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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여행기/1~4호선

105. 덕정역 - 회암사지박물관



양주 별산대놀이를 보고 난 뒤 덕정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역 주변은 여러 아파트가 들어선 택지지구니





78번 시내버스를 타고 조금 멀리 갑니다.





버스 자리에 USB 충전기가 달려있어 좋네요.





회암사지, 회암사지박물관 정류장에 내린 뒤





길을 건너





회암사지박물관으로 들어갑니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인데, 할인 대상이 좀 특이하네요.


양주시민뿐만 아니라 도시 이름이 ○주인 도시 시민이면 50% 할인해줍니다.





입장료를 내고 전시실로 들어가니





회암사에 대한 기록이 담긴 책과 함께 회암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화암사는 구체적으로 언제 창건됐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고려 명종 때 금나라 사신이 회암사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어


12세기 무렵에 회암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회암사가 번성한 때는 조선 초로


이성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무학대사가 머무른 곳이라서 그런지


이성계 역시 왕위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조선은 숭유억불을 내세웠지만 왕실에서는 알게모르게 불교를 믿어왔고


여인천하로 잘 알려진 명종의 친모 문정왕후 윤씨가 불교를 강하게 후원해 왕실사찰로 번성했지만


문정왕후 사후 절이 급격하게 쇠퇴해 예전의 건물은 모조리 사라졌죠.





회암사가 부흥하는데 기여를 한 중으로 무학대사 외에도 무학대사의 두 스승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로 와 활동한 지공선사,





공민왕 때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된 나옹선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삼화상을 모아 그린 그림(진영)이 2층에 다른 불화와 함께 전시 중이네요.





이어서 회암사지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사라졌지만 오랫동안 왕가의 지원을 받은 곳인 만큼


박물관 하나를 단독으로 세울 정도로 유물이 많이 나왔나 봅니다.





왕실에서 쓰던 것과 동일한 백자라던가





건물 위에 놓이는 조각상 '잡상',





평기와에 유약을 발라 구운 청기와 등이 놓여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기 전 조선왕실의 회암사 행차 모습을 재현한 인형이 나옵니다.


재위기간이 6년으로 짧았던 태조는


무학대사를 만나러 공식적으로 회암사를 4차례나 방문했고


이후로도 회암사를 찾는 왕실의 행렬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박물관에서 소개하는 기록을 보니 성종까지는 회암사에서 왕실 행사를 열엇던 것 같네요.





2층으로 올라오니 가장 먼저 건물 모형이 보입니다.





서승당이라는 건물을 절개한 모형인데





모형에 달린 안내문을 보니 '국내 최고 온돌 시설이 있는 서승당'이라고 하네요.





이외에 벽을 빙 둘러싸서 수많은 기와가 놓여 있는데


'기와를 통해 본 회암사의 역사·문화' 라는 코너입니다.


수막새에 그려진 무늬별로 모아 놓은 것이죠.


위의 수막새는 범자문, 즉 인도 산스크리트어에 쓰이는 데바나가리 문자가 그려진 기와로


고려 말 원 간섭기에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범자문 기와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봉황이 그려진 수막새도 있는데,


봉황은 용과 함께 왕실에서 많이 썼으니


그만큼 회암사의 위상이 높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화문 수막새도 있네요.





이어서 회암사에 있던 불화를 보면서 상설전시 관람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산산, 부서진 뒤 알게 된 것들'이라는 전시를 관람합니다.


회암사지에서 발굴된 유물 대다수가 원형 그대로 발굴되기보다는 조각으로 발굴됐는데


이 조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조형미와 역사성을 알아보고


조각을 통해 유물을 보존, 복원, 복제하는 박물관의 역할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전시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우선 청동기를 만들면서 나오는 찌꺼기와





다양한 장신구에 사용됐을 각종 구슬,





청화백자 파편을 보여주면서 이 전시에서 다루는 조각에 대해 알려줍니다.





이어서 조각을 발굴한 뒤의 과정에 대해 소개하는데요.


완전 복원이 어려운 대신 짝을 찾아 구성을 갖춘 뒤 보존하는 조각도 있지만,





기술 발달로 복원 과정을 거치는 조각도 있습니다.





오랜 학술조사와 과학적인 분석을 거쳐





문화재를 복원하는 과정을 영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네요.


또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도 고려해서 복원 작업을 거치는데


복원 기술이 발전돼서 후대에 재복원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합니다.





유물 원본을 보호하고 대중에 대한 접근을 높이기 위해 유물을 복제하기도 하는데요.





그림은 당대에 쓰인 화풍을 재현해서 사람이 직접 그리거나(모사본)


원본을 사진으로 찍은 뒤 인쇄해서 씁니다.(영인본)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탁본을 떠서 연구에 쓰기도 하죠.





보존, 복원, 복제 과정에 쓰이는 여러 도구들과





박물관 내 유물보존실을 재현한 공간을 보면서 기획전시실을 나왔습니다.





박물관 관람을 끝냈으니





이제 박물관 뒤에 있는 회암사지를 보러 갑니다.





저 멀리 터만 남은 공간이 있는데





가까이 가면 정말 거대한 공간입니다.


전성기 때에 얼마나 회암사가 번성했는지 느낄 수 있지만





지금 남은 것이라곤 건물 흔적과





기둥 하나가 사라진 당간지주,





회암사지부도탑이 전부네요.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회암사가 언제 창건됐는지 잘 모르듯이 회암사 건물이 언제 소실됐는지도 잘 모릅니다.


안내문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문정왕후 사후 유생들이 방화해서 건물이 사라졌다고 하고,


이후 선조와 인조 때 다시 재건했지만 병자호란 때 완전히 소실됐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암사는 여전히 천보산에 남아 있는데요.


19세기에 회암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회암사를 재건했고 이 절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끝난 수능을 위한 100일 기도제에 대한 안내 플래카드가 걸려 있네요.


이 회암사를 가볼까 생각해봤는데 여기서 한참을 걸어가야 할 것 같아 포기하고 내려갔습니다.





회암사지박물관 주차장으로 가면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서는 90번 시내버스를 타고 양주역으로 갈 수 있죠.





마침 90번 버스가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라 이걸 타고 갈까 했는데





버스 위치 조회를 해보니 78번이 더 빨리 출발하길래


다시 78번을 타고 박물관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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