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홋카이도에 철도를 건설하던 시절
홋카이도 내 도시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혼슈 토호쿠 일대 철도와 연결을 하기 위해
아오모리역에서 하코다테역을 잇는 배를 운행했습니다.
단순히 승객이나 화물을 잇는 정도가 아니라
열차를 배에 통째로 실어 아오모리역과 하코다테역을 바다로 이어줬는데요.
아오모리(青森)의 青와 하코다테(函館)의 函를 따서
이 배편을 세이칸(青函) 연락선이라고 불렀습니다.
형태는 배지만 철도 노선의 연장으로 보아
운영도 일본 국철을 담당하던 운수성과 일본국유철도에서 했고
운임도 철도 운임과 합쳐서 받았다는 특징이 있는 이 배편은
일본 항공시장이 성장하면서 여객 수요가 감소해 위기를 맞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철길로 화물을 나르려는 수요는 건재했고
당시에는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침대열차가 여럿 운행했기에
하루에도 여러 번씩 세이칸 연락선이 운행했으나
기상 상황에 따라서 운항이 끊길 수 있고
실제로 1954년 세이칸 연락선 토야마루가 태풍으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해서
세이칸 연락선을 대체하는 해저 터널을 뚫기로 해
1988년 3월 13일 세이칸 터널을 통한 철도 운행을 시작하고
세이칸 연락선은 80년 간의 운항을 마치고 사라지게 됐습니다.
세이칸 연락선이 사라진 뒤 세이칸 터널로 다니던 침대열차는
홋카이도 신칸센 영업 문제로 인해 모조리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건 나중에 다뤄보기로 하죠.
세이칸 연락선은 사라졌지만
민간 해운사에서 운행하는 페리는 여전히 비슷한 경로를 운행하고 있는데요.
화물 수요가 많은 특성상 야간에도 운행을 하고 있어
하코다테에서 아오모리까지 페리를 타고 가면서
숙박과 이동을 동시에 해결해 보기로 합니다.
하코다테역에서 하코다테 페리 터미널과 가까운 도난 이사리비 철도 나나에하마역까지 가는 표를 사야 하는데
하코다테역 주변 JR 홋카이도 역에서는 교통카드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승차권 발매기에 카드 투입구가 있길래 이게 뭐지 하고 보니
오렌지 카드를 넣는 투입구네요.
JR이 출범하기도 전인 1985년에 일본국유철도에서 출시했던 선불카드인데
개찰구에 카드를 넣는 것이 아니라 승차권 발매기에 카드를 넣고 승차권을 사는 용도로만 쓸 수 있던 카드입니다.
2013년에 발행을 종료했는데 아직도 이 카드를 쓸 수 있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네요;;;
JR 홋카이도에서 삿포로 근교 일대에 도입한 교통카드 Kitaca는
하코다테에서는 구입할 방법도 없으면서
정작 하코다테역 자판기에 달린 교통카드 단말기에는 키타카 로고가 붙어있으니
사람 약 올리나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승차권 발매기에 도난 이사리비 철도로 환승하는 승차권 구입 메뉴가 없어서
주변 안내문을 다시 확인해 보니
도난 이사리비 철도선 승차권 발매기는 개찰구 옆에 따로 놓여 있네요.
노선도 아래 적힌 운임을 확인하고
340엔을 내 승차권을 받았습니다.
고작 2역 이동하면서 운임이 340엔이나 하는데
하코다테역에서 고료카쿠역까지는 JR 홋카이도,
고료카구역에서 나나에하마역까지는 도난 이사리비 철도로 철도 회사가 달라져서
기본요금을 이중으로 받아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도난 이사리비 철도가 운행하는 구간도 JR 홋카이도에서 운행했는데
홋카이도 신칸센이 개업하면서 신칸센과 중복되는 구간 영업을 포기해
졸지에 교통편이 사라지게 된 지자체에서 이 구간을 대신 운행하기로 해서 이렇게 된 것이죠.
이런 철도 노선이 일본에 한둘이 아니라 일본 대중교통 운임을 비싸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개찰구를 통과해
1칸짜리 원맨차에 타니
못해도 40년이 넘은 열차치고는 내부가 그래도 깔끔합니다.
이 열차는 세이칸 연락선이 다니고 있던 시절 만들어진 열차니
이번 여정에도 제법 어울리는 듯하고 말이죠.
나나에하마역에 도착해
기관사에게 표를 내고
나나에하마역을 떠나 하코다테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그 길이 그다지 순탄치 않네요.
아무도 지나지 않는 길을 걸어
나나에하마역이 있는 호쿠토시에서 다시 하코다테시에 진입해
제대로 걸어온 것이 맞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따라
신발이 푹푹 들어가는 눈길을 걸어
대략 30분 걸려 츠가루 해협 페리(津軽海峡フェリー) 하코다테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배가 터미널에 정박해 있길래 가까이서 가서 보니
배를 타기 위해 수많은 화물차가 기다리는 모습이
유로트럭 시뮬레이터 2를 방불케 합니다.
사진에 찍힌 배는 블루 해피니스(ブルーハピネス)라는 배인데
제가 탈 배는 저건 아니고 블루 돌핀(ブルードルフィン)이라는 배입니다.
배가 여럿 있는데 생긴 게 죄다 그놈이 그놈이고
시설도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
배 이름보다는 시간대를 보고 타는 게 좋겠죠.
0시 30분에 하코다테를 출발하는 블루 돌핀을 타려고 카운터에 가니
인적사항을 적어 제출해 달라고 합니다.
외국인인데 전화번호나 주소도 적어야 하냐고 물으니
전화번호는 외국 번호 그대로 쓰고 주소는 국적을 적어달라고 하네요.
카드로 2,660엔을 내고 잠시 터미널에서 기다리다
블루 돌핀호가 하코다테 터미널에 정박한 것을 확인하고
보딩 브리지와 연결되는 3층으로 올라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립니다.
출발하기 15분 전에 탑승을 시작해
찬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보딩 브리지를 걸으며
바깥을 보니 자동차도 배에 올라타고 있습니다.
배에 올라타서 배치도를 보니
여러 시설로 구분돼 있긴 한데
제가 산 표는 스탠다드라서 이런 마룻바닥에 누워 갑니다.
승객이 많다면 다른 승객과 같이 방을 써야 하겠지만
야간에 이용하는 승객이 많지 않아 지 넓은 방을 저 혼자 쓰고 갑니다.
긴 항해 동안 이용할 수 있는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있길래 바로 연결해서 사진을 백업하면서
자판기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고
순식간에 먹어치운 뒤
배에 대자로 누워 잠을 잡니다.
ps. 하코다테와 아오모리를 잇는 배편은
제가 탄 츠가루 해협 페리(津軽海峡フェリー) 외에도 세이칸 페리(青函フェリー)가 있습니다.
운임은 세이칸 페리가 좀 더 저렴하고 하코다테 시내에서는 세이칸 페리 터미널이 좀 더 가깝지만
야간 이동 시 시간대가 츠가루 해협 페리가 좀 더 좋은 편이고
대중교통을 통한 접근이 츠가루 해협 페리가 편해서 이걸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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