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 겸 추석 연휴 이른 아침 구파발역으로 와서
역 근처 김밥집에서 오랜만에 김밥 한 줄을 사고
주말에만 운행하는 8772번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으로 갑니다.
명절 연휴에는 등산객 좀 적으려나 했는데
그 기대는 제 망상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물을 마시더라도 코를 마스크로 가린 채로 물을 마시고
앞사람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등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까지 지하철을 타고 별의별 곳을 돌아다니면서
북한산성 대서문이나 보국문 등산로 입구까지는 가봤지만
본격적으로 북한산 등산을 해본 적은 없기에
날을 잡아서 북한산성 대서문으로 진입해
북한산성 곳곳을 돌아보다 북한산성 보국문으로 내려가는 일정을 잡았습니다.
공사가 끝나고 말끔한 모습을 드러낸 대서문을 통과하며 북한산성에 진입,
지난번에 가본 북한동역사관을 지나
앞으로 걸어갈 길을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 지도는 북한산성이 제대로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근처에 있는 다른 지도를 찾았습니다.
중성문을 지나 행궁지 일대를 둘러보고
대남문과 대성문을 찍은 뒤
보국문으로 나와 북한산에서 내려갈 계획입니다.
그러면 다리를 건너 이전까지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 보겠습니다.
자생식물원이 있길래 잠깐 들러
가을에 피는 이런저런 야생화를 둘러보고
식물원에서 빠져나와
거친 길 옆 조금 다듬어진 데크를 걸어가니
이제 차가 지나가지 못하는 길이 이어집니다.
거친 길을 걸어 중성문에 도착했습니다.
특이하게 산성 안 협곡에 중성을 쌓고 문을 만들었는데
중성문이 지어진 이 일대는 다른 곳에 비해 지형이 평탄해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중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처음 북한산성을 만들었을 때에는 중성문 옆에 수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수문은 지금 남아있지 않습니다.
여타 문화재처럼 일제 강점기 때 사라진 것은 아니고
이미 조선시대 때 무너진 것 같다고 하네요.
중성문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언덕길을 바라보고
앞으로 한참 걸어가야 하는 길을 바라본 뒤
중성문에서 내려와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중흥사 권역에 진입하니 언덕 한쪽에 북한산성선정비군이라고 해서 선정비들이 몰려있고
선정비 사이 커다란 바위에는 북한승도절목이라는 암각문이 있습니다.
선정비는 북한산성에 온 관리들의 공덕을 적었고
북한승도절목에는 북한산성에 배치되는 승병들의 대장인 총섭을 임명할 때의 규칙을 적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몇 번 더 언급하겠지만
북한산성은 한양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을 막기 위한 시설인 만큼
여러 중앙군 부대와 더불어서 승병들이 곳곳에 배치됐고
이와 관련된 유적들이 여럿 남아있습니다.
너무 새 티가 나서 문화재인 줄 모르고 지나칠뻔한 산영루를 찍고
아니나 다를까 식수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약수터를 지나
중흥사 입구에 진입하니
진이정, 허수경 시인 추모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허수경 시인은 '울고 있는 가수'라는 시를 읽어본 적이 있어서 보자마자 기억이 났는데
찾아보니 암 투병 끝에 2018년에 돌아가셨네요.
한편 북한산성 안쪽에는 이 중흥사를 비롯해서 유독 절이 많이 있는데
북한산성에 군대 주둔지 말고도 승병들이 머무를 승영사찰을 지어서 그렇습니다.
북한산성이 지어진 시기는 조선 숙종 때이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의병, 특히 승병의 중요성을 조정이 깨달았나 봅니다.
승영사찰에 사는 중들은 승병으로서 성곽을 관리하고 유사시 방어 임무를 맡았습니다.
지금까지 갈림길이 나오면 계속 동쪽으로 쭉 직진을 했는데
이 갈림길에서 드디어 대남문을 향해 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걸어갑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지나
습기를 머금어서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으니
남들보다 빨리 빨갛게 물들어 등산객을 맞는 단풍잎을 만났습니다.
계속 걸어 행궁권역에 도착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갈림길에서 청수동 암문 방향으로 걸어가면 행궁터가 나옵니다.
거친 오르막길을 오르면 나오는 것은 가파른 계곡이기에 이런 곳에 정말 행궁이 있나 싶었는데
이렇게 돌을 쌓아서 기반을 다진 흔적이 보이는 것을 보니
이 일대에 건물이 있긴 한 것 같네요.
조금 더 걸어가 북한산성 행궁터에 도착했습니다.
공사 안내문에 적힌 공사기간은 2020년 4월 10일인데
이 기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네요.
남한산성에 행궁이 있듯이 북한산성에도 행궁이 있었습니다.
비상시에 왕을 비롯해서 여러 대신들이 이곳에 피신할 수 있게 필요한 시설을 다 갖춘 곳인데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행궁 건물들이 모조리 파괴돼서 지금은 터만 남았습니다.
남한산성 행궁도 마찬가지로 폐허만 남았던 것을 복원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남한산성 행궁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피난을 와서 사용한 곳이고
행궁 중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이 있었다는 등의 가치도 있어 복원이 됐다고 봐야겠죠.
그에 비하면 북한산성 행궁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덜해 복원이 천천히 되는 것 같습니다.
공사장 입구에서 행궁터를 충분히 바라보고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아까 스쳐 지나간 호조창지에 와봤습니다.
호조창은 유사시 왕실에서 사용할 쌀을 보관하던 창고로
북한산성 곳곳에는 호조창을 비롯해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군량미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산성이 위치한 곳이 산세가 험해서
북한산성에 주둔한 군대 전체를 감당할만한 창고를 만드는 것은 어려웠는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산성 아래에 평창이라는 창고를 만들어서 쌀을 보관했습니다.
이 평창이 있던 자리가 오늘날의 평창동입니다.
호조창지를 지나 다시 험한 길을 걸어
갈림길에서 대남문으로 가는 길을 선택,
대남문을 향해 걸어가다 북한산성 금위영이건기비와 금위영 유영지를 발견했습니다.
조선 후기 중앙군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을 5군영이라고 부르는데
북한산성에는 이중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이 주둔했습니다.
여기는 금위영의 주둔부대가 있던 유영인데
원래는 대동문 근처에 있던 유영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이건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금위영 근처 어영청 유영지에는 지금은 대성암이라는 절이 있는데
그냥 지나가기엔 너무나도 예쁜 꽃이 있어서 절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네요.
9시에 등산을 시작해서 상당히 오래 산길을 걷고 있습니다.
등산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해보는 것이 상당히 오랜만이라서
쉴만한 곳이 보이면 충분히 쉬면서 물을 마셨는데
오르막길이 계속 나오다 보니 다리가 당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최대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오르막길을 걸어 대남문에 도착했습니다.
숙종 때 북한산성을 만들었을 때에는 대남문이 없었고 소남문이라는 작은 암문이 있었는데,
영조가 1760년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북한산성의 정문인 대성문으로 들어와서 소남문으로 나간 뒤
소남문을 대남문으로 고치고 이렇게 크게 키웠다고 합니다.
대남문 위에서 구름이 끼어 조금 흐리지만 멋진 경치를 바라보고
잠시 쉬면서 아침에 산 김밥을 꺼내 간단히 배를 채워봅니다.
김밥을 다 먹고 나서 이제 다음 목적지인 대성문으로 가야 하는데
다리에 힘이 쭉 빠져서 끝이 안 보이는 저 계단을 따라 성곽길을 걸어갈 자신이 없네요.
그래서 오르막길 대신 내리막길을 선택해
대성문에 왔습니다.
대서문, 대남문, 대동문과는 달리 방위 대신 성(成)이 붙은 대성문은 처음에는 북한산성의 정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성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워낙 험해서
숙종은 북한산성 완공 후 행차할 때 대성문이 아닌 대서문을 통해 북한산성으로 들어왔고
영조는 대성문으로 들어올 때 고생을 깨나 했는지 대문을 대남문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어쨌거나 북한산성의 정문이었으니 대성문 크기는 꽤 커 보입니다.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보국문으로 가야 하는데
그래도 산성에 와봤으니 성곽을 조금이라도 걸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대성문에서 조금 더 오래 쉬다 성곽길을 걸어갑니다.
성곽길을 걸으면서
나무를 뚫고 나온 바위를 열심히 바라보며
북한산 경치를 구경해봅니다.
공사 때문에 걷기 어려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마침내 보국문에 도착했습니다.
보국문 자체는 작은 암문에 불과하지만
북한산에서 정릉으로 난 등산로가 바로 이 보국문과 연결되기에
등산객들이 쉴 새 없이 이 작은 문으로 들락날락거립니다.
이날의 마지막 목적지 보국문에 도착한 것은 좋은데
보국문에 왔다고 등산이 끝난 것은 아니죠.
오르막길보다 더 힘든 가파른 내리막길이 쉴 틈 없이 이어져서 계속 고생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물이 흐르는 약수터를 만났지만
바가지를 쓰기엔 괜히 찝찝해서 손으로 물을 살짝 마시고
다시 험한 산길을 내려와
옛 모습이 담긴 팻말을 보면서
정릉계곡을 둘러보고
마침내 북한산에서 빠져나왔습니다.
GPS를 따로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이런 경로로 북한산과 북한산성을 관통해서 등산했습니다.
9시부터 2시까지 5시간 동안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니 상당히 피곤하네요.
보국문 등산로 입구에 있는 갤러리 아트 세빈은 명절에도 문을 열었지만
아쉽게도 예약 관람만 가능하다길래 포기.
에어건으로 흙먼지를 탈탈 털고
대진여객 차고지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110A번 버스를 타고
북한산보국문역에 내리...지 않고 조금 더 가서
정릉시장에 왔습니다.
은혜감자탕이라는 식당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
명절이라 문을 안 열었네요.
식사는 수원에서 하기로 하고
정릉천을 따라 걷다
분위기 좋아 보이는 카페에 들러
경치 구경 대신 고양이 사진만 구경하다
커피를 챙기고
북한산보국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수원으로 이동,
반나절이 걸린 이날의 등산을 마무리했습니다.
ps. 수원에 오니 배가 너무 고파서
성균관대 근처에 있는 일식 라멘집 키와마루아지에 왔습니다.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한 매운 라멘인 극라면을 주문했는데
1단계로 주문했는데도 미칠 듯이 맵네요...
● 319. 지축역 - 북한산, 북한산성, 북한동 ● 북한산보국문역 - 북한산 입구만 찍고 유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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