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과 수인선의 종점 인천역에 왔습니다.
1899년 한국 최초 철도 노선인 경인선 개통 때부터 있던 역이라
역사 앞에 이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놓여 있네요.
인천역에서 가까운 랜드마크로는 차이나타운이 있지만
여기는 여러 번 가봤으니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월미도로 들어갑니다.
해사고 정류장에 내려
한국이민사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대한제국 첫 공식 이민인 하와이 이민을 비롯해
전 세계로 퍼진 한민족의 이민을 보여주는 지도를 보면서 전시실로 들어갑니다.
대한제국 수립 이전에도 조선인으로서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이
서재필(Philip Jaisohn), 서광범(Kenneth Suh) 등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주인공 유진 초이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죠.)
이들은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미국으로 망명을 간 것이니
한국인 이민사는 대한제국 시절 하와이 이민부터 다루고 있습니다.
하와이 이민은 대한제국과 하와이 내부 상황이 맞아 떨어져 이뤄졌는데,
대한제국은 일본을 포함한 열강들의 경제 침탈로 혼란스러웠고
하와이는 사탕수수 농장을 크게 경작하면서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죠.
이에 미국 공사이자 고종의 주치의였던 알렌이 데쉴러라는 사람을 추천해 하와이 이민을 주선합니다.
이민을 가려면 여권을 만들어야 하지만
이제 막 국제사회에 뛰어든 대한제국에는 여권을 만들 기관조차 없었는데
하와이 이민 사업이 고종 황제의 승인을 얻자
부랴부랴 유민원이라는 기관을 설립해 여권(그 당시 명칭은 집조)을 발급합니다.
지금이야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까지 한 번에 가지만
이때는 하와이로 가는 방법이라곤 배밖에 없었으니
하와이로 가는 길 자체가 고행길이었는데요.
우선 인천 제물포항에서 121명이 현해환을 타고 나가사키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신체검사를 받은 뒤 19명이 부적합자로 탈락,
102명이 S.S.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도 보건 검사를 거쳐 16명이 질병으로 탈락, 최종 86명이 하와이 이민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이들은 부부가 함께 살거나 동료끼리 기숙사에 살면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했는데요.
하와이 음식이 생소한데다 물가가 비싸
숙소 근처에 채소를 직접 재배해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사진만 보고 신부감을 골라 결혼했다는 일명 사진결혼 이야기가 걸려 있습니다.
한인 교회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하와이 이민단 모집에 큰 역할을 한 곳이 제물포웨슬리메모리얼교회였으니
이민단 중에 기독교인이 많았을테고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친목을 위해 교회에 발길을 옮기면서
한인 공동체에서 한인 교회가 큰 역할을 하게 됐죠.
1903년 첫 이민 이후 한인 이민자는 꾸준히 늘어나 대략 7,200명이 하와이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나라를 잃자 대다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미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했고
하와이를 떠나 미국 본토 곳곳으로 이주했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이민 1세대들은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으니
조국 독립을 위해 외교 선전 활동, 독립자금모금, 독립군 양성 등의 노력을 했습니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 창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박용만, 안창호, 이승만 등 여러 미주 한인사회 지도자들이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했죠.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는 부모 세대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미국 사회에 융화되면서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시민권을 얻는 사람도 늘었죠.
미국 한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면서 미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지만
다른 인종, 민족 공동체와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과제를 끊임없이 풀어야 합니다.
1992년 LA 사태,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처럼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한 사례가 있기에
이 과제를 풀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미국 이민 역사가 가장 오래된데다 재외동포 중 재미동포가 재중동포에 버금가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미국 이민사에 대한 설명은 두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가장 많은데요.
다른 나라 이민사에 대한 설명은 한 전시실에 모아서 하고 있습니다.
하와이에 이어 두 번째로 한인이 이민을 간 곳은 멕시코입니다.
하와이 이민과는 달리 멕시코 이민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이민 중개인이 불법으로 진행해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계약기간이 끝나 겨우 노동에서 해방되나 했지만
조선은 일본에 병합됐고 멕시코는 내란과 혁명이 발생해 삶은 나아지지 않았죠.
멕시코 이민은 단 한 차례만 진행됐기에
멕시코로 건너온 한인들은 현지인과 결혼을 했고 민족적 정체성을 잃어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멕시코 한인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광복 후 멕시코로 건너간 사람이라고 합니다.
2017년에야 두 나라를 잇는 직항편 비행기가 취항했을 정도로 두 나라 사이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1991년 상호 무비자 협정을 맺으면서 경제적인 교류는 물론 인적 교류도 늘어나
현재는 15,000여명이 멕시코에 살고 있다네요.
러시아 연해주 이민은 구한말 조선인들이 생계를 위해 국경을 넘은 것이 시초지만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이 연해주를 찾기 시작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신한촌, 즉 한인들의 새마을을 만들면서
권업회, 대한 광복군 정부 등 여러 독립운동 단체와 임시정부가 세워졌죠.
한편으로는 자유시 참변,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등 시련의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사할린 한인은 이들과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러일전쟁 이후부터 광복까지 사할린은 일제 영토였고,
일제는 조선인을 강제로 사할린으로 끌고가 광산 등에서 일하게 시켰죠.
일제가 패망하면서 사할린에 있던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철수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데려온 조선인은 방치한 채 떠났습니다.
사할린에 남은 한인들은 고국 영구 귀국을 원했지만
소련과 남한이 적대 관계라 불가능했죠.
사할린 한인들은 대부분 고향이 전라도나 경상도 등 남한이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건너간다는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냉전이 끝나고 한국과 소련(러시아)이 국교를 맺으면서 뒤늦게 사할린 한인들의 고향 방문이 이어졌지만
지금도 귀국하지 못한 한인들이 많습니다.
중국 이민은 만주(간도) 이민부터 설명하고 있는데,
연해주와 마찬가지로 19세기 말에는 생계를 위해,
20세기 초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한인들이 만주로 건너가 여러 무장투쟁을 벌였습니다.
해방 후 독립운동가는 귀국했지만
생계를 위해 만주로 건너간 사람들은 이미 생활터전이 한반도가 아닌 만주가 되버렸기에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만주에 남았고 중국 조선족이 됐습니다.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사진도 보입니다.
재일한인 역사는 지식인들의 유학부터 시작됐지만
한일병합 이후에는 일본에 돈을 벌기 위해 건너간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이후 관동 대학살, 강제징용과 같은 비극을 겪기도 했고
광복 후에도 식민지 시절처럼 일본 사회에서 많은 차별을 당했습니다.
냉전 시대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줄여서 조총련과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줄여서 민단 사이의 한민족 내부 갈등도 벌어졌죠.
남한과 북한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무국적자 '조선적(한일병합 이전 조선 국적)'도 여럿 남아있고
이들과는 상관없이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뉴 커머'도 있습니다.
출신도 다양하고 갈등 요소도 많아 일본 내 한인 사회는 상당히 복잡하네요.
마지막으로 이민사를 설명하는 국가는 독일입니다.
1960년대 독일이 경제적으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노동 인력이 부족했는데
한국은 실업 문제를 해결하면서 외화도 벌고,
독일은 노동 공급도 하고 국제 원조도 하는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광부나 간호사로 일한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귀국했지만
독일에 남은 사람도 많아 독일 내 한인 사회를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어서 해외 입양의 역사,
하와이 이주 한인 동포들이 힘을 보태 세워 인천과 하와이에서 이름을 딴 인하대학교에 대한 설명,
한국이민사박물관을 포함한 인천광역시의 이민기념사업 등의 안내문이 있습니다.
하와이 이민부터 파독 노동자까지 한인 이민사를 보면 슬픈 역사가 느껴지는 이야기가 많은데,
앞으로 채워질 역사는 보다 긍정적인 이야기였으면 좋겠네요.
긴 관람을 마치고 버스에 타
인천역에 도착, 다음 여행지로 이동합니다.
160. 동인천역 버스 타고 섬으로 |
161. 인천역 |
(종착역) |
K272. 인천역 월미바다열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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