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에서 버스를 타고 태릉입구역까지 왔습니다.
5번 출구 근처 골목길로 들어가면
몬드리안 스타일로 칠한 요상한 건물이 나오는데
여기에 서울생활사박물관이 있습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이 도봉역 근처로 이전하면서 빈 건물을
서울시가 박물관을 비롯한 이런저런 시설로 활용하고 있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현재 서울생활사박물관은 시범 운영 중이라
관람시간이 서울역사박물관(9시~주말 7시 평일 8시)보다 짧습니다.
미리 알아보고 왔어야 했는데...
그래서 다른 날 다시 박물관을 찾아 관람을 시작합니다.
1층 전시실 '서울풍경'부터 둘러봅니다.
우선 해방과 전쟁,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변해가는 서울의 풍경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늘어난 자동차를 오래된 자동차를 통해 보여주기도 하네요.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여럿 등장한 포니 택시도 있습니다.
정작 주인공 만섭이 모는 택시는 포니가 아니라 브리사지만.
택시 내부도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핸들 오른쪽에 달린 저 기계는 아날로그식 미터기입니다.
승객이 택시에 타면 택시 기사가 '빈차'라고 달린 레버를 꺾어서 미터기를 작동시키는데
이 행동때문에 미터기를 꺾는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모든 택시가 디지털 미터기를 쓰고 있지만
미터기를 꺾는다는 말은 여전히 남아
미터기를 켜지 않고 택시 기사와 요금을 미리 정한 뒤 탄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어서 경제 성장으로 인한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보여주는 이런저런 광고가 걸려 있고,
통신 발달을 보여주는 각종 라디오와 핸드폰도 놓여 있습니다.
그야말로 부의 상징이던 카폰도 있고,
1990년대 활발하게 운영하던 PC통신 중 하이텔에 접속할 수 있는 전용 단말기도 있습니다.
사실 저 단말기는 한국통신에서 하이텔 사용자에게 무상으로 대여해주던 물건인데
PC통신 사업을 접으면서 단말기 회수를 하지 않아
종종 하이텔 단말기가 중고 시장에 풀리곤 합니다.
골동품 수집을 위해 사고파는 사람들도 있고,
하이텔 단말기를 개조해서 PC처럼 쓰는 사람도 보이네요.
2층으로 올라가 '서울살이' 전시실을 봅니다.
서울에 서울 토박이가 적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전시를 시작하는데요.
서울에 토박이가 적은 이유는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몰려온 사람들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서울 주변 다른 도시를 집어삼키며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994년에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한 지 60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서
서울시청이 서울 토박이를 조사했다고 하는데
이때 서울 토박이의 기준을 1910년 이전부터 한성부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 그 후손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서울 토박이가 될 수 있는 사람의 범위 자체가 상당히 좁죠.
해방 전에는 사대문 안과 북한산, 용산, 전농동, 신촌, 여기에 더해 영등포까지만 서울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광주, 양주, 시흥 등 주변 도시를 흡수하면서
면적은 두 배 이상 늘었고, 인구는 10배 가까이 늘은 지금의 서울이 됐습니다.
과거 서울살이를 보여주는 레코드, 비디오 코너와
사진을 모아둔 사진관을 지나
서울 사람들의 결혼 풍습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혼수용품의 변천을 알아볼 수 있고,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른 신혼여행 세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결혼식을 한 여러 세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한쪽 벽에 전시 중입니다.
중매를 거쳐 결혼하신 아버지 세대 이야기부터
다이어리, 스티커 사진 등 90년대 말 2000년대 초 연인들의 데이트 모습까지
세대에 걸쳐 결혼 문화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여러 전시물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결혼 다음으로 나오는 공간은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공간입니다.
인구 증가와 남아선호사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달라진 가족계획사업 표어와
과거에 비해 점점 의미가 가벼워지는 돌잔치,
영양 섭취가 부족하던 시절 부모들에게 의미가 컸던 우량아 선발대회까지
너무나도 많이 바뀐 세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3층 전시실의 이름은 '서울의 꿈'인데요.
그중 어찌보면 가장 간절하다고 볼 수 있는 내 집 마련으로 시작합니다.
해방 후 일본인이 남기고 떠난 적산가옥부터 오래전부터 쓰던 한옥을 도시에 맞게 개조한 도시형 한옥,
수만은 피란민과 외지인들이 머물 자리를 얻고자 산기슭, 하천변에 지은 판잣집,
생활 여건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등장한 서양식 단독주택부터 아파트까지,
시대에 따라 사는 집의 모습은 다르지만
나와 가족이 근심걱정 없이
편안하게 등 붙이고 누울 수 있는
'내 집'이라는 의미만큼은 변함없겠죠.
이어서 교육에 관한 전시가 나옵니다.
오래전에 사용하던 교과서를 보여주면서
베이비붐으로 인해 교실과 교사가 부족해서 2부제 수업이나 3부제 수업을 해야 했던 당시 시대상을 소개합니다.
저도 초등학교 1학년 때에는 학교 내 교실이 부족해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수업을 나눠서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옆에는 지금도 팔기는 하는지 궁금한 전과도 있고,
지금은 사라진 중학교 입시 교재도 있습니다.
중학교 입시가 사라지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두 사건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왼쪽의 무즙 파동이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의 창칼 파동인데,
특히 무즙 파동이 상당히 여파가 컸는지 지상파 재연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죠.
위의 사고를 겪으면서 1969년부터 중학교 입학시험이 점차적으로 폐지되었고
서울 시내 명문 중학교 다수를 폐교시키기까지 하면서 평준화도 진행했지만,
대학교 입시만큼은 지독하게 오래 살아남아 지금도 수많은 고3과 재수생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 외에 산업화를 이끈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해 소개하면서 다음 코너로 넘어갑니다.
마지막 코너는 부모 세대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버스 안내양처럼 업무 자체가 사라진 직업에 대한 전시물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진 가게를 되돌아보는 전시물도 있습니다.
몇몇 부모님들이 직접 사용하던 도구나 자격증 등을 보여주면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는데요,
밤섬에서 일하던 배 목수 중 유일하게 살아계신 분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영양사, 초등학교 교사, 언어학자 등 지금도 여러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스어 언어학자인 유재원 씨께서 기증하신 그리스어 타자기처럼 상당히 독특한 전시물도 있네요.
점점 사라지는 서울의 옛 모습을 지키고자 서울시청에서 지정하는 '미래유산'에 대한 전시물을 보고
박물관을 나왔습니다.
644. 석계역 음식문화거리에서의 낭패, 전화위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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