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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여행/이런저런 전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전화 (2026.03.20)



BTS 공연 준비가 한창이던 3월 20일 금요일.

KT 광화문 사옥에 방문했습니다.




이곳 2층 온마루에 한국 통신 역사에 대해 다루는 작은 전시가 열리고 있어

시간을 내 와봤는데요.




가장 먼저 소개하는 것은 1885년 처음 조선 땅에 들어선 전신입니다.




보스 부호로 변환한 단어나 문장을 전신선을 통해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지면서

빠른 정보 전달이 중요한 세상이 열리게 됐다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지만

이제는 아마추어 통신사의 취미가 아닌 이상 민간 영역에서는 말 그대로 역사적인 존재가 되었네요.

전신주, 축전 같은 단어에는 여전히 전신이 남아있지만.




이어서 1898년 덕수궁에 전화기 ‘덕률풍’이 설치되면서

조선에도 전화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덕률풍을 사용한 사람이 고종 황제다 보니

이런저런 일화가 많이 전해오는데


실제로는 고종이 전화를 건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중 백범일지에 실린

치하포 사건으로 사형을 받게 된 김구를 사면시켰다는 일화도 나오네요.




최초의 전화기는 일일이 전화 상대방을 연결해 주는 교환원이 필요했지만


사실 자동교환기가 등장한 이유는 미국의 한 장의사때문이라는 황당한 일화가 있는데



늘어나는 전화 수요도 부담이고

비대해진 전화교환원을 유지하는 것도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었기에


이건 MBC 예능 서프라이즈 영상 보면 잘 나옵니다.



자동교환기가 등장하는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DDD, 장거리 직통 전화가 등장했는데

이제는 이 말을 아는 사람이면...




아무튼 전화 연결 방식이 바뀌면서 전화기도 달라졌는데

핸들을 돌려 교환원을 호출하는 자석식 전화기부터 시작해

수화기를 들면 바로 교환원과 연결되는 공전식 전화기가 등장했고




자동 교환기 등장 후 전화번호를 입력하기 위해 다이얼식 전화기가 만들어졌다

버튼식 전화기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도 버튼식 전화기가 세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화기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한때 한국통신의 주된 밥줄이던 공중전화는 완전히 씨가 말랐죠.




이제는 추억을 넘어 역사적인 물건이 된 공중전화기를 체험해 보는 코너가 있는데




공중전화 앞에 놓인 코인을 들고




공중전화에 투입한 뒤 숫자 버튼을 누르면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공중전화에 100원을 넣으면 거스름돈이 나오지 않기에

통화를 마치고 돈이 남으면 다음 사람을 위해 수화기를 공중전화 위에 놓는 것이 매너였는데

이것 역시 사라진 문화가 되었습니다.




공중전화 부스에 하나씩은 매달려있던 전화번호부 코너를 지나면




지금도 수집하는 사람이 소수 남아있는 공중전화카드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네요.




카드 앞면에는 일련번호와 권종, 카드 잔액,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그네틱 띠가 있었고




뒷면에는 별의별 디자인이 실렸기에 정말로 수집하는 재미가 넘쳤죠.

공중전화번호 부스 주변에는 잔액이 다 떨어져서 누군가가 버리고 간 카드가 적어도 한두 장은 있었기에

부스를 기웃거리던 생각이 나네요.




그런 공중전화카드를




직접 디자인을 골라 뽑은 뒤 네임태그로 만들어주는 코너가 있습니다.

카드 수집가인 저로서는 사실 이것을 위해 온마루에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카드 디자인 위에 꾸미는 요소는 총 6가지지만

크게 마음에 드는 게 없어

현충사 위에 달을 띄우고 공중전화 로고만 간단히 붙였습니다.




사실 로고를 왼쪽 위에 붙이고 싶었지만 구멍을 뚫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아래에 놓을 수밖에 없었네요.




카드를 받고 나서 잠시 어렴풋한 기억을 끄집어내다




전화기를 통한 통신에서 확장된 컴퓨터 통신을 살펴보러 갑니다.


한국통신에서 고객에게 대여했지만 회수가 되지 않아 지금도 중고 물품이 돌아다니는 하이텔 단말기



컴퓨터 간 통신하면 지금은 당연히 인터넷이 떠오르지만

과거에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의 PC통신 전성기가 있었죠.




그중 한국통신이 운영하던 하이텔을 체험해 보는 공간이 있는데


 
 
생각보다 본격적인데요?


Korean Old BBS

 
 
속도는 그 시절 속도가 아니지만

PC통신 특유의 연결 소리도 그렇고

그 시절 유행했던 영화와 노래를 다루기도 하는 등

PC통신에 대한 감상에 젖게 만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전화선을 통해 전신부터 인터넷까지 진화해 온 통신은




유선을 벗어나 이제 무선 통신 시대에 접어듭니다.


모토로라 다이나택 3000



최초의 개인용 무선 통신 단말기인 차량전화를 비롯해서




당시의 휴대전화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어디서든 자유롭기 통화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는 의의가 있겠죠.




1G 시대의 변종 휴대전화로 시티폰이 있는데

가정용 무선전화 기술을 응용해서 공중전화 부스 주변에서 전화를 걸 수만 있던 단말기입니다.

시티폰이 나오던 때는 공중전화를 쓰기 위해 길게 줄을 서던 시대였기에

공중전화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강점으로 들며 마케팅을 했고

연락을 받을 수만 있던 삐삐와의 조합이 너무나도 좋아서 인기를 끄는가 했지만




하필이면 시티폰이 나올 즈음 2G가 서비스를 시작했기에

제대로 흥하기도 전에 망했네요.




아무튼 보편적인 개인 단말기가 등장한 시기가 바로 2G CDMA 시절이고




모토로라의 전설적인 기기 스타텍을 비롯해서




지금도 디자인이 회자되는 LG 싸이언 초콜릿폰과 같이

단순히 전화가 되는 것을 넘어 소비자들의 디자인 기호를 고려해 만든 단말기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3G WCDMA 시대는 사람들의 인식과 기술적 사실이 다른 시기이기도 한데요.


LG U+는 WCDMA가 아닌 CDMA2000을 썼기에 3G시대에도 유심을 안 썼습니다. 아이폰을 도입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



한국에서는 USIM이라고 부르는 심카드가 등장하면서

통신회선(전화번호)과 단말기(전화기)를 분리해서

 

심카드를 갈아 끼우면 한 단말기로 다른 회선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데이터 통신 속도가 빨라지면서 단말기를 통해 무선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된 시기도 이 시기네요.




그러니 이런 피처폰 역시 유심이 들어가는 3G폰이지만




하필이면 3G 시대에 한국 통신시장을 박살 내버린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이 아닌 피처폰은 모조리 2G 폰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이어서 모든 통신사가 4G LTE를 쓰는 시대가 되면서

유심만 갈아끼우면 자유롭게 단말기를 바꿀 수 있는 지금의 통신 시장이 되었고




지금도 욕을 처먹는 5G NR에 이어

차세대 통신 기술인 6G가 개발 중입니다.




KT 자회사 알뜰폰 회선을 쓰고 있지만 KT에 대한 감정은 결코 좋지 않은데요.




위성도 팔고 개인정보도 파는 악덕 회사에게 좋은 감정이 있겠냐마는




KT의 전신인 한국통신에 대한 아련한 낭만을 느낄 수 있어서 전시는 참 좋았네요.




전시 끄트머리에 놓인 플랩식 패널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감상에 잠기고




갤럭시 S26 호객행위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