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마바라역으로 이동해

음료수를 마시려고 자판기로 갔더니
의외로 자판기에서는 교통카드를 쓸 수 있습니다.

교통카드지만 버스나 철도에서는 교통카드를 못 쓰고 자판기에서만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어째 영...

아무튼 음료수를 마신 뒤에

기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탈 건데요.

분명 로마자가 병기돼 있지만 참 눈에 안 들어오는 노선도는 포기하고

운젠 세이운소(青雲荘)로 가는 버스 시간표만 체크한 뒤

8시 1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밖에서 기다려보죠.

버스 기사가 실수로 외부 LED 조작을 하지 않아 수많은 승객들을 낚은 버스에 올라타

시마바라항을 거쳐

도로켄세츠키넨히마에(道路建設記念碑前)라는 엄청 긴 버스 정류장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고

길을 건너면 바로 보이는

이 비석에는 관심이 없으니

저 멀리 보이는 운젠산을 보면서

한참을 걸어갑니다.

제주도보다 1년 앞선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시마바라반도 운젠화산지대에는

구 오노코바 소학교 재해 교사(旧大野木場小学校被災校舎)라는 시설이 있는데요.

이름대로 예전에는 소학교(초등학교) 건물로 쓰던 건물입니다.

1991년 6월 3일 운젠산이 대규모 화새류를 동반한 분화가 일어나는 바람에

소학교를 비롯해 이 일대가 쑥대밭이 되어

지금은 폐건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모조리 깨진 유리창과 휘어진 창틀이

분화 당시의 충격을 지금까지 말해주는 듯하네요.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운젠 분화에 대해 기념하기 위해

학교 건물 바로 옆 국토교통성 오노키바 감시소에

오노키바 사방 미래관(大野木場砂防みらい館)이라는 전시실이 있으니

안으로 들어가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알아봅시다.

1990년 11월 17일부터 조금씩 분화가 일어났던 운젠산에서
본격적인 분화 조짐이 일어나자 정부에서는 피난을 권고했는데

하라는 대피는 안 하고 취재를 하겠다고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오는 데다
주민들마저 과한 통제가 생활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민원을 넣어
제대로 된 피난은 사실상 없었고
이것이 결국 재앙을 초래했습니다.

운젠산에서 분출한 화산쇄설류가 빠르게 산비탈을 따라 내려가 마을을 덮쳤는데

당시에는 사람들이 화쇄류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단순히 차로 도망치면 될 줄 알았거나 주위가 뜨거워져 화재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대피를 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운젠 분화로 인해 목숨을 잃었는데요.

제대로 대피만 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참사고
그중에서도 보도 경쟁 때문에 지역 주민에게 민폐만 끼치다 죽어버린 기자 16명에 대해서는
온갖 비난이 쏟아졌고 지금까지도 비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화 이후에도 하늘에서 취재하겠답시고 육상자위대 헬기를 얻어 탔다가
화산재로 인해 헬리콥터 엔진에 문제가 생겨 불시착하는 등 욕먹을 짓만 골라 했으니...

시간이 한참 지난 2025년 지금에 이르러서도
종교에 심취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의 만화를 마치 예언서인 양 떠받들거나
후지산에서 1,000km 떨어진, 후지산과는 전혀 관련 없는 토카라 열도에서 일어난 군발지진을 두고
후지산 폭발의 전조라는 둥 과학적 근거 없이 영상을 만드는 지금의 언론 세태를 보면
딱히 나아진 것은 없네요.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의 취재경쟁으로 인해

화산쇄설류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얼마나 위험한지 영상으로 생생히 담기는 바람에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게 됐으니 이걸 좋다고 봐야 할지 참...

대재해 이후 뒤늦게 만든 방재 시설 중 특이한 것으로
지도에는 하천처럼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하천이 아닌 미즈나시가와(水無川)가 있습니다.

한자를 그대로 풀어쓰자면 물이 없는 강이라는 뜻인데

인공적으로 화쇄류가 흘러갈 길을 만들고
그 길 곳곳에 둑을 만들어 속도를 줄여 피해를 줄이도록 한 것이죠.

미즈나시가와를 만들면서

마을이 크게 두 동강이 나버렸지만

마을 단절을 논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네요.

이외에 운젠 분화로 운젠산의 새로운 최고봉이 된 용암돔 '헤이세이 신산'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여러 암석을 보고

전시실에서 나오니
길 건너에 후카에 매장 문화재·분화 재해 자료관이라는 작은 시립박물관이 있네요.

지금 있는 이 후카에(深江)라는 동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재해 기념에는 관심이 있으니

입장료 200엔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

여러 토기 조각과




처참하게 녹아내린 트럭으로 대표되는





운젠 분화의 기록들을 보고

박물관 뒤에 있는

미즈하라 신사에 잠깐 들른 뒤

감시소를 떠나

바다 쪽으로 내려갑니다.
ps. 분명 운젠산에서 일어난 분화지만 피해는 시마바라시와 미나미시마바라시가 크게 입고
정작 운젠시는 피해를 거의 안 입었는데요.
지금도 운젠시는 온천 방문객과 등산객들로 관광 수입을 얻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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