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느 때와는 다르게 느긋하게 일어나

호텔 1층에서 조식으로 나눠주는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기차를 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요사이죠역 옆 철도역사파크에 있는

시코쿠 철도문화관으로 갑니다.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운영 주체가 JR이 아닌 일본 내셔널 트러스트라서 그런지

철도박물관 입장료치고는 저렴한 300엔을 내고

퇴역을 앞두고 이래저래 화제가 됐던 닥터 옐로우 종이모형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뜬금없게도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시코쿠를 달린 적 없는 신칸센 0계 전동차입니다.

일본 내에서는 물론 철도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세계 최초의 상용 고속철도 전동차기에

저 멀리 영국 요크에 있는 국립철도박물관에도 '탄환열차(Bullet Train)'라는 명칭으로
1대가 정태 보존될 정도로 가치가 있지만

시코쿠 입장에서 신칸센이라는 철도는 애증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토카이도 신칸센이 개통 후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 일본 곳곳에 신칸센을 깔아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는데
시코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부족한 인구와 수요, 혼슈에서 접근하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문제점 등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시코쿠 신칸센은 구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요.

이제는 시코쿠 신칸센으로 모자라서 리니어 신칸센까지 시코쿠로 끌고 오자는 과격한 주장도 있던데

한국만큼이나 일본도 인구 감소 단계에 진입했기에
제가 죽을 때까지 시코쿠 신칸센을 볼 수 있을지...
여담으로 여기에 신칸센 전동차가 놓인 이유는
시코쿠 철도문화관에 있는 모든 전시실을 보고 나서야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신칸센 0계 전동차에서 나와

기차 모형과

철도 종사자들의 제복을 보고

철도 연락선 '우코 연락선' 모형과 사진에 관심을 가져봅니다.

세토대교가 혼슈와 시코쿠를 이어주기 전에는 기차가 오카야마에서 타카마츠로 갈 수 없었기에
오카야마에 있는 우노역에서 타카마츠에 있는 타카마츠역까지 배로 승객을 운송했거든요.
우노(宇野)와 타카마츠(高松)를 잇는다고 해서 우코 연락선(宇高連絡船)이라고 부르던 이 항로는
1988년 세토대교가 지어지고 세토대교선이라는 철도 노선이 생기면서
다른 철도 연락선과 마찬가지로 운항을 종료하고 사라졌습니다.
마찬가지로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던 세이칸 연락선의 경우 항로도 남아있고 배도 2척이 남아있지만
우코 연락선은 항로도 사라졌고 찾아보니 배도 스크랩되거나 해외로 매각돼 아쉽네요.

고개를 돌려 다시 기차 실물에 관심을 가져보자면

DF50형 디젤 기관차가 놓여 있습니다.

1957년에 처음 만들어져서

첫 운전과 마지막 운전을 시코쿠에서 맞이한 DF50형 1호기라고 하네요.

디젤 기관차 옆을 지나면서

운전대를 슬쩍 구경해보고

이제는 한국에서는 사라졌고 일본에서도 보기 힘들어진 차내 판매 카트 뒤로 있는 계단을 올라가

운행을 멈춘 기차 대신

움직이는 기차를 보러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호빵맨(앙팡만)의 원작자 야나세 타카시가 시코쿠 출신이다 보니
JR 시코쿠에서는 호빵맨을 활용한 특별 열차를 여럿 운행하고 있고
이 열차가 이요사이죠역을 지나는 시간을 2층 전망대에 표시해두고 있습니다.

시코쿠에 들어와서 매일 기차만 죽어라 타고 있는데 정작 단 한 번도 호빵맨 열차를 못 타본 게 참...

호빵맨 열차를 보내고

1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간 뒤

시코쿠 철도문화관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육교를 건너 시코쿠 철도문화관 남관으로 이동합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궤간가변전차 프리 게이지 트레인 제2호 시험차(GCT01-200).

일본 재래선은 1,067mm 협궤, 신칸센은 1,435mm 표준궤를 사용하다 보니
신칸센 열차가 재래선으로 진입할 수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기차가 궤간을 바꿔 운행하는 궤간가변(프리 게이지) 열차를 개발하려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궤간가변 열차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곳이 바로 JR 큐슈인데

정치적인 타협물로 후쿠오카 하카타역에서 나가사키를 잇는 신칸센을 짓기로 결정했지만
풀 규격 신칸센으로 불리는 일반적인 신칸센을 짓기엔 경제성도 나오지 않고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지자체의 반발도 거세서
신칸센 선로와 재래선 선로를 모두 달릴 수 있는 궤간가변 열차를 진지하게 검토했던 것이죠.
결과적으로는 3번째 시험차까지 만들고 나서야 실용화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서
하카타에서 나가사키를 잇는 니시큐슈 신칸센은 운영사도 승객들도 싫어하는 존재가 돼버렸지만...

아무튼 JR 큐슈에서 개발을 주도했지만

시코쿠에 있는 요산선 일부 구간도 달려봤던 연 덕분에

차량 해체를 면하고 이곳에 보존된 궤간가변열차 사진을 열심히 찍고

남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낯선 기차 2대를 구경해 봅니다.

아, 3대네요.

C57형 증기기관차 옆

옛 기차역 승강장을 재현한 곳으로 올라가

정신없이 석탄을 옮기고

각종 밸브와 노치를 움직였을 기관사들을 상상해 보고

키하 65형 기동차로 이동해 안을 둘러봅니다.

주로 급행으로 운행했다고 하고

시코쿠 철도문화관에서 보존 중인 열차도 등급을 급행으로 표시해두고 있는데

정작 지금의 JR에는 급행이라는 등급이 없죠.

윗등급인 특급과 비교하면 속도나 열차 시설 면에서 열세고
아랫등급인 쾌속과 비교하면 가격 측면에서 열세라서
가끔씩 JR 토카이에서 급행 이다선 비경역호를 임시열차로 편성하는 것을 제외하면
JR 여객영업규칙에서나 볼 수 있는 등급이 돼버렸습니다.

또 다른 역사의 흔적으로

이요사이죠역 옛 시각표에 남아있는 우코 연락선과 환승하기 위한 타카마츠잔교(高松桟橋)행 열차를 확인해 보고

DE10형 디젤 기관차는 대충 넘어간 뒤

다른 전시실로 넘어가 벽에 걸린 시코쿠 철도 이모저모를 알아봅니다.

시코쿠에서 가장 긴 터널이라던가 가장 짧은 터널이라던가 하는 가장 ㅇㅇ한 것에 대한 소개라던가를 알아보는가 하면

시코쿠에 있는 특이한 철도 시설물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전날 나카무라역에서 쿠보카와역으로 이동할 때 지나갔던 루프 터널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노면전차와 일반 열차가 십자가 모양으로 교차하는 오테마치역에 대한 소개도 있고

요도선을 달리는 특이한 관광열차에 대한 소개도 있네요.
이전에 블로그에서 다뤄본 주제들이 여럿 보이는 것을 보면 새삼 고인물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코쿠에 있는 특이한 역에 대한 소개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역은 츠시마노미야역(津島ノ宮駅).
매년 츠시마신사에서 여름 축제가 열리는 8월 4일과 8월 5일 단 이틀 간만 문을 여는 임시역입니다.
츠시마신사가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작은 섬에 지어진 아름다운 신사라서
축제 기간에 맞춰 역에 들러볼까 하는 생각은 있는데
뒤지게 더운 여름에 미어터지는 인파 한가운데로 들어갈 용기가 아직은 없네요.
코미케는 잘만 가는 사람이...

이외에 시코쿠를 달리는 여러 철도 차량에 대한 소개와

저 차량들을 운행하는 여러 철도 회사에 대한 소개를 보고

철도 박물관에 없으면 섭섭한 디오라마로 이동해

시코쿠 철도문화관 북관에서 봤던 호빵맨 열차와

남관에 놓인 프리 게이지 트레인 시험차를 찾아보고

밖으로 나와 다시 육교를 건넌 뒤
시코쿠 철도문화관 북관 옆에 있는 소고 신지 기념관으로 이동해

제4대 일본국유철도 총재로서

토카이도 신칸센 건설을 주도해 신칸센의 아버지라고 불린

그리고 일본국유철도로 가기 전 사이죠시의 2대 시장으로 취임해
사이죠시 명예시민 1호로 선정된 소고 신지(十河信二)에 대한 일대기를 간단히 살펴보고
박물관 관람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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