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시 박물관 상설전시실 입장료 200엔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전시물은 금으로 만든 작은 도장, 금인(金印)입니다.
한위노국왕(漢委奴國王)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이 도장은
후한 광무제가 서기 57년 큐슈 북부에 있던 노국(奴國, 나노쿠니)에 하사했다는 도장인데
일본을 부르던 옛 이름인 왜(倭) 또는 위(委)의 왕을 중국의 황제가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어
작은 크기에 비해 역사적 가치는 커서
이렇게 전시실 맨 앞에 놓아둔 것 같네요.
이어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전시물을 보여주는데
일본에서 선사시대 유물만 보면 괜히 후지무라 신이치 때문에 식겁하지만
유물 발굴 사기극이 드러난지도 20년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믿어도 되...겠죠?
큐슈는 중국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기에
중국과의 교역을 하는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시설로 후쿠오카성 터에
당나라와의 외교, 무역을 담당하던 코로칸(鴻臚館)이라는 건물 유적이 발견돼서
그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알려주네요.
대놓고 지명에 당나라로 가는 항구라는 뜻이 담긴 후쿠오카 옆 도시 카라츠(唐津, 당진)와도
깊은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사견도 듭니다.
중국과의 교역과 관련해서 정말 뜻밖에도 한반도와 관련된 전시물이 나오는데
원나라 경원(慶元, 오늘날의 닝보)을 출발해서 하카타로 가던 배가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거든요.
인양한 유물과 함께 바닷속에 잠긴 그 배를 모형으로 재현해 당시의 교역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보여줍니다.
유럽에서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항해해 카리브해 연안 섬을 발견한 뒤로
배를 끌고 전 세계를 항해하는 대항해시대가 열렸는데
대중 교역과 마찬가지로 큐슈 지방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입구 역할을 합니다.
이때 서양에서 건너온 대표적인 물건이 화승총인데
큐슈 카고시마 아래 섬 타네가시마에 표류한 포르투갈 상인으로부터 화승총 2점을 구입해 복제에 성공하면서
일명 타네가시마 총으로 불리는 조총이 일본에 퍼지게 됐고
조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시대의 판도를 바꾸더니
오나 노부나가에 이어 일본을 차지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에 조총을 사용했으니
참 기가 막힌 나비효과입니다.
다른 전시물에 비해 두루뭉술하게, 그리고 사진도 못 찍게 하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에 대한 전시물을 지나면
후쿠오카번의 영주 쿠로다 가문에 대한 전시물과
지금은 사라진 후쿠오카성,
그리고 후쿠오카라는 도시를 번성하게 만든 상공업에 대한 전시물이 나옵니다.
후쿠오카는 원래 후쿠오카성이 있는 지역만 후쿠오카였고
후쿠오카 동쪽에 상인들이 많이 사는 하카타라는 지역이 따로 있었는데요.
두 지역이 규모가 커지면서 하나의 도시처럼 돼버렸고 결국 행정구역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1889년(메이지 22년) 일본이 행정구역 단위를 시정촌으로 개편하면서
새로 탄생할 시의 이름을 두고 후쿠오카파와 하카타파가 격렬하게 대치했는데
시의원 투표에서 동수가 나와 후쿠오카 출신 의장대리가 후쿠오카를 선택해
도시 이름이 후쿠오카가 됐다고 하네요.
대신 철도역은 후쿠오카 지역이 아닌 하카타 지역에 지어졌기에 후쿠오카역이 아닌 하카타역이 되었고
지금도 JR 큐슈에는 후쿠오카역은 없습니다.
타이쇼 시대에 이르러 후쿠오카는 주변 지역을 흡수해 규모가 커지면서
인구 면에서도 면적 면에서도 큐슈 최대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경제적 번영이 오니 문화도 융성했는데
오늘날에는 타이쇼 로망이라고 부르는,
낭만으로 가득하던 시절의 나카스 일대를 보여주네요.
과거의 도시를 보여주는 디오라마와
한때는 우승을 밥먹듯이 했지만 승부조작 사건인 검은 안개 사건에 팀이 연루돼 순식간에 팀이 박살나
결국 구단을 매각해 후쿠오카를 떠나 저 멀리 사이타마로 가버린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옛 유니폼,
헤이세이 시절 후쿠오카의 번영을 보여주는 모모치 해변 일대 디오라마,
그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후쿠오카의 마츠리
기온 야마카사에 쓰이는 가마를 보는 것으로
상설전 관람은 끝인데
상설전시실 옆에 파노라마 후쿠오카라는 작은 전시실이 있어서 이것까지 보도록 하죠.
커다란 벽에 말 그대로 후쿠오카시를 통째로 그려놨는데
후쿠오카의 중심역 하카타역과
하카타와 쌍벽을 이루는 중심지 텐진,
지금은 옆에 오호리 공원이 있는 후쿠오카성 터와
후쿠오카시 박물관과 후쿠오카 타워가 있는 모모치하마,
그리고 기회가 되다면 다시 가고 싶은 메이노하마를 찍고
박물관에서 나와
다음 여행지로 어디를 갈지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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