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노야마 로프웨이를 타고 산에서 내려왔는데
버스가 오려면 한참 남아서
내리막길을 따라 걸어 미모스소가와공원에 왔습니다.
바다를 낀 공원치고는 특이한 전시물이 많이 있는데
추리소설가 마츠모토 세이쵸의 반생의 기록(半生の記) 문학비야
그가 어릴 적 이 일대에 살았다고 하니 있을 법도 한데
이 커다란 대포는 평온한 공원 분위기와는 조금 안 어울리죠.
사실 공원이 있는 단노우라 일대는 대양에서 일본 내해로 진입하는 길목이라
오래전부터 서양 세력들이 일본 막부에 개항을 요구하면서 침입했던 곳이고
당시 시모노세키 일대를 관할하던 쵸슈번은
사진에 찍힌 쵸슈포(長州砲)를 앞세워
1863년 5월부터 6월 사이 칸몬 해협을 지나가는 외국 선박을 공격했습니다.
이에 1864년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4개국 연합 함대가 쵸슈번을 공격해 모든 포대를 파괴했는데요.
나중에 시모노세키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전쟁을 겪고 나서
서양의 강력한 힘에 태세를 전환한 쵸슈번이 나중에는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으니
역사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외에도 칸몬교 주변에 이런저런 볼거리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찍는 조형물이라면
아무래도 단노우라 전투를 재연한 이 청동상이겠죠.
1180년부터 1185년 사이에 일본에서는 겐페이 전쟁이라고 부르는 내전이 일어났는데
이 내전을 종식한 전투가 단노우라 전투입니다.
이 과정에서 6살짜리 천황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하는 등의 비극도 있고 해서
이렇게 극적인 모습을 담은 동상을 만들어 기념하는 것 같습니다.
공원 관람은 이정도면 될 것 같으니
이제 시모노세키를 떠나 바다 건너에 있는 키타큐슈 모지코로 가보도록 하죠.
혼슈와 큐슈 사이를 잇는 길이 여럿 있는데
해저터널을 지나는 열차를 타는 법은 여러 번 이용해봤으니 이번에는 패스하고
칸몬교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타는 것은 고속버스를 타야 하니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하고
이번에는 칸몬 터널을 직접 걸어 큐슈로 갑니다.
칸몬 터널은 해저에 있으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데요.
사람은 따로 통행료를 내지 않지만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끌고 오면 20엔을 내야 한다는 게 특이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이동 경로를 확인한 뒤
터널을 걸으려는데
터널 옆 국도 2호선 마크가 눈에 띕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 인도 터널뿐이지만
이 위에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터널이 있어서 같이 국도로 지정했나 싶으면서도
일본에서는 계단길도, 배가 지나는 항로도 국도로 지정하니
어쩌면 도로 터널이 없더라도 국도로 지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섬과 섬 사이를 해저터널로 걷는다는 것을 설명으로 보면 재미있어 보이지만
780m짜리 콘크리트 터널을 걸을 뿐이니 크게 대단한 경험은 아닙니다.
그래도 바닥에 그려진 야마구치현(시모노세키)과 후쿠오카현(키타큐슈)의 경계를 지나갈 때만큼은
괜히 기분이 좋아지네요.
친절하게 한국어로도 적어둔 안내문을 읽고
마저 터널을 걸어
키타큐슈쪽 터널 입구에 도착.
천천히 걸어서 8분 정도 걸렸네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와
칸몬교 아래에 있는 메카리 신사 토리이를 찍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할 수단을 찾아
500m가량을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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