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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상세)/2023.08.10 칸토

6. 고구려 왕족의 후손을 기리는 코마신사

 

 

승차권 발매기에서 특급열차 좌석지정권을 발급받고

 

 

 

 

원래 타려고 했던 보통열차 대신

 

 

 

 

신주쿠행 특급 카이지를 타고

 

 

 

 

편하게 이동해

 

 

 

 

하치오지역에 내려 하치코선 보통열차로 갈아탑니다.

 

 

 

 

하치코선은 하치오지역에서 타카사키역을 잇는 노선인데

 

코마가와역에서 타카사키역 사이 구간은 이용객이 적은 데다 열차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시설도 없어서

 

실제 운행은 하치오지역에서 코마가와역까지 하치코선을 달리다

 

코마가와역에서 카와고에선으로 빠져 카와고에역까지 갑니다.

 

노선도에도 실제 운행 패턴을 반영해서

 

코마가와역부터 타카사키역까지 구간은 마치 별개 노선인 것처럼 회색으로 따로 표시했네요.

 

 

 

 

일단은 도쿄도를 달리는 노선인데

 

여기는 도쿄 중심인 23구가 아닌 도쿄도 외곽 지역이라

 

선로도 복선이 아닌 단선이고

 

열차 밖에 보이는 풍경도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가 아닌 한적한 주택가 모습입니다.

 

 

 

 

하치오지역을 출발한 열차는 하이지마역을 거쳐 히가시훗사역에 도착하는데

 

 

 

 

히가시훗사역 근처에는 여러 의미로 유명한 주일미군 요코타 공군기지가 있습니다.

 

히가시훗사역이 요코타 기지에서 제일 가까운 전철역이지만

 

역 규모 자체가 큰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요코타 AB 프렌드십 페스티벌(요코타 기지 일미 우호제)같은 기지개방 행사를 열 때에는

 

히가시훗사역이 아닌 하이지마역에서 걸어오라고 안내를 한다고 하네요.

 

 

 

 

히가시훗사역을 지나 더 북쪽으로 가니

 

 

 

 

점점 주변에 보이는 게 건물보다 식물이 많아지는 가운데

 

 

 

 

하치코선과 카와고에선이 만나는 코마가와역에 도착.

 

 

 

 

코마가와역 한자를 한국 발음으로 읽으면 고려천역인데요.

 

여기서 고려는 삼국시대의 한 축을 맡았던 고대 국가 고구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장수왕이 국호를 고구려에서 고려로 변경했지만 이후에도 고려와 고구려가 섞여 쓰였는데

 

일본에서는 고려를 일본식으로 읽은 코마를 고구려를 부르는 이름으로 썼거든요.

 

즉 이 동네는 고구려와 연관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겠죠.

 

 

 

 

고구려와의 연관이 깊은 시설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교통편이 불편해서 시내버스로는 갈 수 없고

 

그렇다고 걸어가자니 새벽부터 돌아다녀 힘이 듭니다.

 

 

 

 

그러니 편하게 가려면 돈을 좀 써야겠죠.

 

마침 코마가와역에 택시가 도착해서 바로 탑니다.

 

 

 

 

일단은 수도권에 속하는 동네인데 신용카드 결제를 지원하지 않아

 

현금으로 800엔을 내면서

 

돌아갈 때 택시를 부를 연락처를 물어보고

 

 

 

 

택시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면

 

 

 

 

참 안 어울리게도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활짝 웃고 있네요.

 

 

 

 

택시를 타고 도착한 이곳의 이름은 코마신사.

 

 

 

 

고구려가 멸망하고 일본으로 온 도래인들,

 

그중에서도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이라고 전해지는 약광을 모시는 신사입니다.

 

 

 

 

약광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없고

 

일본 측 사서인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에만 전해진다고 하는데

 

 

 

 

교차검증할 기록이 부족하니 약광이 실제로 보장왕의 아들이었는지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유이민들의 대장 노릇을 하다 고구려 왕족을 사칭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고구려와 지속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어온 일본 야마토 정권이 약광을 받아들였고

 

약광의 후손들이 이렇게 번듯한 신사를 만든 것을 보면

 

기록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의 정체성을 무조건 의심하긴 어렵겠죠.

 

 

 

 

신사 건물 자체는 다른 신사과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신사에서 모시는 사람이 사람이다 보니

 

한일관계에 있어서 복잡한 위치에 있는 신사였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고 나서 통치할 때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일본인과 잘 동화가 된 결과물인 이 코마신사를

 

안 써먹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시설이니까요.

 

 

고(高)와 려(麗) 사이에 작게 구(句)라고 적힌 특이한 편액.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지낸 친일파 조중응이 1900년에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마신사와 조선신궁이 나무를 교환하는 등 내선일체를 밀어주기 위해 여기를 잘 써먹은

 

이래저래 찝찝한 역사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현대에 들어서는 다른 의미의 한일우호교류의 상징이 되어

 

민단에서 신사 입구에 장승을 세워둔다거나

 

주일 한국대사가 잊을만하면 방문한다거나 하는 곳이니

 

 

 

 

너무 어둡게만 볼 필요는 없겠죠.

 

 

 

 

신사 뒤편 커다란 나무 뒤에는

 

 

 

 

코마케쥬타쿠, 그러니까 고려가 주택(高麗家住宅)이 있습니다.

 

 

 

 

코마신사의 신직을 대대로 맡아온 코마씨 가문이 살던 집인데

 

 

 

 

천년이 넘는 신사 역사에 비해 주택은 고작(?) 5~600년밖에 안돼

 

건물 자체는 일본 민속촌에서 흔히 볼법한 모습이네요.

 

 

 

 

건물 구경은 이 정도로 하고

 

 

 

 

도래인에서 이름을 따온 남자 '도라이군'과 미래에서 이름을 따온 여자 '미라이짱',

 

 

 

 

그리고 오래전 한국에서 고양이를 부르던 이름 나비에서 따온 '나비냥'과

 

 

 

 

고구려 고분의 벽화를 통해 재연한

 

 

 

 

고구려의 전통 복장 '무지개 치마(にじのスカート)'를 보고 나와

 

 

 

 

콜택시를 불러

 

 

 

 

다시 코마가와역으로 돌아갑니다.

 

ps. 코마신사 근처에는 쇼텐인(聖天院)이라는 절이 있는데

 

한때는 코마신사와 묶어 관리하다 메이지 시대 때 분리된 곳입니다.

 

그러니 이곳 역시 한반도와 관련이 깊은 곳인데 이번 여행 때는 시간 관계상 못 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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