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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여행/짧은 나들이

유적 따라 서산시티투어 (2019.08.24)

 

 

짧게 예산 여행을 다녀온 뒤 옆동네 서산 여행도 다녀오면 괜찮겠다 싶어 일정을 고민해봤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이나 해미읍성처럼 제법 유명한 관광지도 있다 보니

 

가고 싶은 곳은 금방 결정이 됐는데 문제는 늘 그렇듯이 교통편이죠.

 

버스 시간표를 뒤지면서 일정을 만들어가다

 

이럴 바엔 그냥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게 낫겠다 싶어 시티투어를 예약했습니다.

 

 

 

 

문제는 시티투어를 예약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인데

 

서산시청 홈페이지에서 시티투어를 신청해도

 

최소 인원인 10명이 채워지지 않으면 시티투어 일정 자체가 취소됩니다.

 

 

 

 

수차례에 걸친 시도 끝에

 

8월 24일 출발하는 서산시티투어 역사체험코스가 확약돼서 서산으로 내려갑니다.

 

 

 

 

서산시에는 기차역이 없어 버스를 타고 갑니다.

 

수원터미널에서 한서대, 해미, 서산을 거쳐 태안으로 가는 시외버스 첫차를 타고

 

 

 

 

8시 20분 서산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흐려서 제대로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한데

 

여행을 취소하긴 늦었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시티투어버스는 10시에 서산시청에서 출발하기에

(10시 5분쯤 터미널 옆 본죽 앞에도 정차합니다.)

 

출발 시간에 맞춰 서산시청으로 갑니다.

 

 

 

 

시청 정문 옆에 있는 서산 관아문과

 

 

 

 

담벼락 너머에 있는 외동헌을 잠깐 보고

 

 

 

 

시티투어버스에 탔습니다.

 

서산시티투어 경비는 5,000원인데, 사전에 입금을 안 했으니 버스에 타면서 돈을 냈습니다.

 

 

 

 

아파트 공사 도중에 발굴돼서 문화재로 지정된 서산부장리고분군을 지나

 

 

 

 

첫 번째 여행지로 옛 명칭인 서산 마애삼존불이 더 익숙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으로 갑니다.

 

 

 

 

계단을 따라 산을 올라

 

 

 

 

한옥으로 지은 관리사무소를 거쳐

 

 

가운데가 석가여래, 왼쪽이 제화갈라보살, 오른쪽이 미륵보살이라고 합니다.

 

 

마애여래삼존상에 도착했습니다.

 

마애(磨崖)는 돌에다 새겼다는 뜻이고

 

여래(如來)는 부처를 달리 부르는 말이니

 

돌에 새긴 세 부처 조각이라는 뜻입니다.

 

백제의 미소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세 부처가 너무나도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지금이야 계단을 올라 여기로 올 수 있지만

 

예전에는 석불 아래가 바로 낭떠러지였다는데

 

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석상을 새겼는지 참 대단합니다.

 

 

 

 

이어서 마애여래삼존상 근처에 있는 보원사지로 갑니다.

 

 

 

 

백제 때 지어졌다는 보원사는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이곳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과 철불상, 그리고 터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과거의 찬란했을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거의 다 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박물관으로 옮기지 않은 몇 가지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커다란 돌 하나를 깎아 물을 담은 석조(보물 제102호),

 

 

 

 

절 앞에 세우는 깃발인 당(幢)을 세우는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기단에 그림을 새기고 위에 철침을 세운 오층석탑(보물 제104호),

 

 

 

 

고려 광종 때 왕사(왕의 스승)와 국사(나라의 스승)를 지낸 법인국사의 사리를 모신 법인국사탑(보물 제105호)과

 

고려 경종의 지시로 법인국사의 업적을 적은 법인국사탑비(보물 제106호)

 

이렇게 다섯 유물이 있는데 이 유물들이 전부 보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법인국사탑 앞에서 절의 본당인 금당이 있던 자리와 그 일대를 바라보다 다음 여행지로 갑니다.

 

 

 

 

세 번째 여행지는 개심사입니다.

 

 

 

 

옛날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일주문 역할을 했다는데

 

현대에 들어서 일주문을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개심사는 원래 벚꽃으로 유명한 곳인데 아쉽지만 벚꽃은 다음 기회에.

 

 

 

 

일주문을 지나

 

 

 

 

보라색 맥문동이 자라는 계단을 오르고

 

 

 

 

얕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지나

 

 

 

 

개심사 앞 배롱나무가 자라는 연못에서 사진을 찍어 봅니다.

 

 

 

 

연못에 예쁜 연꽃도 피었네요.

 

 

 

 

여기가 개심사입니다.

 

 

 

 

종루를 보면 휜 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썼는데

 

자연과의 조화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무껍질이 벗겨진 기둥도 있는데 저건 일제 강점기 때 송진을 채취하려고 저랬다고 하네요.

 

 

 

 

위로 올라와서 종루로 오니

 

 

 

 

범종 아래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게 특이합니다.

 

 

 

 

약간 비뚤어진 해탈문을 지나

 

 

 

 

개심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백제 시대 때 창건한 절이지만 1475년(성종 6년) 산불로 죄다 불타

 

1484년(성종 15년) 중건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절 한가운데 대웅보전이 자리를 잡고 있고

 

 

 

 

대웅보전 옆에 심검당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대웅보전 맞은편 안양루에 놓인 법구

 

 

유명세에 비해 절이 크기가 상당히 작은데

 

그래도 절이 갖춰야 할 기본법구인 범종, 법고(북), 목어, 운판은 다 갖추고 있는 절이라네요.

 

 

 

 

개심사의 명물 청벚꽃이 꽃을 필 때 오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지금은 종무소로 쓰는 집을 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짓기 위해서 얼마나 애썼을지 감탄해보기도 하며

 

절 구경을 마쳤습니다.

 

 

 

 

개심사에서 내려오니 시티투어버스가 한 대 증식했습니다?

 

알고 보니 홍성역에서 연계되는 시티투어버스라고 하네요.

 

 

 

 

다시 버스를 타고 해미읍성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알아서 점심을 먹고 다시 모입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와 유명해진 맛이나식당은 역시나 번호표 배부가 끝났네요.

 

 

 

 

근처에 있는 다른 식당으로 들어가서

 

 

 

 

소머리국밥을 시켰습니다.

 

 

 

 

소머리국밥에 양념 넣고 젓갈 넣고 이것저것 넣은 뒤

 

 

 

 

숟가락을 뜨는데

 

맛은 괜찮은데 잡내가 너무 많이 나서 아쉬웠습니다.

 

 

 

 

국밥만으로는 배가 다 차지 않아서 닭꼬치도 사서 먹었는데

 

 

 

 

닭고기가 오래된 건지 정말 푸석푸석하네요.

 

 

 

 

조금씩 아쉬웠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진남문을 지나 해미읍성을 둘러봅니다.

 

 

 

 

해미읍성은 본래 충청도 군대를 지휘하는 병마절도사가 있던 병마절도사영성이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도 이곳에서 10개월간 군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고 하네요.

 

효종 때 병마절도사영 기능이 청주로 옮겨지면서

 

남은 성에 현감이 배치됐고 해미읍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읍성 안에 전시된 조선시대 무기류를 시작으로

 

 

 

 

성 곳곳을 둘러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네요.

 

 

 

 

병마절도사, 현감경영장의 집무실로 썼다는 동헌만 죽어라 보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비가 그친 뒤 관리와 가족이 생활하던 관사인 내아도 보고,

 

 

 

 

지방 관리가 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중앙에서 온 관리들을 위한 숙소로도 쓰던 관아도 보고,

 

 

 

 

성 안에 있는 감옥 옥사도 봅니다.

 

 

 

 

이 감옥은 조선 말 천주교 박해와 관련이 있는데

 

내포 일대에 살던 천주교도를 이곳에 가뒀다고 합니다.

 

 

 

 

배교하지 않는 천주교도에게는 회화나무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를 매달아 고문하기도 했다네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옥사를 지나 민속가옥을 재현한 곳을 둘러보고

 

 

 

 

진남문 위로 올라가

 

 

 

 

지금은 초원으로 변한 성내를 바라봅니다.

 

 

 

 

걸어볼 수 없는 성곽을 보며 아쉬워하다 해미읍성을 떠납니다.

 

 

 

 

마지막으로 온 곳은 해미순교성지입니다.

 

1797년부터 1872년까지 무려 1천여 명 이상의 천주교도가 순교한 곳인데

 

지방관리가 박해에 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아

 

대다수 순교자가 이름을 남기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2014년 이곳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상을 보고

 

 

 

 

해미순교성지 기념관으로 들어갑니다.

 

 

 

 

천주교 박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안내문과 함께

 

 

 

 

무자비했던 순교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작품들이

 

 

 

 

기념관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순교 현장에서 찾은 뼈와 치아, 머리카락과

 

 

 

 

유해 발굴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고 기념관을 나왔습니다.

 

 

 

 

해미순교성지에는 순교지를 재현해놓은 공간도 있습니다.

 

여기는 해미읍성 서문 밖에 있던 돌다리를 옮겨온 곳인데

 

천주교도를 자리개질로 죽였다고 해서 자리개 돌이라고 부릅니다.

 

 

 

 

물웅덩이에 천주교도를 산채로 빠뜨려 죽이기도 했는데

 

죄인을 줄여 진, 웅덩이의 충청도 사투리인 둠벙을 붙여서 진둠벙이라고 부른다네요.

 

 

 

 

천주교도들이 이곳에서 죽어갈 때 예수, 마리아를 부르짖었는데

 

다른 구경꾼들에게는 여수머리라고 들려 이곳이 여숫골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유해 일부를 모신 무덤을 보고

 

 

 

 

성당을 바라보다 순교성지를 나왔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는 역사적인 명소를 버스를 타고 편하게 돌아다녔습니다.

 

시간적 제약이 아쉽지만 하루 동안 즐겁게 여행을 했으니 만족합니다.

 

 

 

 

일정대로라면 해미순교성지에서 4시 20분쯤 투어가 끝나서

 

넉넉하게 5시 20분 출발 버스를 예매해놨는데

 

어째 투어가 너무 일찍 끝나 터미널에 도착하니 3시 50분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관광지를 보고 오자니 시간이 애매해서

 

하는 수 없이 취소수수료를 내고 1시간 앞 버스표를 사고 수원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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