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을 맞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방문하고자 독립문역에 왔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좀 많네요.
삼일절에는 입장료가 무료라서 그런지 입장 대기줄이 벽을 따라 꺾인 채로 이어집니다.
이대로 가다간 기다리다 진이 빠질 것 같네요.
그래서 이틀 뒤인 3월 3일 다시 방문했습니다.
똑같은 휴일인데 참 한가합니다.
입장료 3천 원을 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87년 서울 구치소가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철거할 계획이었으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세져 철거를 중단하고
복원을 거쳐 박물관으로 개관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9~12옥사, 공작사 등 서대문형무소의 일부 건물을 복원, 보수해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니 우선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에 대한 안내문이 보입니다.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시절이던 1908년 경성감옥으로 만들어졌는데,
당시는 이미 일제의 간섭이 심하던 시절이니
서대문형무소는 시작부터 일제에 반발하는 인사를 잡아들이고 고문하는 일에 충실했습니다.
한편 오른쪽 감옥 모형을 보면 가운데 놓인 중앙사를 중심으로 옥사가 방사형으로 놓여 있는데,
파놉티콘처럼 간수가 옥사 감시를 쉽게 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어서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사람 위주로 보여주다 보니 한반도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에 대한 설명이 많습니다.
수감자의 생활을 보여주는 전시물도 보입니다.
신체를 구속하는 도구 위주로 전시 중입니다.
전시 동선을 따라 쭉 가니 넓은 방에 벽 전체를 수형기록표로 빼곡하게 채워놨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수형기록표 5천여 장을 바탕으로 방을 꾸몄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공간은 사형장입니다.
천장에는 사형 장치와 올가미가 보이고, 벽에는 이곳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사형장 출구로 나오니 시신을 수형소 밖으로 보내는 시구문 모형이 보이네요.
2층 전시 관람을 마치고 지하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에는 일제가 독립운동가에게 행한 물고문부터 손톱 찌르기, 태형(곤장), 상자 고문, 벽관 고문 등
각종 고문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용으로 사용한 지하 독방도 있네요.
전시관 전시는 이것으로 끝인데, 아쉽게도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일제가 독립운동가에게 가혹하게 대했듯이 독재정권은 민주화 운동가에게 가혹하게 대했고
서대문형무소는 광복 후에도 민주화 운동가를 가두는 용도로 사용됐죠.
조봉암이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된 뒤 여기서 사형당했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민주화 운동을 펼치면서 이곳에 투옥됐습니다.
이런 역사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부족하네요.
전시관을 나와 옥사로 이동했습니다.
양옆에 방이 나란히 있고 2층 복도 가운데 간수가 수감자를 감시하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독방은 감방 하나를 다시 쪼개서 만들었는데,
햇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방입니다.
다른 방이라고 해서 공간 여유가 큰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이곳에 수감된 사람들은 개인별 형량, 노역 강도에 따라 다르게 밥을 배급받았습니다.
바닥 깊이가 다른 원통형 틀에 밥을 배급해서
틀밥, 또는 일본어로 틀이라는 뜻의 '가다(型)'를 붙여 가다 밥이라고 불렀다네요.
배급량은 규정이 정해져 있지만 당연히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옥사를 쭉 둘러보니 12개월별로 활약한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공간을 만들어 놨습니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많은 독립운동가는 남성이었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도 여럿 있었습니다.
3.1운동 하면 생각나는 유관순 열사도 여성이고, 영화 '암살'로 재조명 받은 남자현도 여성이죠.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른 옥사로 이동하니 독재 시절 이곳에서 희생당한 재일동포에 대한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차별받던 재일동포들이 정체성을 찾고자 모국을 찾았지만
정작 모국은 그들을 간첩으로 몰았고 사형당하는 사람까지 나오자
정부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슬픈 역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2010년 과거사위의 활동으로 무죄가 선고됐지만,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옥사를 나와 공작사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노역이 이뤄진 곳인데, 징역에서 역(役)은 노동형을 말하니
많은 수감자들이 자유형과 동시에 노역을 받았습니다.
수감자들은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하루 일과를 노역으로 지냈지만
실제로는 취침시간까지 줄이며 노역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일제가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까지 벌이는 시기에는 말할 것도 없겠죠.
공작사를 나와보니 전시관, 옥사, 공작사 등이 남아있는 북쪽에 비하면 남쪽은 허허벌판입니다.
아마도 서울구치소 이전 작업으로 철거된 곳 같네요.
복원 과정 중인 건물도 있으니 여기도 나중에는 북쪽처럼 빼곡해질 것 같습니다.
2010년에 만들어진 추모비를 보고 박물관을 나왔습니다.
독립문역을 통해 여기를 왔는데 독립문을 안 보고 가긴 아쉬우니 독립문에 왔습니다.
독립문이 말하는 '독립'은 청으로부터의 독립도 아니고(청일전쟁 후 사실상 종주권 상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은 더더욱 아니고(일제 간섭이 덜하던 시기에 건설)
문자 그대로 조선이 자주국으로서 홀로 선다(獨立)는 뜻으로 해석해야겠죠.
원래 독립문은 청 사신을 맞던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었는데,
1979년 구자춘 서울시장이 독립문 고가차도를 건설하면서 방해가 되던 독립문을 통째로 들어서 옮겨
옛날과 다른 곳에 위치하게 됐습니다.
보통은 문화재 보존을 위해 고가도로를 우회할 텐데, 그 시절이니 가능한 이야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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