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와
토요코인 대전정부청사점에서 하룻밤을 자고
6시에 일어나 6시 반부터 제공되는 조식을 먹습니다.
한일 양국 토요코인에서 숙박하면 응모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길래 이 이벤트도 신청.
다시 차를 몰고 남쪽으로 내려와
광주광역시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왔습니다.
2호선 지하철에 붙어 있던 광고를 우연히 보고서
막연히 이 전시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날씨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광주까지 왔네요.
전시명이 디어 바바뇨냐(Dear Baba-Nyonya)로 상당히 특이한데요.
오래전부터 중국을 떠나 세계로 뻗어나간 화교들은 현지에 정착하며 현지사람과 혼인을 맺었는데
중국계 남성과 말레이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를 바바, 여자를 뇨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저는 오래전 봤던 전시 때문에 바바, 뇨냐보다는 페라나칸/프라나칸(peranakan)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만.
아무튼 바바와 뇨냐의 이름을 붙인 이 전시에서는
바다를 통해 다른 문화권과 교류를 이어오며 혼합문화를 만들어낸 아시아의 해양도시에 집중해
이들의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을 전시하네요.
아시아에 있는 수많은 항구 중 이 전시에서 주목한 도시는 3곳.
인도 코치(코친), 말레이시아 말라카(믈라카), 중국 취안저우입니다.
가장 먼저 다루는 도시는 인도 코치.
영어 명칭인 코친으로도 알려진 인도 남부 해안 도시는
향신료를 찾는 유럽 사람들이 상당히 이른 시기 진출했고
포르투갈이 코치를 식민지화하면서 16세기부터 유럽의 영향력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바스쿠 다 가마의 무덤이 있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비롯해서
마탄체리 궁전 등의 유럽 양식 건물이 세워졌는데
포르투갈이 20세기 중반까지 식민지로 삼았던 고아와는 다르게
코치는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지배자가 바뀌면서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곳이 되었습니다.
유럽인의 시작에서 본격적인 해양 교류를 시작한 첫 아시아 거점이 이곳이기에
인도의 코치를 첫 번째 테마로 고른 것 같네요.
2번째 도시는 말라카 해협이라는 지역명으로 잘 알려진 말레이시아 말라카.
명나라 영락제의 명을 받고 떠난 정화의 대원정 이래로
중국과 인도 사이의 중개무역 거점으로서 큰 번성을 이뤘던 곳입니다.
특히 말라카에 거점을 잡은 수많은 중국 화교들이 현지인과 혼인을 맺으면서
페라나칸(프라나칸)이라는 새로운 공동체와 문화가 탄생했고
이들의 후손인 바바와 뇨냐로부터 이번 전시의 이름을 따왔으니
어떻게 보면 이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세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시 자체로만 봐도
말레이인과 페라나칸, 그리고 현지인과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 중인 화교가 한데 섞여
도시 전체가 200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니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곳이고.
마지막 도시는 중국 취안저우.
당나라 말기부터 송나라를 거쳐 원나라에 이르기까지 무역항으로 번성했던 곳으로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는 물론 동시대의 아랍인 탐험가 이븐 바투타도
'자이툰'이라는 명칭으로 취안저우를 동방 제일의 무역항이라고 자신의 저서에서 이 도시를 평했다고 하네요.
비록 샤먼과 푸저우에 밀려 도시의 영향력은 전성기에 비하면 작지만
해상교역로의 기종점 도시답게 청진사(알 아샤브 모스크)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다는 흔적이 잘 남아있어
2021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어릴 때 대항해시대를 너무 재미있게 해서 그런지
지금도 해상 교역을 생각하면 실제 역사와는 조금 많이 다른 듯한 낭만이 넘치는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 연장선에서 이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신비한 분위기를 내는 전시, 재미있게 관람했네요.
340km를 달려 광주까지 내려왔으니
전시 하나만 보고 가기는 참 아쉽죠.
그러니 박물관으로 넘어와
다른 기획전도 둘러보도록 하죠.
무슬림 여성들이 두르는 히잡에 대해 살펴보는 전시 '살람, 히잡'이 열린 기획전시실로 오니
먼저 책 받침대에 놓인 이슬람교의 경전 쿠란을 통해
히잡이 무슬림 여성의 상징이 된 계기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내문에 적힌 단어 '꾸란'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을 집필할 수 있을 정도로
이슬람교의 경전을 어떻게 한국어로 적을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복잡한 논의가 있어왔는데
이 전시에서 경전을 한국어로 표기하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고
경전을 보니 여러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베일'에 대해 적은 구절이 나오네요.
경전에 적힌 저 문구때문에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두르는 것이 당연하게 됐고
이란에서는 히잡 착용을 법으로 강제해 여성을 탄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프랑스에서는 히잡 금지법을 제정해 무슬림들이 히잡을 두를 자유를 달라고 하니
단순히 무슬림 여성의 복장이라고 정의하기엔 너무나도 복잡한 이야기를 담은 복장이 돼버렸습니다.
전시 공간이 좁아서 그런지 전시를 통해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전시물보다는 동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것 같은데
모든 동영상을 감상할 시간은 없으니 전시 관람은 여기까지.
또 다른 전시 공간을 찾아 걸어가니 천일야화에 대한 전시가 보이네요.
벽에 붙은 안내문을 읽어보면
전시를 보는 주된 대상을 어린이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정작 어른이 다 되도록 천일야화를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어서
어른이의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시를 보고 나니 한번 완역본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워낙 오래전에 책으로 정리됐던 이야기라서 판본도 다양할 테니
막상 어떤 책을 집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네요.
전시 관람을 마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떠나려니
슬슬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근처에 있는 국밥집으로 갑니다.
행복한 담벼락, 줄여서 행복담이라는 이름의 식당인데
오래된 한옥을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해 사람들이 많이 올 법하네요.
하지만 이 식당이 이름세를 날린 데에는 건물 외관보다도 파는 음식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것 같은데
주력 메뉴가 다름 아닌 크림순대국밥입니다.
비주얼을 봐도 대체 이게 무슨 맛이 날까 싶을 정도로 괴상한데
이상하게 인터넷상에서 평가가 좋아서 와봤거든요.
사골 국물에 크림을 넣어서 느끼한 맛이 폭발할 것처럼 생겼는데
먹어보니 의외로 느끼한 맛은 덜하고 크림소스 스파게티(카르보나라)를 먹는 듯한 맛이라서
이게 대체 왜 맛있지 하며 머릿속을 물음표로 가득 채우며 뚝배기를 비우고
식당에서 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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