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과 건물 사이 난 아주 좁은 통로.
안에 뭐가 있긴 할까 싶은 이 길을 지나 노란 대문을 지나면
정말 뜬금없게도 라멘집이 나옵니다.
커다란 간판 없이 하나모코시라는 히라가나 글씨만 써진 작은 목판을 보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가까운 자리에 착석.
점심시간이 끝날 시간이라 그런지 천천히 메뉴판을 볼까 했는데
메뉴가 단순하게 토리소바, 카에다마, 마제멘, 소보로고항 4가지뿐이고
메인 요리는 토리소바와 마제멘 2가지라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토리소바와 소보로고항을 1개씩 주문.
닭다리살과 다시마를 잘게 썰어 밥 위에 얹고
참기름 베이스의 소스를 부은 덮밥 소보록고항이 먼저 나와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려는 순간 토리소바가 나와 밥은 잠시 옆으로.
닭을 쓴 라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토리파이탄인데
뽀얀 흰 국물이 특징인 토리파이탄과는 다르게 국물이 맑은 갈색이네요.
색이 진한 만큼 맛도 진하게 느껴집니다.
푹 익히지 않고 씹는 식감을 살린 면도 좋고
부드럽게 씹히는 닭가슴살 고명도 좋네요.
고소한 맛이 나는 소보로고항도 맛있게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화를 할 겸
잠시 주변을 서성이다
용산02번 마을버스를 타고
지금까지 가본 적 없는 서울 동네로 갑니다.
도착한 곳은 후암동.
해방촌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동네인데
서울에서 살아본 적도 있지만 정작 이 동네를 가보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때는 경성호국신사로 올라는 길이었던 108계단으로 이동해
계단을 오르는 대신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하게 위로 올라갑니다.
계단 끝에 해당하는 4층에 도착한 뒤
바로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보고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가며
이런저런 경치를 구경해봅니다.
언덕 구경만 하러 후암동에 온 것은 아닌데요.
이날의 목적지는 스토리지 북 앤 필름.
대형서점에서는 보기 드문 소규모 독립출판물을 주로 취급하는 이 작은 책방이
어쩌다 보니 인스타 사진 맛집이 된 것인지
석가탄신일에 백 명이 넘게 서점 문을 열었지만
그 누구도 책을 사지 않고 사진만 찍고 갔다는 하소연을 트위터에 올려
종이책을 읽지 않은 채 쌓아두기만 하던 츤도쿠 생활을 접고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한 독서가로서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자 서점에 들렀습니다.
독립서점이라고 해서 책을 오프라인으로만 파는 것이 아니기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책을 주문할 수도 있지만
책을 직접 만져보고 사는 재미는 놓칠 수 없겠죠.
책방지기의 혼잣말, 사라진 모든 것들에게 이렇게 2권을 사고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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