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수륙양용버스 투어를 마쳤으니 이제 버스를 갈아타
백제문화단지를 벗어나 부여군에 남은 백제 유적지를 돌아봅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부소산성.
백제가 부여(사비)에 도읍을 정했을 때
궁성 사비성의 대피소 역할을 하는 배후산성으로 쓰인 성이자
수륙양용버스에서 본 낙화암과 고란사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2,000원인데
저는 시티투어 관광객이니 교환권을 내고 무료표를 받아 입장합니다.
이름대로 산성이다 보니 부소산성 자체는 꽤나 면적이 넓어서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요.
문제는 시티투어버스 다음 차가 1시간 뒤인 11시 20분쯤에 있어서
미칠 듯이 뛰어 몇 군데만 봐야 합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낙화암과 고란사만 가보기로 했습니다.
백제 때 지은 성곽과 통일신라, 조선 때 지은 성곽이 혼재돼 있다는 설명을 담은 안내판을 간단히 읽어보고
동네 뒷산 느낌 나는 등산로를 걸어
갈래길에서 낙화암으로 좀 더 빨리 가는 길로 걸어가니
사방이 공사장입니다.
한 달 전 시작한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현장인가 보네요.
조사기간이 연말까지로 적혀 있는데 무언가 발굴되기라도 한다면
저 기간이 한없이 늘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마저 산길을 걸어 나오는 갈림길에서 낙화암 방향으로 걸어가면
백화정이라는 정자가 나옵니다.
오래된 정자는 아니고 1929년에 나당전쟁 때 죽은 궁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네요.
꽤나 험한 바위를 올라야 백화정에 올 수 있는데
여기로 올라오는 노력에 비해 어째 백화강 경치는 잘 보이지 않아서
낙화암 바로 위로 가서 다시 백화강을 바라보니
마침 낙화암과 고란사 관람을 마치고 방향을 바꾸는 수륙양용버스가 보입니다.
버스가 반대방향으로 가는 모습과 함께 흐린 날씨 덕에 조금은 아쉬운 주변 경치를 파노라마로 담아보고
갈림길에서 낙화암 반대쪽에 있던 고란사로 이동했습니다.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과 보살 좌상을 모셔둔 고란사 법당 뒤에는
고란정이라는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고란약수와 이곳 주변에서 자생하는 고란초라는 풀과 관련해서
백제 왕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고 하네요.
좀 더 찾아보니 고란사에서 자라던 고란초는 사람들의 손길을 많이 닿아 많이 사라졌고
정작 고란사를 벗어나면 고란초가 많이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약수터에 와서 물을 안 마셔볼 수 없으니 물을 떠서 마셔보고
고란사 옆에 있는 선착장에서 황포돛배가 떠나는 모습을 보려고 했는데
고란사에서는 그 모습이 잘 안 보일 것 같네요.
그래서 열심히 뛰어 다시 낙화암으로 돌아가
황포돛배가 고란사를 떠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부소산성 서쪽에는 부여 객사를 복원한 공간을 비롯해
부소산성과 묶여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관북리 유적이 있는데
버스 시간이 다 됐으니 여기는 나중에 다시 와서 보기로 하죠.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궁남지.
백제 무왕 때 만든 왕궁의 정원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기록에 나타나는 궁남지와 지금의 궁남지가 전혀 다른 곳이라는 주장도 있긴 한데...
아무튼 이곳 궁남지에는 연못마다 수많은 수련들이 살고 있는데요.
마침 개화시기인 6월을 맞아 봉오리를 핀
다양한 색의 수련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궁남지 한가운데에는 인공섬 위에 세운 포련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요.
포련정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기 전
궁남지와 관련이 있는 서동요 이야기를 읽어봅니다.
서동이라는 인물이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결혼하고 백제 무왕이 되었다는 민간 설화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실렸고, 이 이야기는 대중에게도 제법 잘 알려져 있죠.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굴된 금판에 적힌 '무왕의 왕후는 백제 고관의 딸'이라는 기록을 비롯해서
역사적 사실과 삼국유사의 서술이 맞지 않는 일이 많아서
세세하게 따져보면 좀 복잡한 것 같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포련정으로 들어와서
정자 주변에서 물을 마구 뿜는 분수를 구경하다
버스 출발 시간이 다 돼서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부여시티투어 마지막 코스는 정림사지인데...
여긴 말 그대로 '절터'라서 볼만한 게 그다지 많지 않거든요.
게다가 지금 여기서 내리면 점심시간과 겹쳐 다음 버스는 2시간 뒤에 있어서
정림사지는 이따가 차 끌고 따로 보기로 하고 통과합니다.
백제문화단지로 다시 돌아오면서 백마강 주변에 핀 노란 꽃들과
마찬가지로 백제문화단지로 돌아오고 있는 수륙양용버스를 보면서
주차장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부여시티투어 관광을 마쳤습니다.
버스 관광은 마쳤지만
아직 시티투어를 하면서 쓰지 않은 티켓이 둘이나 남아있으니 마저 써야겠죠.
먼저 백제문화단지로 가봅니다.
시티투어를 하지 않고 여기만 따로 보면 입장료는 6,000원인데
요금표 아래에 사비로 열차라는 게 눈에 띕니다.
뭔가 하고 보니 코끼리열차 같은 자동차네요.
사비로 열차는 패스하고 입장권만 받았습니다.
백제문화단지는 유적을 복원한 곳은 아니고
옛날 백제 건물이 이렇게 생겼겠거니 하고 몇 안 되는 유적을 바탕으로 만든 일종의 테마파크입니다.
안내문에는 '1400년 전 찬연했던 백제의 기상과 문화의 정수를 느끼시고 그때의 정취에 흠뻑 젖어보라'라고 적혀있지만
백제 때 지은 건물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게 현실인데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만든 테마파크에서 백제의 기상과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지...
아무튼 널찍한 공간에 여러 건물을 큼지막하게 지어놔서 보는 맛은 확실히 있는데요.
정양문 앞 탁 트인 공간을 지나
사비성을 재현한 공간으로 들어가면
궁궐의 중궁을 재현했다는 천정전(天政殿)이 나옵니다.
천정전이라는 이름은 국가의 큰 일을 하늘에 고하여 결정했다는 천정대(天政臺)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안으로 들어가면 어린이들의 포토 스폿이 돼버린 어좌와
왕과 왕비들이 입었을 대례복과 평상복이
놓여 있습니다.
사비성 오른쪽에는 커다란 오층목탑이 눈길을 뜨는 능사가 있습니다.
백제 왕실의 사찰을 본뜬 능사에는
사진 한 장에 담기 어려운 크기의 오층목탑이 있는데
목탑 안에는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커다란 심주가 있네요.
절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으로 들어가면
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보살입상이 좌우로 놓인 삼존불이 있고
정말 뜬금없게도 공양미가 있습니다.
가짜로 만든 절이라도 일단은 절이라는 걸까요?
다른 건물로는 향로각이 있는데
1993년 능산리 절터 발굴조사 과정에서 나온 백제금동대향로가 있던 자리를 재현한 건물로
향로각 안쪽에는 백제금동대향로를 만드는 과정을
여러 인형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능사 뒤에는 고분공원이 있는데
이곳에 있는 고분은 모형이나 복원품이 아니라
백제문화단지 조성 중 발굴된 무덤과 부여군 은산면에서 발굴된 무덤을
이곳으로 옮겨놨다고 하네요.
사비성 오른쪽에 있는 전시물은 다 봤으니 이제 왼쪽에 있는 전시물을 봐야 하는데
좀 더 빨리 가려고 언덕길을 올라 제향루를 거쳐 갑니다.
전망대라는 별칭이 붙은 것 답게
나무들로 시야가 가려지긴 하지만 일단 백제문화단지 전경이 보이긴 하네요.
정자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생활문화마을이라고 해서
백제 귀족과 평민이 살았던 집들을 재현한 공간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어느 시대가 됐든지 간에 귀족들은 잘 먹고 잘 살았고
평민들은 못 먹고 못 살았기에 그다지 흥미가 안 가네요.
그래서 위례성을 복원했다는 곳으로 바로 갑니다.
성문부터가 동양의 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좀 많이 다른데
한반도 일대가 철기문화를 수용한 시기에 위례성이 만들어진 것을 감안한 것인지
집을 짓는 재료들이 상당히 단순해 보입니다.
심지어 왕이 사는 궁궐 위례궁마저도 말이죠.
위례궁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건물에서는
백제의 건국신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백제 건국신화는 특이하게도 난생과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없죠.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왕 주몽의 아들 온조가 이복형 유리에 밀려 고구려 왕이 되지 못하자
어머니 소서노, 자신의 친형 비류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위례성에 자리를 잡고 십제를 세웠는데
미추홀에 나라를 세웠던 비류가 정착에 실패해 십제에 투항하자 백제가 되었다는 게
삼국사기에 적힌 백제 건국 이야기입니다.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라 막상 영상으로 보면 재미가 있을까 싶어 영상은 패스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괜히 쓸데없이 몇 자 더 적어봅니다.
위례성 구경은 얼추 다 해서 나오려다
성문 2층으로 올라와 성곽을 걸어볼 수 있길래
위에서 위례성 일대를 바라보고
뜬금없이 백제문화단지에 있던 가축들을 지나고
생활문화마을을 거쳐
백제문화단지를 떠납니다.
고증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보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둘러보니 생각보다 볼만하네요.
백제문화단지에 있는 백제역사문화관은 다음 일정을 생각해서 포기하고
아까 안 보고 지나친 정림사지에 다시 왔습니다.
정림사지는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와 더불어서 백제와 관련된 몇 안 되는 절터인데
수도인 사비에 세워진 절이니 당연히 중요한 절이었겠지만
지금은 파손된 석불좌상과 오층석탑만 남아
언제 절이 세워지고 언제 폐사된 건지 알 수 없는 채로 남아 있습니다.
이름마저도 사라진 채로 세월이 흐르다
1942년 절터를 발굴하면서 정림사라는 이름이 담긴 글귀가 새겨진 기와 조각을 발굴한 덕에
정림사라는 이름이 후대에 전해지게 됐네요.
폐허 사이에 홀로 서 있는 이 오층석탑은
백제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정말 몇 안 되는 유적인 데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여기에 정복 기념으로 글귀를 새겼기에 여러모로 중요한 문화재입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뒤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강당지 위에 건물을 세웠는데요.
이곳에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몸뚱이만 남아있던 것을 후대에 머리와 갓을 복원했다고 하네요.
정림사지 옆에는 정림사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보관하는 정림사지박물관이 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문을 닫은 지 오래라
석탑과 불상만 보고 나왔습니다.
아까 시티투어버스에서 내려서 여기를 봤으면 좀 많이 아쉬웠을 것 같네요.
이것으로 부여 여행은 끝.
ps. 부여 시내 여행을 하면서 조금은 시간에 쫓기면서 돌아다녔는데요.
이날 오후 3시에 공주 정안비행장에서 경비행이 체험 예약을 해서
비행기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날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오후 2시쯤 비행기를 띄울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네요.
비행기를 못 타게 된 게 너무 아쉬워서
괜히 비행장을 찾아 사진을 이것저것 찍어보다
나중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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