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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2020.10.11 연천 당일치기

1. 홀로 경주가 아닌 곳에 있는 경순왕릉

 

 

동두천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가던 통근열차가

 

1호선 연천역 연장 공사를 위해 운행을 중단한 뒤로

 

 

 

 

동두천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같은 구간을 잇는 대체운송버스가 다니고 있습니다.

 

요금은 통근열차 시절과 동일하게 1,000원이고 교통카드 됩니다.

 

 

 

 

모든 역에 다 서는 완행버스와

 

동두천역 - 소요산역 - 대광리역 - 신탄리역 - 백마고지역만 서는 직행버스가 있는데

 

 

 

 

제가 갈 곳은 완행버스만 가니

 

 

 

 

8시에 출발하는 완행버스를 타고

 

8시 25분에 전곡역에 내렸습니다.

 

너무 이른 아침부터 집에서 나와 잠을 제대로 못 잤기에

 

하마터면 여기서 못 내리고 다음 역으로 가버릴뻔 했네요.

 

 

 

 

공사 중인 전곡역을 떠나 전곡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

 

 

 

 

전곡재래시장앞 정류장에 왔습니다.

 

 

2008년에 찍은 사진이라 사진 해상도가 굉장히 작습니다.

 

 

오래전에는 전곡 구 터미널이라고 부르던 곳인데,

 

버스회사에 따라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 달라서

 

연천교통이나 평안운수 버스는 시외터미널에서 출발하고

 

대양운수 버스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8시 50분에 출발하는 83번 버스를 타고

 

 

 

 

종점 고랑포구까지 가겠습니다.

 

 

 

 

멋지게 깎인 임진강 주상절리를 지나 37번 국도를 쉬지 않고 달리던 버스는

 

 

 

 

37번 국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여느 농어촌버스처럼 굽이굽이 굽은 좁은 길을 달립니다.

 

 

 

 

노랗게 물든 논을 지나

 

 

 

 

9시 35분 종점 고랑포구에 도착했습니다.

 

 

 

 

옛날에는 상당히 번성한 곳이었다고 하지만

 

 

 

 

전쟁 이후 최전방이 돼버린 이곳은 포구로서의 기능마저 상실해버리고

 

 

 

 

이렇게 울타리 너머로만 임진강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포구는 못 보니

 

 

 

 

대신 경순왕릉을 가보죠.

 

 

 

 

고랑포구에서 낮은 언덕길을 살짝 넘으면

 

 

 

 

경순왕릉 입구가 나오고

 

여기서 다시 한번 언덕을 넘으면 경순왕릉이 나옵니다.

 

 

 

 

역대 신라 왕들은 모두 경주에 묻혔지만

 

신라 최후의 왕인 경순왕 김부는 경주에 묻히지 못하고 이곳 연천에 묻혔습니다.

 

안내문에 적힌 이야기에 따르면

 

경순왕의 장례식을 경주에서 치르면 민심이 동요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해서

 

왕릉은 개경에서 100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이곳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고려 무신정권 때 백제나 신라를 부흥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반란이 일어난 것을 보면

 

고려가 건국되고 한참 뒤에도 아직까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의식이 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고려 개국 초기에는 이런 점이 더 심했겠죠.

 

 

 

 

아무튼 이런 이유로 연천에 놓인 경순왕릉은

 

 

 

 

다른 왕릉과는 달리 주변이 울타리로 막혀 있고

 

그 울타리에 지뢰 위험 경고 팻말이 걸려있는 등

 

여러모로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그나마 여기가 남방한계선 아래에 있기에 이렇게 관람이라도 할 수 있네요.

 

 

 

 

재실을 지나면

 

 

 

 

비각이 나옵니다.

 

 

 

 

누가 적어두고 갔는지 모를 메모를 읽어보고

 

 

 

 

비석을 바라보면... 이게 글씨가 쓰인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모됐네요.

 

경순왕이 이곳에 묻힌 뒤로 경순왕릉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는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인 조선 영조 때 이 비석을 발견해

 

여기에 비각을 짓고 비석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나중에 또 비석이 고랑포구에 방치됐다 1976년에 고랑포초등학교로 옮겼다는 설명을 보니

 

글자가 남아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수난을 겪었네요.

 

아무튼 이 비석은 손상이 너무 심해서 무슨 내용이 적혔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대신 무덤 앞에 놓인 능표를 통해

 

경순왕의 약력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영조 때 경순왕릉을 재단장했기에

 

경순왕릉의 무덤 양식은 조선 시대 무덤과 거의 일치합니다.

 

무덤 주변에 곡장이라는 담장을 만들었고,

 

봉분을 호석이라는 돌로 감쌌고,

 

문인석은 없지만 대신 무덤 앞에 잡귀를 쫒는다는 석양을 세워놨습니다.

 

신라의 왕이었지만 신라 땅에 묻히지 못했고,

 

고려 시대에 죽었지만 조선 시대 모양 무덤에 묻힌 셈이 됐으니

 

죽어서도 기구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순왕릉 관람을 마치고

 

다시 고랑포구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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