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 서해선 전철을 타는데
시운전을 마친 새 전동차를 탔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시흥에서 킨텍스 쪽으로 가기 정말 불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김포공항이든 인천공항이든 차 없이는 갈 엄두도 못 냈기에
서해선 연장(소사대곡선)을 정말 간절히 바랐는데
이제는 정말 얼마 안 남았네요.
그나저나 이미 노선도에 서해선 연장구간이 반영됐는데
서해선 미개통이라는 빨간 글자는 또 스티커로 땜질할 건지 궁금해집니다.
아무튼 소사역에서 내리고 환승에 환승을 거쳐 한성대입구에 내린 뒤
다시 1111번 버스로 갈아타
성북동에 있는 최순우 옛집으로 갑니다.
성북동에 있는 이 근대 한옥은
최순우 옛집이라는 이름 외에도
혜곡 최순우 기념관이라는 이름이 있고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시민문화유산 1호라는 명칭도 붙어 있는데요.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은 혜곡 최순우.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이자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입니다.
성북동에 있는 이 집은 최순우가 1976년 이사와 남은 여생을 지낸 곳인데
이 집을 포함해서 성북동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돼 이 집마저 헐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이 집을 보존하자는 시민 모금운동이 벌어졌고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설립돼
이 한옥을 매입해서 재개발을 피해 지금까지 한옥이 남게 되었고
혜곡 최순우 기념관이 이 한옥을 관리하면서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네요.
ㄱ자 모양 안채와 ㄴ자 모양 바깥채가 마주보고 있는 트인 ㅁ자형 한옥으로 지은 작은 집을 간단히 둘러보니
벽돌집으로 가득한 곳 사이에 이런 고즈넉한 한옥 하나가 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여기에 온 이유는 최순우 옛집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날 여기서 열린 북토크에 참가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터무늬 있는 경성미술여행'이라는 책이 작년에 나와 구입하고 읽었는데
최순우 옛집 보수공사가 끝나는 2023년 봄 출판기념 북토크를 열겠다고 해서
북토크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책을 들고 최순우 옛집에 왔습니다.
책은 한국 근대미술의 흐름과 관련된 장소를 선을 그어 이동하면서
각 장소와 연관된 작가나 사건 등을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여행기인데
가본 곳도 많고, 아는 화가도 많아 어렵지 않게 술술 읽어나갔네요.
북토크가 열리기 전에 마저 최순우 옛집을 둘러보면서
봄을 맞아 예쁘게 핀 모란과 노랑해당화를 보다
북토크 참가자 모두에게 나눠준 수국차를 마시면서 사랑방 바깥마루에 앉아 북토크에 참여합니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터무늬 있는' 경성미술여행이라는 책 제목 선정부터 표지 디자인 선정까지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이야기,
출판을 마치고 뒤늦게 알게 된 오류에 대한 정정,
그리고 북토크에 참여한 천경자 화백의 주치의셨던 어르신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책을 펼처 작가 친필 사인을 받고
북토크 뒤로 이어지는 성북동 답사에도 참가합니다.
홍익대부속중고등학교입구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최순우 옛집까지 걸어 내려오며
의미가 있는 장소를 가볍게 훑어보는 답사인데
버스 종점 서울다윈학교.한용운활동터에 내려
버스 정류장을 바꾸게 된 사연에 대해 읽고
고개를 아래로 내려 벤치를 보니
김용준 집터에 대한 안내문이 적혀 있네요.
안내문에 적혀 있는 성북동 274-1번지는 수향산방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다른 집이 들어서
책에 이야기를 담지 못해 아쉽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버스 정류장을 떠나 아래로 내려가면서 만해공원에서 잠시 멈춰
만해 한용운과 심우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전시 준비가 한창인 성북구립미술관 옆
상허 이태준 가옥에 도착했습니다.
활동 당시에는 정지용 시인에 비견될 정도의 평가를 받은 작가인데
그가 살았던 생가를 후손이 물려받아 지금은 수연산방이라는 찻집을 운영하고 있네요.
이어서 성북구립미술관 거리갤러리를 지나면서
교회 건물 너머 있는 성북동이종석별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북역사문화공원 건너편 골목길에 있는
간송미술관에 갑니다.
평소에도 특별 개관을 제외하면 관람객 입장을 받지 않는 곳이고
게다가 지금은 보화각 보수공사 중이라 입장을 막을 법도 한데
보화각 앞에 있는 삼층석탑과 비로자나불좌상때문인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는 막지 않고 있네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문이 열릴 날만을 고대하며 나와
마지막으로 성북선잠박물관 옆에 있는
조선의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는 침잠례를 하던 선잠단지를 끝으로 성북동 답사는 끝...인데
개인적으로 궁금하던 곳이 있어
답사를 끝낸 뒤 다시 언덕길을 올라
성락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곳에 왔습니다.
조선 철종 대 이조판서 심상응이라는 사람이 지은 정원으로 알려져
명승 제35호로 지정돼 외부에 개방됐었는데
정작 이 심상응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명승 지위를 잃는 촌극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른 기록을 통해 진짜 주인을 밝혀냈고 경관 가치는 여전하기에
명승 제118호 서울 성북동 별서라는 이름으로 다시 지정했는데
그 뒤로 별다른 뉴스를 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근황이 궁금해서 와봤는데
입구도 굳게 닫혀 있고 문틈으로 보이는 내부도 이런 상황입니다.
호기심을 해결했으니 정원을 떠나 한성대입구역으로 내려가는데
마침 저녁 시간이 되어 배를 채우고 가기로 합니다.
서울에 살 때 종종 가곤 했던 고기국숫집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와봤는데
이름이 성북동 오름국수로 바뀌었고 주인장도 바뀌었네요.
그래도 여전히 고기국수를 팔고 있어 고기국수를 주문.
주문한 고기국수와 함께 덤으로 고기와 밥을 받아
넉넉하게 배를 채우고
성북동을 떠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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