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는 미국 자동차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어지간한 관광지는 일본답지 않게 주차장을 무료로 제공하는 편인데요.
이번에 갈 곳은 그야말로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그런지 주차장이 따로 없어
일본에서 운전대를 잡고 나서 처음으로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댑니다.
교통과 관련된 건 뭐든지 한국보다 비싼 일본 답게 주차장 요금도 비싸니
되도록 빨리 보고 나와야 하는데
그 전에 작은 시설이 하나 있어서 여길 먼저 들어가 봅니다.
일본어로 쿠메시세이뵤(久米至聖廟)라고 부르는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공자묘.
유교의 창시자 공자를 모시는 사당입니다.
류큐 왕국 시절 국가에서 직접 지은 사당으로
한국으로 치면 향교의 부속 시설인 문묘와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조선의 문묘에는 공자를 비롯해서 중국과 고려, 조선의 유학자를 함께 배향한 반면
여기는 공자만 모신 것 같네요.
공자묘를 지으면서 명륜당도 함께 지었는데
이 명륜당은 오키나와 최초의 공립학교라는 의의가 있었다고 하지만
태평양전쟁 때 오키나와 전투로 모조리 불타버려
공자묘도 그렇고 부속 건물도 그렇고 죄다 전후에 복구한 건물입니다.
그러니 관람은 이 정도로 하고 끝.
공자묘 옆으로 난 샛길을 요리조리 걸어
원래의 목적지 후쿠슈엔에 도착.
슈리성, 츄라우미 수족관에 이어 여기도 2016년 이후 7년 만에 다시 와보는 곳인데
입장권 모양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현금만 받는 것은 그대로네요.
후쿠슈엔은 나하시와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 사이의 우호도시 체결 10주년을 기념해
1992년 개원한 중국식 정원입니다.
후쿠슈(福州)라는 이름 자체가 푸저우를 일본식으로 읽은 이름이니
이름에서부터 정원의 유래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겠네요.
푸저우시와 우호도시를 맺은 이유는 류큐 왕국과 푸저우가 역사적으로 교류가 깊었기 때문인데
14세기 푸저우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류큐 왕국의 무역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항해술과 통역 등의 전문 지식을 류큐에 전달해 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1992년 정원을 지을 때에는 푸저우를 상징하는 건축 요소를 담은 것은 물론
건축 자재도 전부 푸저우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정원을 만든 자리도 푸저우 사람들이 모인 쿠닌다(久米村)라는 마을이 있던 동네라고 하네요.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한번 와봤던 이 정원을 다시 온 이유는
그때 찍은 사진이 별로 없어
방문 기록을 잔뜩 남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오키나와와 일본 중앙정부, 그리고 중국 사이의 미묘한 갈등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재 오키나와현 지사를 지내고 있는 타마키 데니는
오키나와 내 미군 기지 철수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현재 일본 정권을 차지하고 있는 자민당은 대만과의 교류를 늘리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를 유지 또는 늘리려는 입장이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타마키 데니 지사는 일본 중앙정부를 '일본 정부'라고 부르면서 대립각을 전 세계에 드러내는가 하면
시진핑 중국 주석이 중국과 류큐 왕국 간의 깊은 교류에 대해 운을 띄우자
이에 화답하듯이 타마키 데니 지사가 중국에 있는 류큐 왕국 묘지를 참배하는 등
마치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외교권을 지닌 지역인양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일개 현지사가 어떤 발언을 하든지 간에
오키나와현은 일본의 일개 행정구역으로서 어떠한 외교권도 가질 수 없는 곳이지만
국제적으로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이곳 오키나와에서
2022년 대대적인 리뉴얼을 마친 이곳 후쿠슈엔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네요.
물론 저는 국제정세에 대해 까막눈이기에
위에 적은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뇌피셜일 뿐
그저 사진과 사진 사이에 채울 글이 필요해서 말이 안 되는 썰을 풀었음을 명백하게 밝히며
정원 관람을 잘 마치고
재빠르게 주차장으로 돌아와
주차비를 200엔으로 딱 맞춘 뒤
차단기가 다시 올라가기 전에 후쿠슈엔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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