을 찾아 성곽을 허물고 판자촌을 짓기도 했죠.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됐지만 정작 성곽 복원 작업이 진행된 것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이 서울에 침투하면서 숙정문 일대에서 교전을 벌인 뒤입니다.

 

1990년 이후 남산 봉수대를 복원하고, 혜화문을 새로 짓는 등의 복원작업을 거쳤고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보존,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죠.

 

한양도성박물관 설립 역시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된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기와, 식기, 집터 등 여러 유물이 발굴됐습니다.

 

성곽터에서 발굴된 유물 중 일부가 전시전 마지막 구간에 놓여 있네요.

 

 

 

 

한양도성박물관 입구는 1층인데, 출구는 3층에 있습니다.

 

 

 

 

출구를 나오면 계단을 따라 동대문성곽공원, 그리고 한양도성 성곽길로 이어지죠.

 

 

 

 

계단에서 동대문 방향을 바라보니 구름이 끼긴 했지만 하늘이 맑습니다.

 

한동안 미세먼지로 고생했기에 오랜만에 이런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동대문역으로 돌아가던 중 성곽 돌에 이런저런 글씨가 새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걸 각자성석이라고 하는데, 오늘날로 치면 공사 실명제에 해당한다네요.

 

 

 

 

공사 시기, 담당 군영명, 공사 책임자, 공사 감독자를 새겨놔서

 

해당 구간이 언제 지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수도권 전철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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