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긋하게 숙소에서 조식을 먹고

전날에는 어두워서 제대로 둘러보지 않은 스쿠모역으로 가봅니다.

내부를 살짝 둘러보니

열차 발차 안내 LED를 꺼두고 벽에 붙은 시각표를 참조하라는 안내문구가 좀 짜치네요.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서

이날 첫 여행지로 가는 스쿠모행 버스에 올라탑니다.

코치현에서도 꽤나 구석진 곳에 있는 동네를 다니는 시내버스인데
의외로 교통카드 단말기가 있네요.
하필이면 코치현 지역 전용 교통카드 DESUCA 단말기라서 문제지만.

갈 길이 멀기에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바다가 보일 즈음 눈을 뜨니

삿갓을 쓴 오헨로 순례자들이 버스를 타기 시작합니다.

어떤 절이 있는지 모르고 버스를 탔는데

카이노카와(貝の川) 정류장에 내린 것을 보면 절만 도는 사람이 아닌 것 같네요.

계속 달려서

요로(養老) 정류장에 도착.
시내버스 운임이 1,700엔이라니 참 살벌하죠?

버스에서 내리고

이날의 첫 여행지

존 만지로 자료관으로 갑니다.

존 만지로(존 만)라는 에도 말기 인물에 대해 조명하는 박물관인데

평범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말 그대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일본인 중 최초로 미국 땅을 밟아보고
이 경험을 살려 막부가 개항하는 데 도움을 주는 대단한 업적을 쌓은 사람이라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인물입니다.

다만 고향이 코치현 토사시미즈시라서
단순히 관심이 있다고 찾아가기에는 너무 먼 곳이라 지도에 저장만 하고 있었는데
시코쿠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입장료 440엔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내용은 다름 아닌 표류인데요.

1841년 1월 5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료들과 같이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갔던 존 만지로는
폭풍우를 만나 5일간 표류하다

극적으로 토리시마(鳥島)라는 무인도를 발견해 목숨을 건지고

섬에 자생하던 알바트로스를 사냥하고 빗물을 모아 마시며
무려 143일을 버텼습니다.

그러다 윌리엄 H. 윗필드라는 선장이 이끌던 포경선 '존 하울랜드'에 구조가 되면서
이미 표류를 겪으며 한 번 바뀌었던 존 만지로의 인생이 또 한번 바뀌게 됩니다.

당시에는 일본이 쇄국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기에
에도 막부의 허가 없이 외국인과 접선한 것을 들키게 되면 처벌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

존 만지로와 동료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 기착지인 하와이 호놀룰루에 내렸는데

배 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기술을 빠르게 배워나가는 존 만지로를 눈여겨보던 선장 윗필드가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하지 않겠냐고 권유를 했고

이에 존 만지로가 바로 가겠다고 화답해

존 하울랜드호를 타고 머나먼 항해길에 오르게 됩니다.

포경선 안에서 이런저런 일을 배우면서 생활하다

윗필드의 고향 매사추세츠 페어헤븐에 자리를 잡고 미국의 기초교육을 배운 뒤

또 다른 포경선 프랭클린호에 승선해 포경업에 종사하기도 하고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골드 러시에 참여해 귀국길에 쓸 돈을 벌기도 하면서

미국땅을 최초로 밟아본 일본인으로서 처음 할 수 있는 일이란 죄다 겪어봤네요.

이후 호놀룰루로 이동해 오래전 헤어졌던 어부 동료들과 다시 재회하고
마찬가지로 고향을 그리워하던 동료들과 함께 류큐 왕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류큐 왕국을 복속시켰던 일본 사츠마번(지금의 카고시마)의 관리들에게 취조를 받았지만

다행히 해외로 나간 이유가 표류라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이었다는 점을 참작받아 무죄로 풀려난 뒤
12년 만에 고향 토사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토사번으로 돌아돈 뒤에는
영주로부터 사무라이 신분을 받아 지역 학교에서 미국과 신문물을 알리는 선생으로서 활동했는데

그의 인생이 또다시 바뀌는 일이 생겼으니
바로 쿠로후네 사건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통상 요구였습니다.

함대를 끌고 와 쇄국 정책을 폐기하고 문을 열라는 미군 해군 페리 제독의 압박에 당황했던 에도 막부로서는
영어를 아는 것을 넘어 미국 경험이 있던 존 만지로가 필요했기에
그를 불러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하는 데에 필요한 제반 문서를 검토하고 번역하는 중대한 일을 그에게 맡겼고
그의 위상도 더 오르게 되죠.

단순히 영어를 배워온 것을 넘어

미국 해사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항해 전문 서적을 번역하는 데 힘썼고

에도 막부가 네덜란드로부터 산 서양식 군함 '칸린마루(咸臨丸)'를 타고
일본 최초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항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줍니다.

당연히 막부 말기 엘리트들에게도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줘서

코치현에서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해서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평범한 어부로 태어나 죽을 수도 있었던 한 사람이
너무나도 극적인 사건들을 연달아 겪으면서
나라의 정책 방향을 바꾸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존 만지로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참 좋아합니다.

다만 그의 고향이 일본 기준으로도 너무나도 시골인 시코쿠 끝자락이라서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차마 갈 엄두를 못 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오게 돼서 참 좋았습니다.

1층에 있는 전시실을 다 둘러보고 나니

2층에도 전시 공간이 있길래 올라가 봤는데요.

위에서 짧게 언급했던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를 다루는 전시물과

그가 미국 생활을 했던 도시 매사추세츠주 페어헤븐과 관련된

그리고 페어헤븐과 일본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전시물들을 보고

박물관에서 나왔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바다 건너 저곳인데요.

존 만지로 자료관은 토사시미즈시 내에서도 교통편이 답이 없는 곳이라서

아까 내렸던 요로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다음 버스는 13시 50분에야 있습니다.

버스를 기다릴 바에야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니
토사시미즈시의 버스 중심지 시미즈 플라자 팔까지 걸어가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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