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역에서 점심을 먹은 뒤 걸어서 합정역에 왔습니다.
여기서 2호선 철길을 따라 쭉 걸어
목적지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왔습니다.
이름대로 개화기 때 조선으로 건너와 선교 활동을 하던 사람들의 무덤이죠.
이들은 선교 활동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등을 포함한 각종 근대화 운동에 참여해
한국 역사에도 이름을 남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역사 교과서에 실린 사람이 많습니다.
이곳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도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
이곳에 최초로 묻힌 사람은 미국인 의료 선교사 J. W. 헤론입니다.
헤론이 의료 활동을 하다 병에 걸려 숨지게 되자 미국 공사는 조선에 묘지 제공을 요청했는데,
조선과 미국이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는 외국인 묘지와 관련된 조항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영수호통상조약에는 외국인 묘지 제공을 약속한 조항이 있고,
미국 공사는 최혜국 대우 조항을 들어 조영조약 내용을 미국에게도 적용하라고 한 것이죠.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최초로 최혜국 대우 조항을 명시한 조약이었기에 조선 정부는 이를 따라야만 했고
1890년 7월 28일 양화진 언덕에 헤론이 안장되었습니다.
이후 다른 나라 선교사들도 이곳에 묻히면서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됐죠.
이런저런 업적을 세운 분이 많지만
묘지에서 사진 찍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 실례니 몇 분만 담아봤습니다.
여긴 보머 B. 헐버트의 묘지입니다.
공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사로서 조선 땅을 밟은 헐버트는
고종의 신임을 받아 외교 관련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고종 특사 자격으로 미국 대통령에게 밀서를 전달하려고도 했고,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특사를 보내기 위한 사전 작업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일제의 압력으로 미국으로 추방당했지만 광복 후 국빈 자격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했고,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유언에 따라 여기에 안장됐습니다.
여긴 대한매일신보 사장을 지낸 영국인 어니스트 T. 배델의 무덤입니다.
당시 표기인 E. T. 배설로도 알려져 있죠.
구한말 최대 독자수를 보유한 신문이던 대한매일신보는
고종이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기고를 싣기도 했고, 국채보상운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등
일제의 압력 속에서도 항일운동을 벌인 신문입니다.
이런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배델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이죠.
영국은 일본과 동맹관계였기에 치외법권을 적용받았고,
통감부가 신문지법을 만들어 신문을 검열하고 탄압할 때에도 대한매일신보는 검열 밖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통감부가 신문지법을 개정하며 외국인 발행 신문에 대해서도 검열을 하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가 영국에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 결국 배델을 법정에 세우면서
배델은 재판 도중 병으로 숨졌고, 대한매일신보는 친일신문인 매일신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묘지는 메리 F. 스크랜턴의 무덤입니다.
스크랜턴 대부인으로도 알려진 메리 F. 스크랜턴은 조선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세운 사람입니다.
개항기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조선에서
근대 여성 교육을 최초로 시작했던 선구자죠.
1886년 처음 여성 교육을 시작했던 그의 의지는
지금도 이화학당(이화여대 등)과 이화학원(이화여고 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묘역을 나와 건물이 있는 곳으로 오니 양화진홀에서 전시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선교사 로제타 홀의 일기가 번역된 기념으로 열린 전시네요.
안으로 들어가니 로제타 홀이 쓴 일기와
그녀가 읽던 성경 등이 보입니다.
로제타 홀과 자녀가 찍은 가족 사진도 있네요.
로제타 홀은 남편 윌리엄 홀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와 의료 선교를 한 사람입니다.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인 보구여관을 비롯한 여러 여성병원 설립에 관여했고,
의료기관 설립, 특수교육 시행 등 여성 양의 양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아들 셔우드 홀은 결핵을 전공한 의료 선교사로서
조선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어 자금을 모으며 결핵 퇴치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시실에는 로제타 홀 가족과 관련된 유물 이외에도
한국 교회 선교 역사와 관련된 유물이 여럿 전시 중입니다.
최초로 한글로 출간된 성경(누가복음/루카 복음서)가 보이네요.
선교사들의 활동을 허가하는 여행허가서도 있습니다.
오늘날 비자와 같은 개념인데, 당시에는 여권 양식이 나라마다 제각각이었으니 비자도 마찬가지겠죠.
한국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본 뒤 전시실을 나왔습니다.
양화진 옆에는 성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절두산 순교성지죠.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개신교의 성지라면 절두산 순교성지는 천주교의 성지입니다.
1866년(병인년) 흥선대원군이 프랑스 신부를 포함한 천주교 신자를 잡아 잠두봉에서 처형을 했는데,
바로 교과서에서 병인박해라고 가르치는 그 사건이 여기서 벌어졌습니다.
잠두봉이라는 이름은 머리를 자른다는 뜻의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광복 후 천주교에서 이 지역을 매입하면서 성역으로 삼아 공원과 박물관, 성당을 지었습니다.
공원에는 조선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안드레아) 동상이 있습니다.
김대건은 1846년(병오년)에 순교해(병오박해) 절두산 순교성지와는 관련이 없지만
(순교지는 용산 새남터 성지, 무덤은 안성 미리내 성지)
조선의 천주교 탄압과 순교를 상징하는 인물이라서 그런지 여기에 동상이 있네요.
동상 맞은 편에는 성당과 박물관이 있습니다.
천주교도는 아니라 미사를 드리긴 애매하니 박물관이라도 보고 가려고 했는데,
아쉽지만 이때는 박물관이 휴관 중이라서 관람을 못했습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절두산 성지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동상을 보고 성지를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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