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까지 차를 끌고 와서 소금산 출렁다리만 건너고 집으로 돌아가기엔 너무나도 아까우니
오크밸리에 있는 뮤지엄 산에 왔습니다.
뮤지엄 산은 전시실별로 요금을 매겨서 관람객이 요금을 선택할 수 있는데
뮤지엄 산을 방문한 사람들이 대부분 제임스터렐관을 보고 가기에
저 역시 제임스터렐권을 사고
평온한 들판을 지나
잔잔한 물이 둘러싼 미술관으로 들어갑니다.
미술관 건물 자체도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만든 건물인데
제임스터렐관이 입구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
제임스터렐관 입장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안도 타다오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출 콘크리트는 대충 구경만 하고 건물에서 나와
마저 길을 걸어
제임스터렐관에 도착했습니다.
제임스 터렐은 미국의 설치미술가인데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를 자연광과 인공광, 그리고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공간을 다루는 작가답게
제임스터렐관은 작가의 의도를 담아 건물을 따로 지었고
각 작품을 보러 들어갈 때마다 도슨트가 동행해 일일이 작품을 설명해줄 정도로
뮤지엄 산에서 상당히 공을 들인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이게 대체 무슨 미술인지 이해가 어려운 현대미술을
30분이라는 제한시간 동안 컨테이너 벨트 따라 이동하듯이 봐야 하지만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경계가 모호해지는 공간을 온몸으로 체험해보는 등의 경험을 해보니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참고로 제임스터렐관은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
대기실에 있는 TV와 액자를 사진으로 남기고
미술관 건물로 돌아와 종이박물관부터 둘러봅니다.
뮤지엄 산에 페이퍼 갤러리가 있는 데에는 뮤지엄 산을 운영하는 곳과 관련이 있는데
지금은 오크밸리가 HDC그룹 소유지만
원래 오크밸리를 개발하던 회사는 한솔제지를 소유한 한솔그룹이었기에
오크밸리를 만들면서 한솔종이박물관을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죠.
오크밸리를 현대산업개발에 매각하면서도 뮤지엄 산은 매각하지 않아
지금도 한솔문화재단에서 이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페이퍼 갤러리로 들어오면
제지 기술의 발달사와 함께
종이로 만들어진 다양한 공예품이나 고서를 볼 수 있습니다.
바느질 도구를 담은 실첩이나
불을 밝히는 접등 등의 공예품을 지나면
여러 고서들이 나오는데
그중 국보 제277호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을 주목할만합니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불심으로 막고자 만든 팔만대장경의 정식 명칭은
해인사 대장경판 또는 재조대장경인데
재조대장경이라는 이름은 이전에 대장경을 만든 적이 있다는 뜻이 담겨 있죠.
몽골의 고려 침입 이전에 거란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만든 대장경이 초조대장경이고
대장경판은 몽골의 침입 때 소실되었지만 대장경판을 종이에 찍은 목판본은 일부가 전해오고 있는데
이 두루마리가 바로 초조대장경을 구성하는 화엄경 중 하나입니다.
다만 전시실에 보관 중인 저 화엄경이 원본인지 전시를 위해 따로 만든 복제본인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귀한 고서를 보고 나서
판화공방으로 들어가
곽태임 작가의 Animal, Magic, Travel, Pyramid, Bug 시리즈 연작을 보거나
수묵화 전시가 열린 청조갤러리로 들어가
오래전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수묵화와는 전혀 다른
현대 추상화 같은 수묵화를 보는가 하면
한솔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화가들의
다양한 근현대 미술작품을 만나봤습니다.
전반적으로 만족했던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티켓을 받을 때 같이 받은 커피 쿠폰을 쓰러 카페로 갔는데
이 쿠폰이 스페셜티 커피만 쓸 수 있어서 원두를 살펴봤는데
아무리 스페셜티 원두가 비싸고 여기가 관광지라는 점을 감안해도
저 돈을 주고 커피를 마실 바에 밥을 먹고 만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대신
잔잔한 연못과 함께 펼쳐진 경치 구경만 하고
미술관으로 들어올 때에는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간
다양한 조형물을 보고
뮤지엄 산을 떠나
휴게소에서 커피값보다 싼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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