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아
일찍 숙소를 떠나 이른 아침을 먹으러 갑니다.
전날 밤 도로포장 공사가 있던 횡단보도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길래 뭔 일이 났나 했는데
정말 큰일이 났네요.
크게 다친 사람이 없길 바라며 사고 현장을 돌아갑니다.
다른 자판기보다 유난히 싼 자판기에서 포카리스웨트 2병을 챙기고
어느새 3번째 방문인 마츠야에서
기간 한정 메뉴인 후지산 두부 참깨 소스 마파 콤보 규동(富士山豆腐の胡麻だれ麻婆コンボ牛めし)을 골라
한국인 입맛에도 맵지만 부드럽게 입안으로 들어가는 규동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습니다.
길거리에서 뜬금없이 만난 현대자동차 버스를 보고 괜히 반가워 사진을 찍은 뒤
텐노지역에 도착.
와카야마로 가는 한와선 첫차는 모든 역에 다 정차하는 보통열차인데요.
중간에 다른 열차가 추월하건 말건 푹 자다
와카야마역에 도착했습니다.
환승 안내에 고양이 역장으로 유명한 와카야마 전철이 보이는데
이번에는 이쪽이 아닌 와카야마시 방면 열차로 환승.
6년 전 와카야마에 왔을 때에는
와카야마역과 와카야마시역을 잇는 열차가 이렇게 오래된 고물 열차였는데
어느새 여기에도 말끔한 신차가 도입돼 운행하고 있어
새삼 일본도 많이 변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열차를 타고 도착한 와카야마시역은 사실 난카이 전철로도 갈 수 있는 역이라서
굳이 와카야마역에서 열차를 갈아탈 필요 없이
처음부터 난카이 신이마미야역에서 열차를 탔으면 편하게 왔겠지만
칸사이 와이드 패스를 가지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교통비를 아끼겠다고 일부러 조금 돌아서 왔습니다.
난카이 전철 일부 역에는 비자카드 로고가 표시된 개찰구가 있는데
비자카드와 일본 신용카드사의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몇몇 철도 노선에서는 EMV 비접촉결제를 지원하는 비자카드로 운임을 낼 수 있고
난카이도 비자카드 도입에 적극적인 회사라 여행객이 자주 찾을만한 역에 비자 터치결제를 도입했습니다.
다만 지금 갈 곳은 비자 터치결제를 지원하는 역이 아니라서 평범하게 이코카로 개찰구를 통과.
이번에 탈 열차는 와카야마시역에서 카다역을 잇는 카다선 열차인데
물고기 모양 도장을 한 메데타이 열차가 달리는 것으로 난카이에서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거든요.
정작 승강장에 대기 중인 열차는 너무나도 평범한 열차라서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아무튼 와카야마시역을 출발해
운전석 너머로 보이는 전형적인 시골 노선 풍경을 보면서
종점 카다역을 향해 이동하다 보니
다행히(?) 메데타이 열차가 운행을 하긴 하는 것 가습니다.
그나저나 어째 열차가 점점 산으로 가는 것 같은데
사실 종점 카다역이 있는 동네는 카다항이라는 어항과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동네입니다.
메데타이(めでたい) 열차가 물고기 모양인 이유도
카다에서 잡히는 도미(鯛, 타이)를 모티프로 해서
열차를 타는 것만으로 축복받는 기분(메데타이)을 느끼라는 의미를 붙였다고 하네요.
카다역을 빠져나와
넓은 차도 대신 골목길로 들어가
잠시 다른 집 구경을 하다
골목길 너머로 보이는 바다로 갑니다.
바다는 바다인지 하늘에 보이는 갈매기를 보며 마저 걸어
빨간 다리 밑으로 걸어가면
저 멀리 하얀 여객선이 보이는
카다항이 나옵니다.
저 배가 향하는 곳은 토모가시마(友ヶ島)라는 작은 섬입니다.
한 번도 쓰이지 않은 포대가 폐허처럼 놓여 있어 폐허를 보러 가는 사람들도 있고
바다를 비롯한 풍경이 아름다워 가는 사람도 있지만
오사카에 와서 일부러 여기를 갈 한국인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네요.
하지만 오래전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섬 모습이 참 인상 깊어
언젠가는 한번 가보려고 마음먹다 이번에 왔습니다.
왕복 운임 2,200엔을 내고 배를 타려고 했는데...
바닷바람이 워낙 거세서 배가 안 뜨네요.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어쩐지 지금까지 여행이 너무 수월하게 풀렸다 싶은 생각과 함께
급히 여행 일정을 수정합니다.
카다역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주택가를 둘러보는데
어떤 식당에 애니메이션 포스터와 캡처 이미지가 걸린 게 보여 잠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찾아보니 서머타임 렌더라는 애니메이션이 이곳 카다항과 토모가시마를 배경으로 해서
홍보용으로 붙여둔 것 같네요.
나중에 토모가시마를 다시 찾게 된다면 그전에 한번 봐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구몬 지점이 이런 시골에도 있어 놀라워하며
마저 가던 길을 걸어가
카다역에 다시 왔습니다.
아까는 미처 보지 못한 공유 자전거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가입에 제한이 있지는 않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가입할 때 SMS 인증을 필요로 하는 업체들이 많아져서
외국인 단기 여행자 신분으로는 그저 그림의 떡인 교통수단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직 이용해 보지 못해 아쉽네요.
자전거를 지나 카다역 안으로 들어가니
이날 운행하는 메데타이 열차가 운행하는 시간표가 걸려 있습니다.
마침 8시 54분에 카다역을 출발하는 열차가 아까 본 분홍색 메데타이 열차 '사치(さち)'네요.
열차가 승강장에 진입하고 나서 우선 외관을 구경한 뒤
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살펴봅니다.
광고가 붙어 있을 자리에는
광고 대신 메데타이 열차의 디자인 요소를 설명하는 안내문이 걸려 있는데
오른쪽 아래에 한국어 해설이 같이 있어
일본어를 모르는 여행객이라도 충분히 이해하겠네요.
안내문을 읽고 나서 숨겨진 이스터 에그를 찾아보기도 하고
별의별 도미 장식을 열심히 찍어보기도 하며
열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시간을 보내다
출발 시간이 되어 자리에 앉아
와카야마시역으로 돌아갑니다.
ps.
난바역에서 와카야마시역까지의 왕복 승차권과 카다선 전 구간 자유 승하차 티켓,
여기에 자잘한 현지 할인 혜택이 더해진 교통 패스를 2,000엔에 팔고 있는데
난바역에서 카다역까지 왕복 운임이 1,940엔이니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는 차라리 와카야마 시내 관광을 묶어
칸사이 쓰루 패스나 난카이 전선 2일권을 하루 쓰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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