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욕을 마치고 온센노모리에서 나온 뒤 구글 지도를 켜보니

근처에 시모유다(下湯田)라는 버스 정류장이 있길래

여기에서 보쵸선(防長線) 시내버스를 타고

시라이시(白石) 버스 정류장에 내린 뒤

일본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천주교 성당으로 갑니다.

이곳은 야마구치 하비에르 기념 성당.

일본식으로는 자비에르라고 읽는
가톨릭 선교사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de Xavier)를 기리는 곳입니다.

성당이면서도 기독교 자료 전시관이 있으니

입장료 200엔을 내고 1층 전시실로 들어가 보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일본 가톨릭 역사는 물론 가톨릭 전체의 역사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인데

전임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여했던 수도회로 잘 알려진,
한국에서는 서강대학교를 세운 것으로도 유명한 예수회를 만든 설립자 중 한 사람이자

아시아 선교의 선구자로서 최초로 일본 땅을 밟은 선교사이기도 합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야지로(ヤジロウ)'라는 이름의 일본인 가톨릭 신자를 만나 일본이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됐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선교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어 1549년 일본 사츠마국(지금의 카고시마)에 상륙한 뒤

큐슈 여기저기를 떠돌다 나가토국의 영주 오우치 요시타카로부터 포교 허가를 받아
당시 폐허였던 다이도지(大道寺)에 자리를 잡고 선교활동을 하다 중국 포교를 위해 일본을 떠났으나
안타깝게도 1551년 열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하비에르가 일본을 떠난 뒤 큐슈를 중심으로 가톨릭이 세를 늘려갔지만

시마바라의 난으로 인해 에도 막부가 기독교도를 탄압하기로 하면서

박해를 견디지 못한 대다수 신도들은 기독교를 버릴 수밖에 없었고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믿음을 버릴 수 없었던 극소수의 신자들은 밀교처럼 숨어 살았기에
오늘날에는 이들을 숨은 크리스천이라는 의미로
카쿠레키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 또는 센푸쿠키리시탄(潜伏キリシタン)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오우라 천주당에서의 '신도 발견'으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가 된 나가사키 지역의 잠복 크리스천 관련 흔적이 유명하지만

일본에서 최초로 가톨릭을 포교한 야마구치 일대에도 기독교 신자들이 많았기에

탄압의 대상이 된 신도들이 나가사키 못지않았고

숨은 크리스천들이 남긴 흔적들도 많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불교 관련 시설과 조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관음보살이 동자승을 안은 모습이 피에타를 떠올리게 하는 등

기독교적 요소를 안에 담아 신앙을 지키려고 한 흔적이 보이네요.

탄압이 끝나고 다시 야마구치에 세워진 성당에서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포교 의지를 이어받아

일본에서 가장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지낸 지역으로서 매년마다 열리는
일본 크리스마스는 야마구치에서(日本のクリスマスは山口から)라는 행사에 참여하는 듯하니

일본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기독교 이벤트를 보러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성지순례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가려는데

어... 지금 우산 없는데...
일단 기다려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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