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에 가기 위해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왔습니다.
실제로는 수색역이 더 가깝긴 한데 철도를 가로질러야 해서
수색역보다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을 이용하는게 좀 더 편합니다.
9번 출구 건너편에서 버스를 타고
MBC 정류장에 내려
한국영상자료원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는 영화 도서관격인 시네마테크와 한국영화박물관이 있는데,
지난 번에 남양주종합촬영소에 있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난 뒤 여기가 생각나서 박물관을 보러 방문했습니다.
1960년작 영화 '하녀' 감독인 김기영 감독 기념전이 열리고 있는데, 일단 상설전시실부터 들어가 봅니다.
우선 서양에서의 영화 등장 시기에 대해 소개한 뒤
조선에 '활동사진'이 건너오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미국 여행가 버튼 홈즈가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서대문 주변 풍경을 담은 영상을 찍은 것을 소개하면서
1903년 활동사진이 극장을 통해 대중에 공개 상영된 것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영화 제작은 일제 강점기 들어서 진행되는데,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사람을 꼽자면 나운규 감독을 고를 수 있습니다.
나운규 감독은 한국 무성영화 '아리랑'을 제작한 감독입니다.
3.1 운동 당시의 충격으로 미쳐버린 주인공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참상을 다룬 작품으로
당시 기준으로 크게 흥행해 일본 본토에도 상영됐다고 합니다.
한국 영화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필름이 발견되지 않고 있죠.
광복 이후 작품 중 처음으로 다뤄지는 작품은 '자유부인'입니다.
1654년 신문에 연재된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을 원작으로 1956년 상영된 영화로
대학 교수 부인의 불륜과 미망인을 다룬 작품입니다.
오늘날 소위 막장으로 불리는 드라마나 영화와 비교해보면 단순히 댄스홀에서 다른 남자와 춤을 춘 묘사 정도만 나오지만
언론에서 '춤바람'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할 정도로 소설이든 영화든 당시에는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이어서 과거 극장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지금은 영화가 전부 디지털화돼 전국에 동시 배포하는 게 쉬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필름 제작비도 비싸고 필름을 배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극장이 신작 영화를 개봉하는 개봉관과
개봉관에서 상영이 끝난 영화 필름을 받아 상영하는 재상영관 또는 재개봉관 등으로 구분됐습니다.
여기에는 외화 상영 제한도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은 스크린쿼터제와 같이 상영관 기준으로 제한을 하는 반면
과거에는 외화 필름 인쇄 수를 제한해서 전국에 있는 모든 극장 수만큼 필름을 제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외화를 우선 상영관에서 튼 다음 재개봉관에서 튼 것이죠.
이런 재개봉관은 90년대 초반 인쇄 제한 규정이 철폐되고 극장이 멀티플렉스 체제로 전환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안내문 주변에는 과거에 있던 서울 시내 주요 극장 모형이 놓여 있습니다.
그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극장은 충무로에 있는 대한극장 하나뿐이네요.
이어서 7~80년대 제작된 영화 대본이 여럿 전시되고 있습니다.
대본 앞에 죄다 검열됐다는 표시가 찍혀 있는게 눈에 띄네요.
박정희 정권은 1962년 1월 영화법을 신설해 영화 사전심의(당시에는 상영허가)를 명문화했고
5차 개헌 때 헌법 조문에 영화와 연예에 대한 검열을 집어넣었을 정도로 영화를 규제했죠.
신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소위 3S정책이 진행됐지만
규제가 완화된 것은 성적 검열이었고 정치적 소재 탄압은 지속됐습니다.
사전심의 폐지는 민주화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심의와 관련된 각종 제도를 위헌 판결하면서 사라지게 됐죠.
1990년대 들어서 기술의 변화는 영화 산업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비디오 시장과 케이블 방송이 확대되면서 극장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그 많은 비디오를 집에서 다 사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영화 비디오를 빌려주는 대여점이 우후죽순 들어섰습니다.
반납받은 비디오 테이프를 빨리 감기 위해 위의 자동차 모양 기계를 여러 개 두고 비디오를 관리했죠.
이후 영상 기록, 보관 매체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디오 테이프는 DVD가 되었고,
DVD는 블루레이 디스크로 대체되나 했는데 정작 블루레이는 영화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남았고
DVD는 유튜브, 넷플릭스, 훌루 같은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나 IPTV같은 VOD 서비스가 대체하고 있네요.
이어서 지금은 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필름 상영기나
영화 OST, 도서와 같은 파생 작품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건 영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보여주는 조에트로프나 프락시노스코프같은 도구입니다.
그 옆에는 애니메이션 '천년 여우 여우비'에 나온 캐릭터를 이용한 대형 조에트로프가 놓여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계속 깜빡거리면서 잔상이 남아 마치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죠.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셀 에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쓰인 스탠드도 있네요.
기증품 전시가 이어집니다.
작년 개봉해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택시운전사 제작진이 기증한 영화 소품이 있네요.
영화인들이 사용한 각종 도구도 있고,
수상한 각종 트로피도 놓여 있습니다.
전시전 끝에는 필름 드럼을 보여주면서
영화를 수집, 보관하는 시네마테크로서의 역할을 하는 한국영상자료원의 임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이외에도
종로3가 서울극장에 세들어 있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는데
한국영상자료원이 영화 보존, 복원 업무를 좀 더 중요시한다면
서울아트시네마는 기획전을 통해 영화를 대중에 공개하는 상영 엽무를 좀 더 중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김기영 감독 20주기 기념전이 열린 기획전시실에 왔습니다.
그가 만든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거나 기존 작품을 재해석해서 만들었는데
특유의 그로테스크함 덕분에 열광하는 영화광이 제법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그의 팬으로 알려져 있는데
박찬욱 감독은 2014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매한 하녀 블루레이에 코멘터리로 참가했고,
봉준호 감독은 2010년 발해된 하녀 DVD에 코멘터리로 참가했을 정도죠.
이어서 김기영 감독 영화의 장면을 활용한 작품이나
영화 장면을 재현한 방이 나옵니다.
작품을 영사기로 보여주는 방도 있고,
작품 내 한 장면을 잘라 보여주는 방도 있습니다.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이야기로만 남아 있는 작품도 여럿 보이네요.
박물관 전시를 다 보고 나오니 지하에 있는 시네마테크가 보입니다.
한동안 상업영화만 봐서 소위 예술영화로 불리는 영화를 못 본지 좀 됐는데
영화를 보고 가기엔 시간이 좀 애매하네요.
아쉽지만 시네마테크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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