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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여행기/인천 1~2호선

I137. 센트럴파크역 - 인천도시역사관



송도컨벤시아에서 센트럴파크를 따라 걷다 보니 센트럴파크역까지 오게 됐습니다.





디아블로에서 웨이포인트 찍는 것마냥 역 입구에서 사진을 찍은 뒤 유턴해





인천도시역사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지만.





인천의 역사는 삼국시대 미추홀부터 시작하는데,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의 인천 역사는 인천시립박물관에서 따로 다루고 있어


여기서는 구한말 개항 이후부터 광복 이전까지의 인천 역사와


인천경제자유구역 개발 후의 인천 미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근대도시관부터 관람을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벽에 그려진 화도진도입니다.


화도진은 인천 일대에 있던 군사지역인데,


화도진을 지나면 바로 한양이라


쇄국을 내세우던 조선으로서는 개항을 요구하는 서양 세력을 막는 역할을 하는 화도진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쇄국정책을 유지할 수는 없었기에


1876년 강화도에서 일본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개항을 하게 됐고,


이어서 1882년에는 아예 화도진에서 미국과 조일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됩니다.





인천은 부산과 원산에 이어 개항장으로 지정됐습니다.


그래서 서구 문물이 다른 곳보다 빠르게 들어왔겠죠.





한가지 예를 들자면 경복궁 앞에 우정총국이 들어설 때


인천에도 우정분국이라는 우체국이 세워져 체신 업무가 이뤄졌습니다.





전화기도 이때 도입됐는데, 당시에는 telephone을 음차한 덕률풍(德律風) 등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전화(電話)라는 명칭은 아마도 일본어(でんわ, 덴와)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네요.





인천과 관련된 근대문물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한국 최초 철도 '경인선'입니다.


미국인 사업자 제임스 모스가 사업을 시작하다 중간에 일본으로 넘어가 완공된 경인선은


서울 노량진역에서 제물포역(오늘날 인천역)까지 운행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단선을 복선으로 바꾸고, 기차 대신 전철이 다니게 됐고, 중간에 역도 만들어졌지만


기본적인 선형은 지금과 다를바 없습니다.





이어서 조계에 대한 전시물이 나옵니다.


조차지의 일종인 조계지는 개항장 내 특정 구역에 외국인 전용 거주 공간을 마련한 뒤


이 지역의 행정권을 외국이 행사한 곳입니다.



조영수호통상조약



조계와 관련된 최초의 규정은 1883년 영국과 맺은 조영수호통상조약에 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영국만 조선에 조계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실제로는 다른 나라도 최혜국 대우를 들면 얼마든지 조계지를 만들 수 있었는데,



인천구일본조계약조



실제로 인천에 가장 먼저 조계지를 둔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일본입니다.



인천구화상지계장정



1883년 9월 일본이 조계를 설정했고, 1884년 3월에는 청나라도 인천에 조계를 뒀습니다.





특이한 것은 청나라가 설정한 조계지가 일본 조계지 바로 옆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두 조계지를 가르는 경계에 계단을 만들었죠.


이 계단은 지금도 인천역 근처에 남아있습니다.





조계지는 보통 한 나라가 관리하지만


각국조계라 해서 여러 나라가 동시에 관리하는 조계도 있었습니다.


좁은 조계에 일일히 공무원을 파견하는 것이 행정력 낭비라서 여러 나라 조계를 합치게 된 것이죠.


위의 조계지 지도에서 초록색으로 둘러쌓인 구역이 각국조계로

(파란색은 청국조계, 빨간색은 일본조계입니다.)


이미 조계지가 있던 청, 일본에 더해 영국, 미국, 독일 5개 나라가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을 체결하면서


행정을 신동공사라는 자치의회에서 담당했습니다.



인천에 있던 조계지는 중국에 있던 조계지와는 달리 빠르게 사라지는데,


다른 열강들이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빠르게 인정해서 조계를 유지할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14년 총독부가 주도한 부군면 통폐합 때 인천 내 조계지가 전부 폐지됐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인천에 조계는 사라졌지만 도시는 여전히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일본인 거주 지역에는 정(町)이라는 일본식 지명을 붙이고,


조선인 거주 지역에는 리(里)라는 전통 지명을 붙여 대놓고 두 지역을 차별한 것이죠.


仁川을 진센으로 부르느냐 인천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생활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일제는 개항장으로 쓰던 인천항을 이용하기 편하게 개량합니다.





조수 간만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중 갑문을 만든 것이죠.





이용하기 편해진 인천항을 통해 나른 것은 당연히 쌀이었습니다.


인천항은 한일병합 이전부터 경기도에서 생산한 쌀을 수출하는 역할을 했는데


일제강점기 이후로는 아예 항구 주변에서 쌀을 도정하거나 쌀을 가공해 술을 만드는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이어서 인천에 들어선 근대 건축물 모형이 나옵니다.





인천우체국이나 조선은행 인천지점처럼 관에서 세운 건물도 있고,





의양풍 건물이나 인천공화당 건물처럼 민간에서 세운 건물도 있네요.





다른 건물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인천우체국만큼은 인천중동우체국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다음 전시실로 이동할 때 홍예문 모형을 지나갑니다.


홍예문은 일본 조계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지어진 다리로


지금은 도로 위 육교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군수공업도시로 변한 인천의 모습이 나옵니다.


1931년 만주사변부터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까지 일제는 쉬지 않고 전쟁을 벌였는데


일본 본토만으로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보급하는데 한계가 있어


각종 수송 시설이 잘 갖춰진 인천을 군수공업도시로 바꾸게 됩니다.





공장이 들어서면서 공장에 일할 노동자가 거주할 주택을 마련하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군수공장에서 일하면 징병을 피할 수 있었기에 많은 노동자들이 군수공장에 몰려들었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공장 주변에 영단주택, 부영주택, 사택 등 각종 주택이 들어섰죠.





또 군량미를 빠르게 보급하기 위해 1937년 수원에서 인천을 잇는 수인선을 개통했습니다.


수인선은 경부선과는 달리 선로간 폭이 좁은 협궤로 개통했는데,


이것은 공사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여주에서 수원을 잇는 수려선이 협궤 노선이라


여주, 이천에서 인천까지 바로 쌀을 옮기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1930~40년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이 나옵니다.





내선일체, 일선동조론을 내세우면서 신사참배와 궁성요배를 강요했고,


무기 생산을 위해 놋그릇을 전부 공출하면서 대신 사발을 배급해 쓰게 했죠.





그 옆에는 궁성요배, 신사참배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 탑이 놓여 있습니다.



인천도시역사관에서는 개항 이후부터 광복 이전까지의 인천을


여러 국가의 조계지로 인해 다양성이 공존하던 도시에서


일제의 강요로 획일화된 도시로 바뀌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2층 전시실 이름이 인천도시계획전시실인데, 인천이 원하는 도시 계획이 어떤 방향인지 감이 오네요.





그런 인천의 도시계획을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눠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영종도입니다.


인천국제공항이 존재감이 강하지만 영종하늘도시와 같은 이런저런 개발 계획이 진행된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있는 인천국제공항 모형은 2터미널이 개장한 지금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데,


공항 터미널은 하나만 만들고, 탑승동 여러 개를 나란히 지어 승객을 수용하는 것이


원래 확장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공항 수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와


탑승동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고 1터미널 반대편에 2터미널을 짓게 된 것이죠.


1터미널과 2터미널 사이 거리가 상당히 먼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영종도와 송도를 잇는 인천대교를 지나





인천 본토 모형으로 이동합니다.



송도국제도시



구도심부터 신도시, 인천경제자유구역 등 인천의 다양한 지역을 한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 배가 드나드는 인천항과 월미도,





아직도 모든 개발이 완료되려면 한참 남은 청라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 옆 검단신도시,





서울 가는 길목이면서 자동차 공장이 있어 크게 발전한 부평구,





그리고 남동인더스파크(남동공단)와 논현지구가 있는 남동구 등이 보이네요.





인천을 구성하는 또다른 지역, 강화도 모형도 있습니다.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은 강화도는 도시개발보다는 각종 관광자원을 활용한 개발을 하려는듯


각종 문화재가 표시돼 있습니다.





대몽항쟁기 왕궁이 있던 고려궁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전투를 벌인 초지진,




단군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 등이 눈에 들어옵니다.





공간의 한계 때문인지 서해5도가 포함된 옹진군은 모형이 따로 없네요.





3층으로 올라가니 2층에서 본 것과 거의 똑같은 모형이 또 나옵니다.





3층 전시실 이름은 인천경제자유구역전시실인데요.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영종, 청라, 송도 세 지역을 따로 다루고 있습니다.





세 지역에 계획된 개발 사업이 모두 완료됐을 때





도시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죠.





청사진은 기가 막히게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이런저런 이유로 진행되지 못한 사업이 많습니다.


위의 사진은 영종도 북서쪽에 있는 운북복합레저단지인데,


최초 계획은 2014년 완료였지만 현실은...


여담으로 제가 군복무를 한 곳이 이 동네라 기념삼아 찍어봤습니다.


그때도 공사한다 안한다 말이 많았는데...





모든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니 성냥을 주제로 한 전시가 보입니다.


흥미있는 소재인데 아쉽게도 아직 전시가 시작되지 않았나 보네요.




수도권 전철 여행기

I136. 인천대입구역

펫쇼 보러 왔다 공원 구경

I137. 센트럴파크역

I138. 국제업무지구역

송도 전망 구경

 ●인천광역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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