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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여행/짧은 나들이

예산여행 - 윤봉길 의사의 고향에 지어진 충의사 (2019.06.30)

 

 

오랜만에 무궁화호를 타고 조금 멀리 이동해

 

 

 

 

삽교역에 내렸습니다.

 

작년에 한 예산 나들이가 너무 아쉬워서

 

이번에는 제대로 예산 여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왔습니다.

 

 

 

 

역 밖으로 나오니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여기를 이용했다는 기념비도 보이고

 

 

 

 

예산군 관광지도도 보입니다.

 

 

 

 

지도 아래에 예산10경이라고 예산 관광지와 특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은 1경 수덕사와 2경 충의사를 방문할 계획입니다.

 

 

 

 

삽교역은 삽교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버스가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네요.

 

 

 

 

기차에서 내리고 30분쯤 기다리다 8시 50분에 출발하는 553번 버스를 타고

 

 

 

 

충의사 정류장에 내렸습니다.

 

예산군 덕산면은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곳인데다 그의 생가가 남아있어

 

생가 옆에 사당인 충의사를 세웠고 윤봉길의사기념관도 마련해놨습니다.

 

 

 

 

우선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운 기념관부터 들어가봅니다.

 

 

 

 

덕산에서 태어나 3.1운동을 겪으며 민족문제와 농촌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교육자로서 농촌 계몽운동에 힘쓰다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백범 김구를 만나 한인애국단에 입단하고

 

 

 

 

상하이사변 이후 훙커우 공원(지금은 루쉰 공원)에서 열린 승전 기념행사에 도시락 폭탄을 던진 뒤

 

일제에 체포돼 순국하는 그의 일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형은 일본 카나자와 육군 형무소에서 집행됐는데

 

다행히 광복 후 유해를 찾아 지금은 효창공원에 안장됐습니다.

 

 

 

 

기념관에는 훙커우 공원 의거와 관련된 전시물이 여럿 놓여 있는데요.

 

도시락폭탄과 물통폭탄 모형,

 

 

 

 

훙커우 공원으로 가기 전 김구와 교환했다는 회중시계와 공원으로 갈 때 들고 간 물품 등이 놓여 있습니다.

 

 

 

 

광복 후 시간이 조금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았습니다.

 

한국 독립운동에 있어 큰 획을 그은 것 치고는 조금 늦게 훈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승만이 철저한 외교론자라 다른 독립운동에 대해 별로 좋은 시각을 가지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찾아보니 김구, 김좌진, 안중근, 안창호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도

 

이승만 정권 때에는 훈장을 받지 못했네요.

 

 

 

 

국민당을 이끈 장제스가 쓴 친필서한도 전시되고 있습니다.

 

장제스가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인 청년 1명이 이뤄냈다."고 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고 오히려 의거 당시에는 김구가 제안한 무장활동을 거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활동을 지원하고 저런 글귀를 남긴 것을 보면

 

중국 국민당이 한국 독립을 지원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겠네요.

 

 

 

 

기념관을 나와 충의사로 가던 중 하얀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예산과 덕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보부상들이 남긴 유품을을 전시하는보부상유품전시관인데.

 

 

 

 

아쉽게도 내포신도시에 새로 전시관을 짓는 중이라 여기는 문을 닫았네요.

 

 

 

 

윤봉길 의사를 모시는 사당인 충의사로 올라갑니다.

 

 

 

 

홍살문과 충의문을 지나

 

 

 

 

초상화 앞에서 향을 피우고 참배를 드린 뒤

 

 

 

 

충의사 옆에 있는 윤봉길 의사의 부인 배용순 여사 묘소도 잠시 들렀다 나왔습니다.

 

 

 

 

충의사에서 길을 건너 걸어가면

 

 

 

 

윤봉길 생가가 나옵니다.

 

 

 

 

윤봉길 생가는 두 곳이 있는데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4살부터 청년기까지 살았던 저한당입니다.

 

 

 

 

생긴 것은 평범한 초가집이지만

 

 

 

 

여기서 윤봉길 선생이 농촌 주민들을 가르치는 교육활동을 했으니 제법 의미있는 곳이죠.

 

 

 

 

저한당을 나와 대지천을 나오면 윤봉길 의사가 도중도(島中島)라고 이름붙인 땅이 나옵니다.

 

사방이 냇물로 둘러싸여 있어 한반도 가운데 땅이라는 뜻으로 저런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서 4세까지 자란 광현당이 있고,

 

 

 

 

저한당에서 진행하던 야학당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집에서 교육하기 어려워져 새로 지은 부흥원도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농촌운동에 헌신하게 된 계기를 기념관에서는 공동묘지 묘표사건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글을 모르던 한 청년이 덕숭산 공동묘지에서 묘표를 잔뜩 뽑아와서는

 

윤봉길 의사를 찾아와서 자기 아버지 무덤을 찾아달라고 했답니다.

 

묘표를 뽑을 때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았으니

 

청년의 아버지 무덤은 물론 나머지 묘비도 졸지에 이름없는 무덤이 돼버린 것이죠.

 

이 사건을 겪으면서 문맹퇴치의 중요성을 깨달아 집에 야학당을 열었습니다.

 

 

 

 

부흥원 맞은편에는 무궁화동산이 있습니다.

 

 

 

 

아직 무궁화가 꽃피기는 이른 시기인데

 

때를 잘못 안 무궁화가 몇 송이 보이네요.

 

 

 

 

생가 관람은 이것으로 마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와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다

 

 

 

 

10시 반에 출발하는 547번 버스를 타고 수덕사로 갑니다.

 

 

 

● 예산여행 - 수덕사 (2019.06.30)
● 예산여행 - 시뻘건 국밥 (201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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