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눈으로 뒤덮인 고료카쿠

이제 모리오카를 떠날 시간인데

개찰구를 보니 뭔가 허전합니다.

교통카드 단말기가 달려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고

대신 교통카드를 쓸 수 없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네요.

오랫동안 모리오카 일대에서는 스이카를 비롯한 교통카드를 쓰지 못했는데

2022년에 시내버스 회사들이 먼저 스이카 기반 지역 교통카드를 도입해서

교통 연계의 일환인지 2023년 5월 27일부터 모리오카역 인근 철도 노선에 교통카드를 도입합니다.

모리오카까지 오는 해외 여행객이라면 대부분 JR패스류를 쓸 테니

그다지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닐 수 있지만

교통카드를 수집하고 관련 정보를 정리해 블로그에 올리는 제 입장에서는 꽤나 중요한 정보입니다.

다음 행선지는 홋카이도 남쪽 하코다테인데

신하코다테호쿠토행 신칸센 하야부사를 타고 이동하도록 하죠.

달리는 열차 차창 밖을 보니 점점 날씨가 안 좋아지고 있는데

여행 일정이 어그러질까 봐 괜히 또 불안해지네요.

그러는 사이 열차는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해저로 잇는 세이칸 터널을 통과해

홋카이도에 들어왔습니다.

하코다테가 있는 바다 쪽을 보니

날씨가 좋아졌다가도 금세 흐려지는 등 종잡을 수가 없네요.

아무튼 열차는 종점 신하코다테호쿠토역에 도착했습니다.

역이 있는 동네는 호쿠토인데 주요 이용객은 하코다테로 가는 승객이니

하코다테시와 호쿠토시가 싸우다 천안아산역 같은 역명이 돼버린 역입니다.

여기서 하코다테 시내까지는 17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역이 있어서

하코다테까지 가려면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데요.

하코다테라이너라는 애칭이 붙은 열차를 타고

하코다테까지 갑니다.

일부 시간대에는 하코다테역과 신하코다테호쿠토역 사이에

고료카쿠역을 제외한 나머지 역을 통과하는 쾌속으로 운행하는데 마침 쾌속 열차에 탔네요.

하코다테 첫 번째 여행지는 고료카쿠인데

이름과는 다르게 고료카쿠역은 고료카쿠공원에서 멀리 떨어진 역이라서

고료카쿠역을 지나

하코다테역에 내려

하코다테 시영 전차로 갈아타

고료카쿠로 갑니다.

JR 홋카이도 하코다테역과는 다르게

하코다테 시영 전차를 탈 때에는 스이카 등 교통카드를 쓸 수 있는데요.

하코다테 시영 전차는 기본요금이 210엔으로 꽤 비싼 데다 거리비례 요금까지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 동안 트램을 3번 이상 탈 계획이라면

교통카드를 쓰는 대신 기관사에게 1일권을 사는 것이 좋습니다.

1일권 가격이 성인 기준 600엔인데

고료카쿠 갔다가 하코다테산 전망대 갔다가 하코다테역으로 돌아오는 간단한 일정만 해도 전차를 3번 타니

어지간하면 교통패스를 사는 것이 이득입니다.

고료카쿠에서 제일 가까운 정류장은 고료카쿠코엔마에역(五稜郭公園前駅)인데

정류장이 코앞에 있는 것은 아니라서

정류장에 내리고 북쪽으로 10분가량 더 걸어 올라갑니다.

중간에 도로에 있는 특이한 시설을 봤는데

도로 위에 중앙선(中央線) 팻말이 달려 있습니다.

지금처럼 눈이 펑펑 내리는 시기에는 도로에 중앙선이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표시를 해두나 봅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고료카쿠 타워가 나와서

공원으로 가기 전에 여길 먼저 가보기로 하죠.

어째 입구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게 다른 것도 아닌 유키 미쿠라서 상당히 벙찌긴 하는데

이건 나중에 다시 다뤄보기로 하고

입장료로 900엔을 내고

위로 올라가니

눈으로 성곽은 물론 해자까지 뒤덮인 고료카쿠 모습이 보여 잠시 감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죠.

이어서 고료카쿠와 하코다테의 역사에 대해 다루는 전시물을 둘러봅니다.

 

 

 

 

이름대로 5각 성곽 모양의 고료카쿠는 일본이 개항한 뒤인 1864년에 지어진 유럽식 요새입니다.

하코다테가 서양과의 교역을 하는 개항장이 되면서

개항장을 통치하면서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고료카쿠를 지은 것이죠.

막으라는 러시아는 안 막고 정작 보신 전쟁이라고 부르는 일본 내전의 무대가 되기도 했는데

근대화를 내세우는 이른바 신정부군이 에도 막부 세력을 공격해 구막부군이 수세에 몰리자

홋카이도로 달아나 고료카쿠에 본거지를 두고 신정부에 반대하는 임시정권을 수립합니다.

이때 영국 공사관이 이 정권을 에조 공화국이라고 부르면서

일본 최초이자 마지막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는데요.

당연히 도망친 세력이 만든 정권이 오래갈 리가 없었으니

삼일천하보다는 길었지만 5개월 만에 에조 공화국은 무너지고 맙니다.

내전을 일으킨 것치고는 막부 세력에 대한 대우는 꽤나 후했는데

반란을 주도한 에조 공화국의 수뇌 에노모토 타케아키는 자작 작위까지 오르기도 했고

육군 총사령관 오토리 케이스케는 여러 직책을 거쳐 조선 주재 일본 공사로 일하면서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에 조선 정부를 압박하는 등의 일을 저지릅니다.

하코다테에 신정부의 통치력이 미치게 된 뒤로는

해자에서 천연 얼음을 채빙 하는 식으로 고료카쿠를 활용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사진 왼쪽에 있는 산이 전망대로 유명한 하코다테산입니다.

역사 공부는 이 정도로 하고 하코다테 시내 전망을 바라보니

벌써 해가 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해가 지기 전에 고료카쿠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막부 말기 신선조(신센구미)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에조 공화국 수립 때 군인으로 활동한 히지카타 토시조의 동상을 보고 내려와

눈으로 뒤덮인 다리를 건너

고료카쿠 안으로 들어갑니다.

고료카쿠의 중심에는 부교소라고 부르는 관청 건물이 잇는데

고료카쿠 공원 자체는 입장료가 무료지만 부교소는 500엔을 내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크게 볼만한 게 없긴 한데

날씨가 추워서 괜히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건물 안은 과거의 모습을 비슷하게 재현하면서

관청에서 쓰던 물건이라던지

보신 전쟁 때 쓰인 무기라던지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건축과 관련된 전시물도 있네요.

하코다테 지방 정부에서 관할하던 경비구역을 나타낸 지도도 있는데

 

홋카이도를 본섬 외에 다른 섬들이 더 붙어 있습니다.

 

북쪽에 있는 사할린섬을 비롯해서 동쪽에 있는 쿠릴 열도(북방 4도)는

 

일본이 자국 영토로서 개발하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러시아 영토가 되었는데,

일본 정부는 사할린섬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견이 없지만

북방 4도는 일본 영토니 돌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지도니 저 땅들도 그릴 수 있긴 하지만

현재 일본 정부의 주장을 생각해 보면 조금은 미묘한 지도입니다.

그 외에 러일전쟁 이후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만화 골든 카무이와 관련된 태피스트리가

 

뜬금없이 놓여 있네요.

고료카쿠 관광은 이 정도면 다 한 것 같으니

불이 켜진 길을 따라 걸어

다시 전차를 타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