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성수지선 용두역에 왔습니다.
용두역 개찰구는 열차 타는 곳과 딱 붙어있는데 이미 지하철 선로가 있던 곳에 역을 새로 지었기 때문이죠.
5번 출구로 나와
고산자교를 건너 청계천을 따라 걸어
청계천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길 건너 박물관 부속 건물인 청계천 판자집 체험관이 있는데 여긴 조금 있다가 방문하기로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
상설전시실부터 관람을 시작합니다.
상설전시실은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청계천 일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서울 한복판을 지나는 강이 한강이지만
조선 수도 한양은 서울보다 영역이 작았기에 한양 한복판을 지나는 강 역할을 청계천이 했죠.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보여주는 모형과
청계천 일대 있던 다양한 시장 위치를 보여주면서
조선시대 청계천 주변 생활상을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화기에는 지식인들이 모이는 장소였다고 하네요.
일제강점기 들어서 청계천 북쪽과 남쪽은 전혀 다른 도시 모습이 만들어집니다.
일본인들은 충무로(혼마치)에서 명동(메이지쵸)에 이르는 청계천 남쪽에 주로 살았기에
남촌은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선 번화가가 된 반면
북촌은 옛 모습 그대로 낙후된 공간이 되면서 두 지역 간 격차가 벌어졌죠.
청계천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고 각종 공장이 들어서면서 청계천은 빠르게 오염됩니다.
당시에는 안전시설이 미비해서 제방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도 많았죠.
그래서 1920년대부터 청계천을 복개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일제는 1934년 대경성계획을 수립하면서 청계천을 복개하기 위한 구상을 세웠습니다.
청계천을 복개한 뒤 위에는 전차를, 아래에는 지하철을 놓는다는 계획이 세워졌으나
중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연달아 전쟁을 일으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청계천 복개는 불가능했죠.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해외에 있던 한인들이 서울로 귀국하고,
이북에서 소련과 김일성을 피해 월남한 사람들도 서울에 정착했습니다.
6.25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도 서울에 정착했죠.
이러니 서울 인구는 급격히 늘어나 주거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고
'서울은 만원이다'와 같은 소설도 출판됐습니다.
집이 없으니 언덕이나 하천에 판잣집과 같은 무허가 건물이 대거 늘어났는데
청계천도 예외는 아니었죠.
사람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노점시장이 형성됐는데
이 천변 도깨비 시장은 평화시장이나 황학동 벼룩시장 등의 기원이 됐습니다.
전후복구에 여념이 없던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에 들어서
정부는 판자촌에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위생, 교통, 범죄 등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허가건물을 허물고
판자촌에 살던 주민을 도시 외곽에 건설한 대단지에 이주시킨 것이죠.
이 과정에서 광주대단지사건이 일어났는데,
제대로 도시를 만들지도 않은 채로 도시 빈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결과
걷잡을 수 없는 투쟁일 일어나 정부에서 부랴부랴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사건입니다.
도시계획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도시화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1958년부터 청계천 복개 공사를 시작해 1961년 공사가 끝나자
'청계로 스카이웨이'라는 이름으로 고가도로를 건설할 계획을 세워
1969년 청계고가가 완성됐습니다.
복개도로 주변에는 천변시장 대신 상가 건물에 입점한 시장이 들어섰죠.
용산 전자상가가 들어서기 전까지 각종 전자부품을 취급한 세운상가가 세워진 때도 이때쯤입니다.
끊임없이 개발에 매달리던 청계천 주변 모습은 1990년대 들어서 크게 바뀝니다.
청계천의 역사, 생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복개도로와 고가도로가 노후화돼 보수가 시급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현 상태를 유지, 보수할 것인가 고가도로를 철거한 뒤 청계천을 복원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다
청계천 복원을 공약을 내세운 이명박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청계천 복원을 위한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청계천 복원은 시작부터 주변 상인들의 큰 저항을 받았습니다.
청게천 주변에 점포 수만 6만여 개였고, 이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이 21만 명이 넘었습니다.
노점상도 1천개나 있었으니 이들은 상권 위축을 우려해 청계천 복원 사업에 반대했죠.
협상 결과 청계천 상인들은 문정동에 대규모 유통단지를 조성해 이주시키기로 했고
노점상은 동대문운동장에 풍물시장을 만들어 수용하기로 했죠.
정작 문정동에 지어진 가든 파이브는 파행 운영하다
NC백화점과 현대시티몰이 입점해서 본래 계획과 동떨어진 쇼핑몰이 됐고
동대문운동장은 후임 시장인 오세훈 시장 때 철거돼 풍물시장이 신설동으로 이전됐으니
상인 대책이 제대로 이행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교통 문제도 복원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였는데요.
청계천 통행량 자체를 줄이기 위해 버스 노선체계를 정비하고
시내버스 - 지하철 간 환승제를 도입하면서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했습니다.
2003년 7월 1일 0시부터 청계고가 진입을 차단하면서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이 복원 과정을 모형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요.
고가도로 구조물을 철거하고,
수표교, 광통교, 오간수문터 일대 발굴조사를 진행해
복개도로에 가려 숨어 있던 유물을 발굴한 뒤
하천 복원 공사에 착수해
2005년 10월 1일 지금의 청계천이 됐습니다.
청계천은 서울의 랜드마크가 됐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식처가 됐지만
복원 결과를 두고 비판도 많습니다.
자연천이 아닌 인공하천으로 만들어진 근본적인 한계,
복원 계획과 달라진 청계천 다리 복원, 상인 이주 정책 실패 등
다양한 관점에서 청계천 복원 사업을 비판하고 있죠.
2014년 2월 청계천 2050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현재 제기되는 청계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단계별 과제를 마련했으니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야겠습니다.
상설전시를 다 보고 특별전시 '메이드 인 청계천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를 보러 특별전시실로 들어갑니다.
세운상가 주변 청계천 3~4가 일대에 들어선 각종 전자상가에서 거래된 각종 물건을 통해
당시의 대중문화가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죠.
지금보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불법 복제품 '해적판'이 이 일대에서 거래됐는데
그중에서도 LP 해적판을 부르는 빽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LP를 그대로 본따서 빽판을 만드는가 하면
라디오 방송에서 쓰인 편집음반을 빽판으로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긴급조치가 빽판 제작에 기여하기도 했는데요.
정부에서 대중가요를 검열하면서 금지곡이 무더기로 늘어나
이 금지곡을 듣기 위해 빽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죠.
전시실 한쪽에는 빽판 제작 과정을 설명하면서
당시 빽판 감상 문화를 느껴볼 수 있게 턴테이블을 마련해놨습니다.
세운상가는 성인물이 유통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빨간책으로 부르는 성인잡지를 팔았는데,
중고등학생에게 빨간책을 강매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전시물로 전시실에 빨간 방이 하나 있는데
좁은 틈새로 안을 보면 플레이보이, 허슬러 등 성인잡지와 각종 비디오가 가득한 방이 보입니다.
오락실과 게임기에 대한 전시물도 있습니다.
오락실에서 사용하던 게임기 기판 대부분이 세운상가에서 만든 물건이었다고 하네요.
당시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게 게임기가 한 대 놓여 있습니다.
어째 이것도 저작권따위 엿바꿔먹은 복제품 기판을 쓰는 것 같은데...
모처럼 게임을 해볼까 해서 도돈파치를 골라 플레이를 했는데
생각보다 게임기 소리가 너무 커 오래 못하고 중간에 끝냈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길 건너 청계천 판자집 체험관에 왔습니다.
옛날에 쓰던 물건이 잔뜩 전시돼 있네요.
다방에서 LP판을 트는 뮤직박스,
다방에서 커피를 담던 보온병,
지금은 한국에서 만드는 공장이 사라진 성냥,
각종 불량식품과 생활용품,
집에서 쓰던 이불,
만화방 한켠을 차지한 책장,
옛날 교복과 교련복,
옛날 영화 포스터 등을 보고 나왔습니다.
211-3. 용두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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