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즈카 서킷에 자리 잡은 혼다 레이싱 갤러리.

4륜차를 만들기 전부터 모터스포츠 대회에 도전해 온 혼다와 혼다 레이싱(HRC)의 역사,
그중에서도 F1 도전사 위주로 다루는 곳인데요.
스즈카 서킷을 운영하는 모빌리티랜드가 혼다 산하 기업이고
혼다의 역사에서 F1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크니
F1 일본 그랑프리가 열리는 스즈카 서킷에 이런 곳이 하나 있을 법하죠.

가장 먼저 갤러리에 들어가면
공식적으로 혼다의 마지막 F1 파워유닛(엔진)인 RA621H가 채택된

레드불의 2021년 레이스카 RB16B가 놓여 있네요.

감동 넘치는 광고를 내놓고서는 약간은 짜치는 모습으로 F1에 돌아오기도 했는데

그건 이런 곳에서 다룰만한 이야기는 아니니

혼다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살펴보러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죠.

혼다가 F1에 참가한 역사가 레드불에 파워유닛 개발 권한을 넘겨 탄생한 RBPT를 제외하더라도 상당히 긴데

그중 가장 대단했던 황금기를 꼽자면 혼다 말보로 멕라렌(맥라렌 혼다 1기)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엔진 개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한 혼다와
당대 최정상의 드라이버로 손꼽히는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
훌륭한 섀시를 개발한 맥라렌이 한 팀에 모였으니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컨스트럭터 챔피언십과 드라이버 챔피언십 모두 맥라렌의 차지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제외하면 혼다에게 있어 F1 도전은 끊임없는 시련의 역사였는데

다른 차를 통해 간단히 이 역사를 살펴보자면

혼다가 직접 컨스트럭터로서 1964년 F1에 참가하고 나서 1년 뒤인 1965년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RA272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충격을 주었던 혼다는
1967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RA300이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했지만
1968년 마그네슘 바디로 개발했던 RA302가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화재를 일으켜
드라이버 조 슐래셔가 사망하는 바람에
이 여파로 F1 활동을 중단하게 됐습니다.

이후 혼다가 다시 F1에 발을 들이게 된 시기는 1980년대인데요.

컨스트럭터로 참가하는 대신 파워유닛 개발로 F1에 참가하면서
스피릿 레이싱, 윌리엄스 레이싱, 팀 로터스, 맥라렌 레이싱 등 여러 팀이 혼다의 파워유닛을 채택,
1986년부터 1987년까지는 윌리엄스가,
1988년부터 1991년까지는 맥라렌이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혼다의 명성도 같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버블 경제 붕괴라는 외부적인 문제로 인해
혼다는 1992년을 끝을 F1에서 또다시 철수할 수밖에 없었죠.

버블 경제를 극복하고 어느 정도 여건이 나아진 혼다는
2000년 브리티시 아메리칸 레이싱(BAR)에 파워유닛을 공급하면서 다시 F1에 참가했고
2006년에는 BAR을 인수해 혼다 레이싱이라는 이름으로 컨스트럭터로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촉발한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다시금 발을 뺄 수밖에 없었네요.
이 과정에서 혼다 레이싱의 유산을 물려받은 브런 GP가
정말 드라마 같은 성공신화를 써내면서 메르세데스 F1팀이 되었고
이 팀이 루이스 해밀턴이라는 살아있는 전설을 만나 8년 연속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차지했으니
혼다 입장에서는 더욱 피눈물이 날 상황이었을 겁니다.

혼다가 4번째로 F1에 도전하게 된 때는 2015년.
금융위기마저 버텨내며 다시 F1에 들어오면서 손을 잡은 파트너는 영광의 시절을 함께 했던 맥라렌이었는데요.
맥라렌 혼다 1기와는 다르게 맥라렌 혼다 2기는 정말 최악이었고
당시 맥라렌 드라이버였던 페르난도 알론소가 주행 중
팀 라디오로 'GP2 엔진'이라며 혼다의 파워유닛을 대놓고 디스할 정도로
그리고 혼다 스스로도 준비 부족이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파워유닛을 못 만들었습니다.

결국 3년간의 동행 끝에
차마 혼다 레이싱 갤러리에서 다루기에는 민망했던 맥라렌과의 결합은 파국으로 끝났고
2018년 맥라렌은 르노의 파워유닛을 선택했고
혼다는 파워유닛을 공급할 레이싱 팀으로 레드불의 하위 팀 토로 로쏘와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부터는 레드불 레이싱에도 파워유닛을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2020년 시즌 도중 혼다가 다시금 F1 철수를 발표했습니다.
이번에도 요인은 혼다 내부가 아닌 외부인데
바로 코로나19의 여파로 혼다가 개발 능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2021년을 끝으로 F1에서 다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되면 레드불과 스쿠데리아 알파타우리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지니
혼다에서 개발하던 파워유닛 개발 IP를 레드불에 넘기고
레드불의 자회사 RBPT가 이 권한을 가지게 됐습니다.

2021년을 끝으로 혼다는 공식적으로 F1을 철수했지만
지금도 F1에는 혼다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2021년 레드불 레이싱 혼다의 드라이버 막스 베르스타펜이 혼다의 파워유닛을 채택한 RB16B를 몰고
루이스 해밀턴을 꺾고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하자
이미 F1에 철수하기로 동네방네 소문냈던 혼다는 뻘쭘하게도 RBPT와 손을 잡아
2023년부터는 RBPT의 파워 트레인 이름에 혼다를 네이밍 스폰서로 붙이게 됐고
2026년에는 아예 파워유닛 공급사로 다시 참가해
애스턴 마틴의 차에 파워유닛을 제공하게 됐습니다.
혼다와의 악연이 깊은 페르난도 알론소와 9년 만에 다시 만나게 돼서 이래저래 다양한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
냉정하게 말해서 강팀은 아닌 애스턴 마틴과 혼다와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네요.

혼다 레이싱 갤러리 지하에는
일본의 레이서 사토 타쿠마와 혼다와의 만남을 다룬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2002년 조던 그랑프리를 통해 F1에 데뷔했고

BAR로 이적한 뒤 2004년 미국 그랑프리에서 3위로 포디엄에 오르기도 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아쉽게도 그랑프리 우승은 하지 못하고 F1을 떠났는데

2013년부터 미국 오픈휠 레이싱인 인디카 시리즈에 참가해
2017년 일본인으로서는 물론 아시아인으로서도 최초로 인디 500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마침 혼다도 인디카에 엔진을 납품하고 있었고
사토 타쿠마의 팀 안드레티 오토스포트가 채택한 엔진 역시 혼다였기에
혼다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이곳에 다룰 수 있게 되었네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가장 빠른 차를 만들기 위해 도전하는 모습과 더불어서
오토바이, 자동차를 넘어 비행기, 로켓, 로봇까지 기술 개발에 전념하는 공돌이스러운 모습 때문에
혼다라는 회사 자체에 호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F1을 보면서도 지금은 레드불 레이싱을 응원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스즈카 서킷 혼다 응원석에서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할지 고민이네요.
아무튼 혼다의 끊임없는 도전을 응원하며 혼다 레이싱 갤러리를 떠나 밖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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