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뮤지엄에서 열린 독립출판 행사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2021을 찾아
3개 층을 오르내리면서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찾아
그중 2권을 골랐습니다.
꽤나 시간을 들여 책을 골랐는데
이것만 가지고 글을 쓰자니 할 얘기가 많지 않아서
오랜만에 서울에 온 김에 한 곳 더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온 곳은 종로타워 옆 센트럴폴리스 지하 1층에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공평동 재개발 중 거의 온전한 모습을 간직한 채로 발굴된 골목길과 건물터를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한 채 건물 안으로 가져와 전시하는 박물관입니다.
건물터를 원래 있던 자리에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절로 감탄이 나오지만
사실 건물터와 조각 유물만 보고 가기엔 뭔가 조금 심심한데요.
그래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열린 특별전을 중심으로 박물관을 견학해보죠.
이날 본 특별전은 '화신백화점 - 사라진 종로의 랜드마크'.
말 그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신백화점을 기억하는 전시입니다.
서울의 중심지인 종로와 퇴계로 사이에는
20세기 초부터 여러 백화점들이 자리를 잡아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오늘날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이 된 미츠코시(三越)백화점이나
미도파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 자리에 장사를 하던
쵸지야(丁子屋)백화점 등의 일본계 백화점과는 달리
화신백화점은 조선인이 세운 유일한 백화점으로서
종로 상권의 상징을 넘어 민족의 자긍심을 세우는 곳이었습니다.
화신백화점 건물은 원래의 건물인 서관과
1932년에 인수한 동아백화점 건물을 고친 동관 이렇게 2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935년 화재로 서관이 전소되자 더욱 크고 화려한 신관을 지었는데요.
지하 1층 지상 6층 구조의 당시 경성 최고층 건물을 지은 김에
조선 최초로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건물 그 자체로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백화점(百貨店)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별의별 물건을 팔았지만
이 전시에서는 당시 신문에서 자주 다루던 혹은 자주 시샘하던
모던보이나 모던걸이 선택한 패션 아이템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화신백화점은 종로를 넘어서 전국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펼치는 등 대대적인 확장에 성공했는데
이런 성공 뒤에는 일제, 즉 조선총독부와의 긴밀한 연결고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민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전시체제를 지원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고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고 제1호로 구속된 사람이
다름 아닌 화신백화점의 사장 박흥식이었습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은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흐지부지되었고
박흥식도 구속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난 데다
정권이 바뀌는 와중에도 연줄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 사업을 지속했지만,
전쟁을 겪은 뒤 화신의 사세가 점점 기울어
화신그룹은 1980년에 부도로 도산했고
화신백화점으로 쓰던 건물은 1987년 재개발을 위해 허물어지고
그 위에는 동방생명(지금의 삼성생명)이 지은 종로타워가 들어섰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화신백화점이 사라졌으니 이곳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한동안 근현대와 관련된 전시를 연달아서 보다 보니 이번 전시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저보다 연배가 많은 분들에게는 좀 더 마음에 와닿는 전시일 것 같네요.
근대풍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보는 코너는 가볍게 지나가고
박물관에서 나와
바로 옆 종로타워를 찍고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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