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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여행/짧은 나들이

늦가을에 창덕궁 후원 관람 (2016.11.23)



단풍이 슬슬 떨어질 무렵, 창덕궁 후원 관람을 예약해 창덕궁을 다녀왔습니다.


입장권에는 다른 고궁과 마찬가지로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이 실렸네요.





유난히 날씨가 추워 예약을 취소할까 고민을 했는데


조만간 단풍이 다 질 테니 그전에 후원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창덕궁에 도착했습니다.





창덕궁 입구를 지나니 요런 이벤트를 하고 있네요. 11월 23일 딱 하루만 응모를 하나 봅니다.





창덕궁 정전 인정전입니다. 가장 많은 조선 임금들이 이용한 정전이기도 하죠.





정전에 왔으니 어좌도 찍어봤습니다.


천장에 있을 용은 아쉽게도 각도상 안 보이네요.





겉은 한옥 건물이지만 속은 서양식 인테리어를 한 희정당입니다.


심지어 건물 앞에는 호텔처럼 자동차 승하차를 위한 현관이 있죠.


이게 다 1917년 일어난 대화재 때문에...





왕비의 침전 대조전입니다.


이곳 역시 1917년 대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구하면서 내부를 서양식으로 바꿨다는군요.





안에는 순정효황후 윤씨가 실제로 사용한 가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경훈각 뒤편에 있는 계단식 정원입니다.


궁궐 밖을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왕비를 위해 대조전 근처에 요런 정원을 만들었다는군요.


또 비가 많이 올 때 토사가 쓸려오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있다고 합니다.





단청을 칠하지 않은 것이 눈에 띄는 낙선재입니다.


원래 헌종이 후궁 김씨를 위해 지은 건물인데


헌종은 이 건물이 지어진 지 1년 만에 죽는 바람에 정작 후궁 김씨는 낙선재에서 오래 살지 못했죠.


그 외에도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정확히는 낙선재가 아니라 수강재) 등


대한제국 황실 가족이 마지막까지 거주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요건 낙선재로 들어가는 문 '장락문' 현판입니다.


현판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안 가졌는데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현판이 흥선대원군이 쓴 글씨라는군요.


여기까지 관람을 마치고 후원 관람을 위해 이동했습니다.





창덕궁 후원 입장권은 창덕궁 티켓 용지에 글자만 바꿔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티켓 위에 색연필을 칠하지 않고 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창덕궁 입장권과의 구분을 위해서 무조건 칠해야 한다고 하네요.





여기가 후원 입구입니다.


왼쪽으로 가면 후원, 오른쪽으로 가면 창경궁이죠.


창경궁으로 가기 위해서는 입구 오른쪽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면 됩니다.





창덕궁 후원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 이외에는 들어가는 것이 제한되었다고 해서 금원, 창덕궁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원,


그리고 가장 유명한 별칭인 비원이 있죠.


비원은 원래 대한제국 시절 창덕궁 후원을 관리하던 기관 이름이라고 합니다.


시기가 시기다 보니 일제의 잔재가 아니냐는 설도 있는데 따지고 보면 일제와는 무관하다고 하네요.


하지만 과거 사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명칭이 후원이기에 공식 명칭을 후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 며칠간 바람이 많이 불어 단풍을 제대로 보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아직 많은 나무들이 색을 뽐내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관람한 곳은 부용지입니다.


정조가 정자 위에서 낚시를 즐기기도 하고 신하들과 함께 뱃놀이를 즐겼다고 하는군요.


또 신하들에게 시 짓기 시험을 시켜


제시간에 시를 못 지으면 연못 가운데 있는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고 합니다.





연못 옆에 위치한 주합루입니다.


이곳 1층이 바로 규장각이었다네요.


주합루로 들어가는 문이 세 문으로 이뤄졌는데, 가운데 문은 왕이, 양옆 문은 신하가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 문 이름이 어수문인데, 수어지교에서 따와 왕과 신하의 관계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놓고 있습니다.





부용지 동편에 있는 영화당은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개최하던 곳입니다.


정조가 쏜 화살 50발 중 49발을 맞추고 남은 화살은 일부러 빗맞췄다는 일화가 벌어진 곳도 이곳이죠.





애련정이라는 정자에 왔습니다.


흐린 물에서도 화려하게 꽃을 피는 연꽃을 좋아해서 지은 이름이라는데


지금은 가을이라 연꽃을 정리했고 전각도 보수공사 중이라 그다지 볼게 없습니다.





애련정 맞은편에 있는 기오헌과 운경거입니다.


이 중 기오헌은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시절 독서를 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다음 관람장소인 관람지로 이동했습니다.


창덕궁의 모습을 그린 그림 동궐도에 그려진 연못은 네모난 연못 두 개와 동그란 연못 하나였는데


이후 연못을 뜯어 고친 건지 지금은 한반도 모양의 큰 연못 하나가 남아있죠.


사진 왼쪽에 있는 정자 관람정은 한국 궁궐에서 보기 드문 부채꼴 모양 정자라고 합니다.





요건 존덕정 천장에 그려진 용입니다.


다른 정자와는 다르게 천장에 용이 그려져 있다는 것은 이곳이 왕을 위한 정자라는 것을 의미하겠죠.


또 정자 안에는 정조가 직접 쓴  만천명월주인옹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모든 하천에 달이 뜨지만 그 달은 하나고 곧 나(왕)이라는 말로, 강한 왕권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존덕정 뒤에 있는 연못에 은행잎이 가득해서 찍어봤습니다.





다음 관람장소인 옥류천 일대로 이동했습니다.





옥류천 한가운데 위치한 소요암입니다.


숙종이 이곳에서 보이는 경치의 아름다움을 담은 시를 바위에 새겼고,


그 아래 인조가 옥류천이라는 글자를 새겼죠.





이곳은 궁궐 건물 중 유일하게 초가지붕을 한 청의정입니다.


청의정 주변은 특이하게 논이 있는데


과거에는 왕이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직접 벼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원래는 동대문 일대에서 농사를 했는데


지금은 문화재청에서 이곳에 벼를 재배한 뒤 수확하고 있다고 하네요.





여기서 나온 볏짚으로 지붕을 갈아야 하는데


이곳 벼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다른 곳에서 볏짚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후원 마지막 관람장소인 연경당 사랑채입니다.


사대부가를 모방해서 지은 건물이지만 명색이 왕가의 건물이니


일반적인 사대부 집의 건축 한계인 99칸(기둥과 기둥 사이)을 넘은 120칸 규모로 지었다고 합니다.





사랑채 옆에는 서재로 쓰인 선향재가 있습니다.


지붕이 전통양식과는 달리 기와가 아니라 동판으로 되어 있는데,


서재다 보니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한 결과입니다.


또 건물을 지은 재료가 청나라풍 벽돌인 것도 눈에 띕니다.





사랑채 옆 안채를 보는 것으로 후원 관람을 마쳤습니다.





후원에서 나오는 길에 향나무를 만났습니다.


무려 750년 된 나무인데,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폭삭 주저앉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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